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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초맘 Oct 01. 2019

돈 던지기

미주 뉴스코리아  <슬초맘의 작은 행복찾기> - 2006년 4월

돈 던지기. 제목을 보고 혹시 ‘돌 던지기’의 오타가 아닌지 궁금해 하실 분도 있으실 테지만, 이 글의 제목은 ‘돈 던지기’가 맞습니다. 이상한 제목이지요. 이 즈음에서 이 글을 읽고 계신 슬초네 지인들의 쯧쯧 혀 차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아니 먹고 죽기도 빠듯한 살림에 던져 없앨 돈이 어디 있다고!” 라며 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어느덧 슬초네의 연중행사가 되어버린 ‘돈 던지기’ 행사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슬초 녀석은 여자아이인데도 유별나게 활발한 편이입니다. 물론 아직 나이가 나이인지라 신데렐라 드레스에 두 눈에 총총 별이 뜨며 입이 헤~ 벌어지는 공주 기질이 있기는 하지만, 평상시에 하는 행동으로는 웬만한 사내아이 뺨을 두 세 번 치고도 부족해 날라차기로 한 대 더 때려주는 수준입니다. 특히나 무슨 에너지가 그리 넘치는지, 막 걷기 시작한 십 개월 때부터 하루에 두 번씩 그 넓은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씩 뛰고 와야 직성이 풀리고 편히 잠이 들 수 있는 백만순이 에너자이저였더랬습니다. 한 때는 과잉행동장애인가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을 정도로 말이지요.


그러다보니 맞벌이에 지친 엄마 아빠가 매일 저녁 에너자이저 슬초와 놀아주는 것도 슬슬 한계가 오기 시작합니다. 밤 11시, 자정을 넘겨 새벽까지 펄펄 뛰는 녀석이 오히려 엄마 아빠를 잠재우는 경우가 더 많아졌고 말이지요. 놀이터나 공원을 다니자니, 새벽에 나가서 해가 질 때에야 들어오는 엄마 아빠의 하루 일정 때문에 쉽지가 않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상업용 놀이공간의 덕을 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곳도 한 두 번 가 보니 고민해 보아야 할 부분이 보이더군요!먼저는 아이들에게 팔고 있는 질 낮은 핏자와 색소 범벅 음료수였습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렇게 비싸게 팔 거라면 몸에 덜 해롭게라도 만들 것이지... 싶지만 꾹 참아 봅니다. 하지만 그 다음 관문은 바로 게임 비용입니다. 20초도 되지 않을 게임 한 번 하는데 25센트 ~ 50센트, 그러니까 25전에서 50전의 비용이 들어가더군요. 문제는

에너자이저 슬초가 지칠 때까지 게임을 하려면 보통 20불 정도가 든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이를 데리고 상업용 놀이 공간에 와서 핏자와 음료수를 시키고, 게임 몇 번을 하면 대략 40여불 정도의 비용이 들게 되더군요.

그래서 놀이공간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가기로 했더니, 슬초 녀석은 몸에 남아도는 힘을 주체를 못해서 공 차자, 달리자, 각종 요구가 끊이지를 않습니다. 흠... 힘은 팍팍 쓰게 하면서 비용은 저렴한 다른 이벤트는 없을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슬초를 데리고 근처의 한 몰에 들렀던 어느날 이

문제가 의외로 쉽게 해결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반짝 반짝 빛나는 실내 분수대를 지나고 있는 중이었더랬습니다. 분수를 한참 바라보던 녀석의 시선이 분수대 바닥의 동전들로 옮겨갑니다. “엄마, 왜 저기 돈이 있어?” “응, 여기는 사람들이 와서 돈을 던지는 곳이야.” “왜?” 슬초맘, 이 즈음에서 소원을 빌고 동전을 던지면... 뭐 이런 설명을 해 줄까 싶었지만, 괜히 설명을 해 주면 또 다른 질문이 또 들어올 것 같은 귀차니즘에 대충 얼버무립니다. “응, 그냥. 재밌어서.” 그러자 ‘재미’ 소리에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가득해진 슬초의 상기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럼 슬초도 돈 던질래!!!”


동전 지갑을 뒤져보니 1센트 페니가 꽤 있네요. 페니를 쥔 세 살짜리 슬초, 다 큰 엄마보다 동전을 더 멀리 던져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흠찟 놀라시네요. 장래 투포환 국가대표를 시키면 딱일 것 같습니다. ‘삶 = 무료함 그 자체”였던 슬초는 그 날 그렇게 신이 나게 온 몸에 힘이 다 빠지도록 돈을 던지고 왔습니다. 그렇게 지갑에 있던 페니를 다 던지고 왔는데도 1불을 채 다 못 던졌네요. 에너자이저 슬초 녀석은 남아 있던 힘을 다 써서 룰룰랄라 신이 났습니다. 이렇게 신박하고 저렴한 놀이 동산이 있었다니!


그 날 이후로 한 달 동안 페니를 모아, 하루 날을 잡고 분수대에 가서 페니를 던지는 일이 슬초네 가족의 월례 행사요, 전통이 되어 버렸습니다. 슬초가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밤새 백 번을 던져도 비용이 일 불이라니! 그간 대접받지 못하고 천덕꾸러기였던 페니가 이제 슬초네 집에서는 보물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작은 동양아이 슬초가 동전 자루를 꼭 쥐고 하도 신나게 페니를 던져대는 모습에, 주변 벤치에 앉아 계시던 (역시 슬초처럼 심심하셨던) 미쿡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같이 신이 나셔서 지갑을 털어 슬초 동전 자루에 페니를 한 주먹 채워주신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돈 던지기’. 어떻게든 돈을 아껴보려고 한 일이 결국 돈을 ‘던지는’ 일로 결론이 나버리기는 했지만, 가끔은 신나게 페니를 던지고 있는 슬초 녀석의 뒷모습을 보면 속이 시원해지기도 합니다. 저놈의 ‘돈’ 때문에 그간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지금도 얼마나 속을 끓이고 있는지. 저놈의 ‘돈’ 때문에 얼마나 많은 다른 소중한 가치들을 포기해야 했는지. 슬초가 ‘돈자루’를 쥐고 씐나게 돈을 던지고 있는 모습을 뒤에서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그간 슬초맘의 인생에서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리고 있던 필요악 ‘돈’의 기세등등함은 사라집니다. 너 따위는 내 인생에서 이렇게 멀리 그리고 씐나게 던져버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시청각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지요.


요 며칠 슬초빠가 출장 중이라, 오늘 저녁은 슬초 녀석과 둘이서만 ‘돈을 던지러’ 갈계획입니다. 최근엔 이 녀석이 2층에서 1층 분수대로 정확히 돈을 던지거나, 목표 지점을 예상하고 그 자리에 페니를 탁 올리는 신공도 보여주는 것이, 거의 서커스에 가까운 신들린 돈 던지기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간 저 분수대에 던져 넣은 돈들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말이지요.


요즘 돈 때문에 고민이 무척 많았는데, 오늘은 슬초맘도 가세해서 분수대 앞에서 이 동양인 모녀가 한 번 신명나게 ‘돈을 던져’ 볼까 봅니다. 에잇, 이놈의 돈! 니가 뭐라고! 라고 (속으로) 외치며 말이지요.


모녀의 ‘돈 던지기.’ 오늘밤 분수대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엄마의 그간 무거웠던 마음도 행복해진 슬초의 마음처럼, 그리고 가벼워진 동전 자루처럼 가벼워지기를 바라 봅니다.

돈, 그 놈의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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