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모인 모서리: 여섯 책방 이야기>
소심한책방, 손목서가, 고스트북스, 달팽이책방, 유어마인드, 동아서점
여섯 책방에서 구입할 수 있고 책방마다 표지가 다르다.
나는 동아서점에서 구입했다.
저자/발행 소심한책방, 손목서가, 고스트북스, 달팽이책방, 유어마인드, 동아서점
출간일 2019.12.27
분야 서점, 에세이
쪽수/크기 246쪽/108*162
ISBN 979-11-86946-27-5 (02300)
난 어딘가를 여행하게 되면 그 근처의 독립서점을 들리곤 한다. 어김없이 몇 달 전 속초 여행을 갔다가 속초중앙시장을 구경하러 가는 길에 '동아서점'을 방문했다. 보통 독립서점은 1인 서점 운영자가 대부분이어서인지 영업시간이 짧다. 때문에 시간 맞춰 방문이 어려울 때도 많은데 동아서점은 일요일을 제외하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운영해 꽤나 늦은 저녁 8시 즈음에 방문했다.
깜깜해진 밤에 들르는 서점은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낮과는 분위기가 꽤나 다르다. 밖에서 보면 건물의 벽은 어두컴컴하고 창을 통해 서점의 내부가 아주 잘 보이는데 문을 열면 딸랑딸랑 도어벨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책 냄새가 확 들어오고 도어벨 소리가 멈추면 이내 적막하다.
그럼 어쩐지 이미예 작가의 책 「딜러구트 꿈 백화점」도 생각나고.. (사실 「딜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은 적은 없다. 그러니 「딜러구트 꿈 백화점」 표지도 생각나고..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순식간에 낯설고 비밀스러운 공간에 침투한 것 같아 묘하게 기분이 들뜬다.
동아서점도 그랬다. 내 생각보다 훨씬 공간이 컸고 어쩜 그렇게 책을 궁금해지게 선별해 올려두었는지 가볍게 들렀다가 사고 싶은 책이 많아 마음이 묵직해졌다.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살 책들을 고른 뒤 함께 여행 온 S에게도 한 권 고르라고 아량을 베풀었다. 그리고 S가 고른 책이 이 「책이 모인 모서리」다.
선뜻 아량을 베풀곤 흠칫 놀랐다.
이 책을 보고 첫인상은 '나라면 안 골랐을 텐데.. 여기에 이렇게 좋은 책들이 많은데 이 서점에 온 게 너무 좋아서 서점 홍보(?) 책을 샀나 보네.'였고 내가 고른 책이 아니었기에 금방 잊었다.
S는 여행 내내 틈틈이 읽었고 돌아오고 나서 출퇴근길에도 가방에 넣어 다니곤 했다. 왜 이렇게 책을 오래 읽냐고 하니 너무 재밌고 좋아서 아껴읽는 중이란다. 속으로 '변명은..' 하고 또 잊었는데 어느 날 S가 말했다.
Q야. 여기 Q 같은 사람도 나와.
ㅋㅋㅋ 나 같은 사람이 뭔데.
정말이야. 여기 너랑 비슷한 사람이 나와. 읽어보면 무슨 말인지 알 거야.
고백하건대 나는 독립출판물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출판사를 통해서 출간한 책보다 가볍고 깊이가 없을 거라는, 나에게 유익하지 않을 거라는 편견. 세상에 읽을 책은 넘쳐나고 지금도 앞다투어 나를 읽어달라 아우성이니 독립출판물까지 읽기엔 시간이 많이 없다고.
그리고 나는 평소에 눈물이 아주 많은 것과는 별개로 책을 읽으며 의외로 잘 훌쩍이지 않는 편이다.
내 큰 편견과 작은 사실을 나란히 둔 이유는 자기 전 후레쉬 빛에 의지해 눈물을 훔치며 이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이렇게 마음을 울리고 웃기고 울리고 웃기는 책을 오랜만에 읽었다. 에세이는 그 자리에서 읽어버리는 편인데 이 책은 아쉬워 단짠 하루, 단짠 하루, 단짠 하루. 이렇게 사흘에 걸쳐서 읽었다.
그러고 보면 편견이란 참 우습고 가볍다. 나였으면 절대 안 골랐을 테지만, 남이 골라 읽으니 행복이 조금 늘었다. '재미는 한 곳에만 있지 않구나'하는 보편적인 사실. 깨지기 전까진 편견인 줄 몰랐고 나는 이제 세상의 더 많은 책을 즐기게 되었음에 S에게 새삼 감사하다.
개점 1주년을 맞은 곳부터 60년 넘게 지속해온 곳까지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담담하고 솔직한 이야기. 각자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한 것 같은데 겹겹이 모이니 알록달록한 여섯 가지 색채가 완연한 책방 이야기가 되었다.
제주 동쪽 끝 마을 종달리의 '소심한 책방'에서 조개 삼춘의 손때 가득 묻은 노트를 책으로 만든 『20열병 / 40℃』을 사서 종달리 앞 바다 모래사장에서 읽는 내 모습이 그려지며 나는 어쩐지 조개 삼춘을 만난 것도 같아 웃음이 절로 나오고.
