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세울 거라고는 열정뿐입니다.
American hospital의 인사팀 사무실에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무작정 인사담당자를 만나고 싶다며 들어갔고, 인도계로 보이는 여자분께서 당황했지만 친절하게 내게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내 CV를 보여주면서
"이곳에 Mr. Lee 통해서 여러 번 지원했는데 계속 서류에서 떨어지고 있습니다. 경력은 2년 정도 되고, 여기 와서 일하고 싶어서 한국에서 왔어요."
라고 말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인사담당자가 내 CV를 본 적은 있으며 만약 일하게 된다면 기간은 얼마 정도로 가능하냐는 등 몇 가지 물어봤다. 마무리는 고려해 보겠다는 말로 어설프게 끝났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간 어머니께서 직접 그리신 전통부채를 선물로 드렸다.
직감적으로 이 면접이 채용의 기회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을 거라고 느꼈다. 병원을 나오는데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이 났다. 내향적인 성격으로 처음 만난 외국인에게 나를 세일즈 해야 하는데 뭔가 잘 풀리지 않다 보니 힘이 들었다. 나오는 길에 인사팀 사무실을 알려준 직원을 마주쳤는데, 잘 찾아가서 만났냐는 물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당황했던 그녀는 두바이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는 말과 함께 떠났다.
눈물을 닦고 더위를 피해 식당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던 나는 긴장 후 몰려온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 베트남 식당에 갔다. 쌀밥이 들어가면 씩씩한 내 모습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밥을 꾸역꾸역 먹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낯선 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나에게 영감을 주는 이야기들 말이다.
원더걸스를 미국으로 진출시키기 위해서 JYP가 엔터테인먼트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앨범을 전달하고 매일 방문하면서 친분을 쌓아 결국에 계약을 따냈다는 이야기, 터키에서 배구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김연경 선수 등을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그들에 비하면 지금의 경험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직 시작조차도 한 것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미국간호사 면허준비와 영어공부에 몰입하면서 두바이에서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게 되었다. "실력도 경력도 아주 미숙한, 열정만 있는 지원자"
그러나 모순되게도 그 당시에는 내 영어실력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했고, 나 정도의 경력이면 빠지지 않다며 오만한하고도 과분한 평가를 했었다. 그러나 냉정한 시각으로 보면 채용자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구직자는 아니었다. 다소 적은 임금만 줘도 되는 영어가 능숙한 동남아 출신의 경력이 풍부한 간호사도 아니었고, 중동국가에서는 두바이 간호사 면허 없이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캐나다, 호주, 미국 등에서 간호대학을 졸업한 간호사도 아니다. 그저 형편없는 영어로, 겨우 2년가량의 경력을 꾸역꾸역 채워서 온 한국간호사였다.
그러나 감정에 젖기에는 갈길이 멀다. 추려냈던 병원리스트를 가지고 직접 방문하려면 시무룩할 시간은 없다. 직접 가서 어떤 규모이고, 커리어를 연장할 만한 곳인지 지원자로서도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온 김에 여행도 하고 가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