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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fulmito Mar 11. 2023

남편과 데이트

 

 방학 동안에는 친구들 만나느라 정신없었는데 개학을 하고 나니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친한 친구들도 모두 일을 하러 가고, 이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오전엔 나가서 혼자 걷고 그림을 그리고 책도 읽고 공부도 하는 고요한 시간이 이어진다. 오후 늦게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자유 시간이다.


 남편이 "내일은 오랜만에 카페 갈래?" 하고 묻는다. 사실 겨우 이틀 전에 아이들 없이 둘이서 브런치 카페를 다녀왔으니 오랜만은 아니라고 웃으면서 "좋아"라고 대답한다.


 늘 어딘가에 갈 때 난 내 주장이 강한 편이다. 주변에 "네가 골라. 네가 정해."라고 하거나 결정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정한 곳들을 좋아해 주면서 자신감이 붙어 마음껏 내가 고른 장소에 친구들을 데려가는 것이 하나의 재미가 되었던 탓도 있다. 남편도 늘 "당신 맘대로 해." 하는 말을 자주 하다 보니 내 마음대로 하는 게 당연한 줄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카페 고르는 취향이 좀 다른 편이다.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원하는 취향이 너무 확고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커피맛을 잘 모르는 내게 카페를 고를 때 커피맛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고, 창문은 크고 넓어야 하고 바깥 풍경에 그릴 거리가 있어야 한다. 크고 유명한 카페들은 창가 자리 잡기가 힘들어서 작은 카페를 선호한다. 반면 남편은 작은 카페는 답답해서 좋아하지 않고 커피맛이 중요하다.


 그동안 너무 내 마음대로 한 것 같아 남편에게 마음대로 장소를 고르라고 선택권을 내어 주었다. 시간이 남아도는 휴직자로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언제든지 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편은 두 장소 중 하나를 고르라고 다시 나에게 선택권을 토스했지만, 오늘은 온전히 남편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의 선택에 따라 장소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이, 남편을 따라 버스를 탄다. 가방에는 그림 도구와 책 한 권이 들어있다. 그림 그리기 적합하지 않은 장소라면 책을 읽으면 된다. 나름 준비성이 철저한 나들이다.

 

 조그만 골목길로 들어가 낡은 거리를 따라 걷다 보니 빈티지하고 느낌 좋은 카페가 하나 나타난다. 문을 열고 들어가 주문을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는 조용하고 넓은 공간, 창 밖으로는 옛날 건물들과 요즘 건물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진다. 아~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카페이면서 남편의 필요도 철저히 충족하는 카페다. 고심해서 장소를 고른 남편의 배려에 기분이 좋아진다.


 3층으로 올라가 창가 자리를 잡으려다 그 안쪽 소파 자리를 잡았다. 편한 의자를 좋아하는 남편을 나도 조금 배려하려고. 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남편은 12월에 가기로 한 여행을 위해 비행기 티켓을  검색한다.


 여행 다녀온 지 일주일도 안 되어 다음 여행 티켓을 빨리 잡아놓고 싶어 안달이 난 아내를 위해 남편은 많은 것을 양보를 해 주었다. 나도 나름 남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볶지 않고 며칠을 잠자코 기다렸다. 이번 여행을 다녀오면서 우리는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배려하게 된 것 같다. 여행 중에 서로 마음 상하는 일들도 몇 번 있었지만, 덕분에 서로를 더 알게 됐겠지.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는데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서로를 잘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렇게나 표현해 버리면 마음이 상한다. 지혜롭게 표현하는 방법도 여러 차례 경험이 쌓여 터득되는 거겠지. 결혼 18년 차. 그래도 지금까지 잘해 왔고 잘해 고 있다.


 그림을 완성하고 나니 점심시간이다. 밖으로 나가 아무렇게나 걷다가 밥집을 찾는다. 조용한 식당에서 깔끔한 찜닭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 집으로 복귀한다. 아이들이 꽤 자라서 남편과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둘이 즐겁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우리도 이제 빈 둥지 가구를 준비할 때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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