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처럼 달큰한 유혹에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하고 에로틱한 모험을 즐긴"서른다섯 살 먹은 남자이자 개업의이자 기혼자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57페이지)인 프리돌린과 주부이자 아내로서 의무를 다하지만 내면엔 은밀한 욕망을 품고 있는 알레르티네의 이야기다.
프리돌린의 모험은 현실에서 환상으로 선을 완전히 넘지도 뒤돌아가지도 못한 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데 성공담도 실패담도 아닌 살짝 발을 뺀 모험담은 그럼에도 충분히 아찔하고 몽환적이면서 동시에 찌질하고 현실적이다.
소설의 흐름에 프리돌린의 독백이 자주 나오는데 프리돌린이 대학생 무리 중 키 큰 녀석에게 시비를 걸리곤 모른 척 길을 가던 장면에서 "내가 겁쟁이라고………? 말도 안 돼, 서른다섯 살 먹은 남자인 내가, 개업의이자 기혼자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인 내가 술 취한 대학생 놈과 엮여서 뭘 할까! (…)"(57페이지)로 이어지는 솔직하면서도 울분에 찬 독백을 보고 있자면 어쩌면 이 찌질함이라는 건 만국 공통이지 않을까, 나아가 사람이라면 무릇 존재하는 면모가 아닐까 싶어 우스우면서 묘하게 위안을 받는다.
소설 머리말에 "갈색 피부의 노예 스물네 명이 화려한 갤리선의 노를 저었습니다. 암지아드 왕자를 칼리프 궁으로 데려갈 배였습니다."(31페이지)로 시작하는 어린 딸이 읽어주는『천일야화』의 한 대목은 "갤리선의 노예들이 노를 저어 당신(프리돌린)을 그곳으로 데려온 거였고 나는 그들이 막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걸 보았어."(111페이지)라고하며 알레르티네의 꿈속 이야기로 이어진다.
꿈속 이야기에서 프리돌린이 알몸으로 사라져 버렸을 때 알레르티네는 "당신이 사라져 버렸을 때 마음이 몹시 홀가분해졌어. 당신이 안쓰럽지도, 걱정되지도 않았어. 그저 혼자인 것이 기쁠 따름이었고 초원에서 희희낙락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노래를 불렀어"(112페이지)라고 하며 해방감을 느끼지만 이내 자신에게 신의를 지키느라 여왕의 청혼을 거절한 남편을 보고 "당신의 행동이 터무니없이 어리석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고 당신을 조롱하고 면전에서 비웃고 싶은 유혹을 느꼈어. 당신이 나에게 신의를 지키느라 여왕의 청혼을 거절하고, 고문을 견디고, 이제 끔찍한 죽음을 당하기 위해 비틀거리며 이곳에 왔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말이야."(118페이지)라고 속마음을 내뱉는다. 그리고는"그때 나는 사람들이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바로 그동안에 당신이 적어도 내 웃음소리를 듣기를 바랐어. 그래서 난 웃음을 터뜨렸어. 최대한 째지게, 최대한 큰 소리로."(119페이지)라고 웃음을 터트리며 끝이 난다.
꿈속의 알레르티네는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부부간의 신의를 지킨 프리돌린을 마음껏 비웃는다. 다만 꿈속에서 그를 소리 내어 비웃는 것과 달리 현실에서는 모호한 모험으로 욕망을 조금씩 해소했던 프리돌린보다 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프리돌린의 현실 세계의 모험과 알레르티네의 내면세계의 모험은 언뜻 보기엔 대칭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알레르티네의 모험은 언제나 꿈속이나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
이는 가장무도회 다음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자학적으로, 불순한 호기심을 품은 채 상대방에게서 고백을 이끌어내려 했던 그들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지난여름 덴마크 해변에서 프리돌린은 소녀에게 직접 팔을 뻗었던 것과 달리 알레르티네는 해변의 남자가 본인을 부르길 바라기만 할 뿐이다. 알레르티네가 내면으로만 욕망을 드러낸다는 한계가 드러나는데 이는 언제나 남편의 욕망보다 아내의 욕망을 단죄하는 사회 관념의 한계로 보인다. 현실에서 해소가 어려우니 내면에선 더 강렬하게 신의 없고 잔혹한 배신자의 본모습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프리돌린의 현실 세계의 모험은 언제나 알레르티네의 내면세계의 모험보다 시시할 수밖에 없다.
초반에 책을 덮으며 아이의 금발에 입을 맞추고 자러 갈 시간이라고 일러줬던 것처럼 프리돌린과 알레르티네는 그들의 아슬아슬한 모험담을 덮는다.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의 전형적인 부부의 모습으로, 다시금 익숙하고 단단한 사회의 규범 속으로 안전하게 들어간다. 다만 알레르티네가 경고했던 것처럼 절대 미래의 일은 물어볼 수 없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살짝 열린 결말인 셈이다.
p.s 이원석 작가의 서평 쓰는 법을 읽고 독후감이 아닌 서평을 쓰려고 노력했다. 이게 서평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좌우간 서평을 써보니 독후감과 서평은 마음먹기 부분에서 완전히 차이가 난다. 내가 주관적으로 받아들인 감정, 소감을 쓸 때와는 다르게 내 판단이 맞는지, 내가 옳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지 끊임없이 의문이 든다. 그러다 보니 내 판단이 틀릴까 더 냉철하게 분석하려 하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를 해보려 하게 된다. 읽을 땐 별생각 없이 가볍고 마냥 즐겁게 읽었는데 그런 마음으로 읽으니 서평을 쓰기가 참 어렵다. 서평을 쓸 생각이라면 책을 더 집중해서 완독, 재독하는 게 좋겠다.
어설프더라도 서평은 또 서평의 맛이 있다. 앞으로도 종종 서평을 써봐야겠다.
그는 그때와 꼭 똑같이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게 뭐지. 그는 짜증스럽게 자문했고 자신의 무릎이 조금 떨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겁쟁이라고………? 말도 안 돼, 그가 자답했다. 서른다섯 살 먹은 남자인 내가, 개업의이자 기혼자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인 내가 술 취한 대학생 놈과 엮여서 뭘 할까! 결투 약속! 증인! 결투! 그리고 결국엔 이런 멍청한 시비 때문에 팔에 칼을 맞는다? 그래서 몇 주간 일을 못 하고? 아니면 한쪽 눈을 잃고? 아니면 심지어 패혈증에 걸리고? 그리고 여드레 후면 슈라이포겔골목의 그 사람처럼 갈색 플란넬 이불 밑에 누울 지경에 이르고!
그녀가 점점 이야기를 진행할수록 그에게는 자신이 체험한 일들이, 지금까지 진척된 상태로는, 더 우스꽝스럽고 더 무가치하게 여겨졌었다. 그리고 그는 앞선 모든 일들을 끝까지 겪어 보겠노라고, 그러고 나서 그녀에게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겠노라고, 그럼으로써 본인의 꿈속에서 신의 없고 잔혹한 배신자의 본모습을 드러낸 이 여자에게 보복하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것보다 더 깊이 그녀를 증오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가장 끝내주는 점은 훗날 언젠가 알베르티네가 이미 오래전부터 평온한 결혼 생활과 가정생활의 품속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을 때, 그녀에게 싸늘한 미소를 보내며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함으로써 그녀가 꿈속에서 자기에게 준 쓰라림과 굴욕에 보복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