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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작가지 May 28. 2020

당신, 지금 괜찮은가요? '국도극장' 이동휘의 위로

[미리 보는 영화] <국도극장>에서 찾은 진짜 인생

▲ 영화 <국도극장>의 한 장면. ⓒ 명필름랩


2016년 9월 29일 헌법재판소의 사법시험 폐지 합헌 결정 이후 그 많던 '고시생'들은 어디로 갔을까(2017년 사법시험까지 시행). 그리고 이 소식을 접한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영화 <국도극장>은 이 물음에서 시작됐다.


만년 고시생인 기태(이동휘 분)는 사법고시 폐지 후 고향인 벌교로 돌아간다. 시험 자체가 없어졌으니, 이제 그에겐 고시생이란 타이틀조차 허락되지 않는 상황. 마치 유배지로 향하듯 떠나 도착한 고향에는 그를 반기는 사람도, 반가운 사람도 없다. 


당장 한 달 생활비조차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럽기만 하고, 대놓고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며 핀잔을 주는 학창시절 친구들도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 기태는 마지막 남은 자존감을 끌어모아 다시 서울로 돌아가 재기를 노리겠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결국 생계를 어쩌지 못해 재개봉관인 국도극장 매표원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기태와 오씨와 영은

▲ 영화 <국도극장>의 한 장면. ⓒ 명필름랩


영화는 고향으로 돌아온 기태의 심리 변화를 통해 막다른 상황에 놓인 한 사람에게 주변인들의 관심과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영화 초반 울며 겨자 먹기로 매표소 일을 하겠다고 나선 기태를 바라보는 극장 관리인이자 간판장인 오씨(이한위 분)의 눈빛은 마냥 좋지만 않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씨는 기태의 말동무가 되어준다. 


동창생이자 가수 지망생인 영은 또한 기태에게 뭔가 다른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영은은 '가수'란 꿈을 이루기 위해 24시간을 쪼개서 쓰며 여러 가지 일을 전전하는 인물이다. 이런 영은의 생활 태도는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낙인 찍는 기태에게 여러 감정을 갖게 한다. 


작품은 기태가 두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 편안한 관계가 되기까지를 아주 잔잔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이런 영화의 경우 자칫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개연성 없는 에피소드를 넣어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국도극장>은 관객들의 손을 꼭 잡은 채 기태 마음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오씨와 영은이 왜 기태에게 힘이 되었는지 또한 그들의 과거 서사를 통해 충분히 설명해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기태는 두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그간 자기 안에 쌓아놨던 부정적 생각들을 바꾸어 나가기 시작한다. 


기태와 국도극장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화의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엔 치매에 걸린 기태 어머니와 그 가족의 이야기가 있다. 기태의 형(김서하 분)은 치매를 앓는 어머니(신신애 분)를 모시려면 꿈을 좇기보단 현실적인 직업을 택해야 한다고 하고, 기태는 왜 장남이 아닌 차남이 어머니를 모셔야 하냐며 펄쩍 뛴다. 이 과정에서도 기태는 오랜 시간 고향을 떠나 있어 미처 알지 못한 사실들을 확인하게 되고 이 또한 그의 심리 변화를 이끌어낸다. 


이동휘부터 이한위, 신신애, 이상희까지

▲ 영화 <국도극장>의 한 장면. ⓒ 명필름랩


<국도극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실패에 찌들어 축 처진 이동휘의 깊이 있는 연기다. 2013년 영화 <남쪽으로 튀어>로 데뷔한 이동휘는 2015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출연하면서 시청자들로부터 눈도장을 받았다. 이후에도 이동휘는 여러 드라마와 영화의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출연하며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튼튼하게 채우고 있다. 


<국도극장>은 이동휘가 배우로서 스펙트럼을 넓히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동휘는 실패만 연속으로 겪은 기태란 인물을 웃음기를 뺀 채 연기해 몰입감을 높였다. 더불어 이한위, 신신애, 이상희 등의 조연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 역시 눈길이 간다. 조연 배우 모두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연기를 선보인다. 관객들이 오직 영화 이야기에만 몰입할 수 있는 비결이다.


영화를 주의 깊게 본 관객이라면 작품 속 '국도극장' 간판이 기태의 심리를 반영한 것이란 사실을 금세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기태가 어쩔 수 없이 극장 매표소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에선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간판이, 영은과 묘한 긴장감이 흐를 땐 <첨밀밀>, 마지막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기태의 처지와 들어맞는 <박하사탕>의 포스터가 내걸린다. 극장 간판이 바뀔 때 심지어 간판과 기태를 동시에 비추어주기까지 하며 이를 강조한다.


한편 <국도극장>은 지난해 개최된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전주프로젝트마켓'에서 전주시네마프로젝트상, TV5MONDE상, JJFC상, 푸르모디티상을 수상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영화다. 연출을 맡은 전지희 감독이 사법고시에 실패해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 기태의 삶과 극도극장의 처지가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어서 영화의 배경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개봉은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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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 겉으론 잔잔해 보이는 이야기지만 그 속엔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별 점 : ★★★★(4/5)


영화 <국도극장> 관련 정보

제목 : 국도극장

각본/감독 : 전지희
출연 : 이동휘, 이한위, 신신애, 이상희, 김서하
제공/제작/배급 : 명필름랩
개봉 :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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