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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림 Aug 19. 2024

영화 <퍼펙트 데이즈> 안 짧은 후기

히라야마의 삶이 부럽기도 안 부럽기도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기대할수록 실망하고, 실망할수록 외로워지는 삶이 좀 지친다고. 얽히고설키지 않는다면 서로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의도와 상관없이 주고받고야마는 부정적인 영향을 없애려면 나를 둘러싼 모든 세계와 단절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혼자서 자신을 지키며 외부 영향을 최소화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도, 나도 괜찮을 거라면서.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그런 생각으로 설정된 NPC의 롤플레잉 같았다. 이토록 깔끔하고 충만하며, 평화로운 삶이라니.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고지)의 반복되는 일상은 '그'라는 존재의 평형수다. 성실하게 직업적 소임을 다하고 취향을 매일 만끽하는 일상. 그가 시부야 공공 화장실을 체계적인 청소 도구로 닦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성취감이 든다. 일 외의 그의 일상은 작지만 분명한 행복, 취향에 따른 소확행으로 채워진다.


키우는 화분에 물을 주고, 자판기 캔커피로 하루를 연다. 좋아하는 공원 벤치에 가서 점심을 먹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산란하는 빛을 필름 카메라로 찍는다. 이따금 필름 카메를 인화하고 사진을 선별해 박스에 모아둔다.


저녁엔 목욕탕에 갔다가 단골 식당이나 술집에 가서 맥주 한 잔을 마신다. 자기 전엔 헌책방에서 사온 문고판 책을 읽는다. 차 안에서도 신중히 앨범을 골라 카세트 테이프를 조심스럽게 플레이해 올드팝을 듣는다. 순간순간을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 지나간다. 소소하더라도 성취감과 행복감으로 완벽하게 코팅된 나날들.


그의 삶에 파도는 없다. 윤슬이 이따금 비치는 물결 같은 순간만 있도록 한다. 스토리의 소용돌이가 기대되는 순간도 일상이란 바다에 잠겨 소멸된다. 갈등도, 욕망도, 그에 따른 사건의 전개도 없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3D 직종에 박봉인'이라는 수식어를 생략한 채 '일을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냐'는 어린 동료의 투덜거림에도 개의치 않고 화장실을 깨끗이 닦는다. 어렵게 모은 돈을 동료가 빌린 뒤 사라졌을 때도 분노하지 않는다. 동료의 여자친구가 그를 따로 찾아와 뽀뽀를 해도 잠깐 놀랄 뿐, 해프닝은 스토리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 장면은 굳이... 싶긴 했지만)



결정적 사연을 쥐고 있어 보이는 조카와 누이의 갑작스런 등장에도 그동안 참아온 눈물을 울컥, 하고 흘릴 뿐이다. 누이가 타고 등장한 세단과 디저트 선물, 아버지 언급은 그의 이전 계급이 부르주아였음을 암시하나 그뿐이다. 그의 복잡한 사연은 조카, 누이와 함께 차를 타고 사라진다. 사연 팔이는 없다. 언제나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이다.


잠든 그의 복잡한 꿈은 오늘이 오늘에서 끝나게 하는 실존의 절취선이다. 일과 후 목욕탕에선 세신하고, 쉬는 날 코인 세탁소에선 세탁을 한다. 세상의 불가피한 지저분함을 벗겨낸다. 독거와 과묵으로 사회적 소통도 최소화한다. 단절하고 결벽적으로 씻어내고 또 단절한다. 그의 완벽한 일상을 위해.  


보는 내내 마음이 평화롭고 좋았던 건 타자가 거의 없는 그의 삶 때문이었다. 일할 때도, 식사 때도, 취미를 즐길 때도 대체로 혼자다. 자신의 일상을 망치지 않을 정도로만 소통을 최소화한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조선일보 칼럼을 빌려오면 "‘퍼펙트 데이즈’에서 히라야마는 현실과 역사에서 분리된 자폐적 공간에서 산다. 사회나 역사와 유리된 채 닫힌 내면으로 은둔하는 일본 사소설(私小說)처럼 히라야마는 거의 말이 없고 친구도 없다."


히라야마의 하루하루를 핍진화처럼 그렸지만 판타지 중의 판타지 같았던 이유가 여기 있다. 타인과 사회가 부재한 히라야마의 삶이 판타지스러워서였다.



<퍼펙트 데이즈>의 '퍼펙트'는 어쩌면 반의적인 표현은 아니었을까? 실제 삶은 그렇게 깔끔하고 평화롭게만 이어지지 않더라 하는 말이다.


어쨌거나 히라야마의 '완벽한 하루하루'는 삶에 대한 결벽증과 철저한 자기 방어를 대리만족시켜줬다. 어느 월요일 퇴근 후, 삶과 사람 사이의 부대낌을 생각하지 않고 영화를 보는 순간에 집중하게 해준 124분간의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였다. 불가능해 보이고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좋아보였다, 코모레비만 간직하는 그가.


한 줄 평

마지막 장면 속 야쿠쇼 코지의 웃는 듯 우는 듯 복잡한 표정처럼, <퍼펙트 데이즈>와 이 삶에 "Sometimes I feel so happy Sometimes I feel so sad But mostly you just make me mad." (from 'The Velvet Underground 'Pale Blue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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