등산화를 사려고 간 아웃도어 매장에서 두 아이를 데려온 부부가 4인 가족의 등산화를 고르고 있는 모습을 보며 눈이 빠질 것처럼 울어버린 '손목서가'의 주인장을 그려보며 마음이 너무 애달파진다.
어떻게 하면 방문해 주는 손님들이 더 편안하게 서점을 즐길 수 있을지 읽을 구석과 놔둘 구석, 앉을 구석과 마실 구석을 이리저리 골몰해 보는 '고스트북스' 주인의 마음이 푹 느껴져 포근해지고.
'달팽이책방'의 "자주 무너지고 상처는 덧남"에도 "책방은 내 삶의 방식을 세상에 발신하는 행위이자 이것을 알아보는 이들의 응답을 수신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에 용기를 얻는다.
팝업 코너의 『무슨 만화』의 픽셀 만화를 구현하기 위해 하나하나 붙인 69,169개의 정사각형 시트 조각의 마지막 조각을 개점 3분 전에 붙여 완성했다는 '유어마인드'의 팝업 코너 운영기들은 흥미진진하고.
마지막으로 '동아서점' 운영자의 미래의 서점 운영자를 향한 따뜻하고 살짜쿵 애달픈 편지를 읽으며 왜 동아서점이 행복했던 추억으로 기억되는지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책을 읽으면 그 책에 마음을 내어주든 그 작가에게 마음을 내어주든 그 무엇에게라도 마음을 내어주게 되는데 이번엔 작은 책방들에게 마음을 내어주게 되었다. 역시 무언가를 홍보하기에 아니 스며들기에는 책만 한 게 없다.
여섯 책방 하나하나 네이버 플레이스에 저장해두었고 마음에도 따로 저장해두었다. 언젠간 찾아갈 테다. 그곳에 여행할 일이 있어서 들리는 게 아니라 그 책방을 가기 위해서 여행을 갈 테다. 마음을 먹으면서. 그때까지 각 동네의 사랑방들이 굳건히 자리를 지켜주길 조그맣게 소망해 보며.
그런데 1주년을 맞이했던 손목서가는 어느덧 5주년이 될 테고 여섯 책방들은 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텐데『책이 모인 모서리: 여섯 책방 두 번째 이야기』를 발간할 생각은 없으려나.
PS. 아, S가 말한 나랑 비슷한 사람은 단숨에 찾았다. 그리고 엉엉 눈물을 흘렸다. 하하하하 너무 부끄러워 길게 쓰지 못했다. 난 결혼을 했으니 단단한 가부장제 안에 존재하고 서울에 사니 주변이 아니고 변두리가 아니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으며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모른다. 비교적 안락하게 사는 내가 비슷하다고 했을 때의 모순이 멋쩍어 더 쓰지 않았다. 더 깊은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음이 무서워 쓰지 않았다.
책을 깨끗하게 볼 수가 있다니 조금 신기할 따름. 나는 몽당연필 한 자루를 갈피에 끼운 책을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설 때가 좋다. 그러다 어딘가 좋은 자리에 앉아 읽던 페이지를 펼치면 내게 가장 좋은 시간이 나에게서 흘러간다.
p.58 '손목서가
한 가지 분명히 해두자면 나는 스스로 불행한 자에게만 불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불행의 뜻이어서 그렇다. 재난과 사고, 범죄와 폭력이 침범한 삶은 불행한 삶이 아니라 고통받는 삶이다. 불행과 고통을 구분하는 것은 고통받는 삶을 공동의 삶의 영역에 위치시키기 위함이다. 고통받는 삶은 함께 더 나은 삶을 향해 움직여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p.75 '손목서가'
가장 무서운 상상과 공포는 늘 내 안에서 나왔다. 나의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 가족의 희생을 치르머 모험을 했는데 그 끝은 결국 사회 빈곤층으로 떨어지리라는 공포.
p.158 '달팽이책방'
책방은 내 삶의 방식을 세상에 발신하는 행위이자 이것을 알아보는 이들의 응답을 수신하는 곳이다. 발신할 수 있다면 이곳은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다. 수신할 수 있으려면 내가 무엇을 발신할지 알아야 한다. 그렇게 발신하고 수신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p.162 '달팽이책방'
그건 저 개인의 모멸감과는 전혀 다른, 서점 운영자라는 직업인으로서 느낀 절망감이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에 관계없이, 서점 운영자는 프로페셔널로 인정되지 않는 사회. 그게 제가 당시 뼈저리게 느낀 한 문장이었고, 저는 그런 세상에 화가 났던 것이었어요.
p.257 '동아서점'
서점 운영자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 질문의 마지막 글자 같은 사람이고, 그 대답의 첫 번째 글자 같은 사람입니다. 이게 무슨 괴상한 말이냐면, 서점 운영자는 늘 현장에 있다는 말입니다. 책과 책이 바삐 오가는 현장 속에, 책에 관한 물음과 대답이 오가는 현장 속에,
p.259 '동아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