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우리 모두, 나의 삶은 내 역사이고, 내 역사의 현장을 살아간다.
무언가 정치, 경제적으로 큰(?) 일이 터졌을 때, 언론은 '역사의 현장'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리고 여기에 서술어를 붙여, '역사의 현장에서 함께 한다'라던가, '우리는 지금 역사의 현장을 보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런데, 도대체 '역사의 현장'이란 말의 정의가 있을까?
검색을 해보면, 역사의 현장이란 '개인의 역사보다는,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역사적 큰 사건이 일어난 장소 혹은 시간'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난 여기서 '개인의 역사보다는'이라는 말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세상은 얽히고설켜있다. 어떤 거대한 역사적 사건도, '개인의 역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는 없다. 반대로 거대한 역사적 사건은 '개인의 역사'가 많은 이들로부터,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모이다가, 어떤 촉발점이 생겼을 때, 발생하는 일인 것 같다. 그래서, 난 역사의 현장이란 '오랜 시간 동안, 혹은 많은 사람들 개개인의 역사가 모여, 폭발하는 장소'인 것 같다.
난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개개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 공격을 받았을 때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이태원참사가 일어났을 때, 오송지하차도참사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 그리고 그 마음이 다시 몸을 움직이게 한 것은, 그 참사의 희생자들의 일상에 대한 공감과 안타까움이었다고 생각한다. 여느 날처럼, 가족과 저녁을 먹고, 친구들과 놀러 간 이야기, 아침을 먹다가 가족끼리 평소처럼 티격태격하다 출근했는데, 사고당했다는 이야기 등등.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평범한 하루하루의 일상이 공격받았을 때, 사람들은 공감하고, 마음 아파하고, 그리고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이 분노하고, 좌절하며, 자발적으로 모이고, 움직이는 것은 내 하루하루의 '일상'이 공격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낮에 일하고, 밤에 푹 자고, 다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 군대에 간 아들이, 나라를 지키는 일에 일정기간 헌신한 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와 기다림. 오늘 하루 주어진 일 혹은 해야 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나면,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하루가 될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이런 내 일상을 지켜주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라는 암묵적인 믿음. 이러한 '평범한 일상'을 공격받았다고 느꼈기에, 다들 분노하고, 모여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 최근 며칠간 내 일상이 공격받았음을 느끼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커다란 대의명분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평범한 하루하루'를 가장 빨리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실행하는 것일 것이다. 몇 달 후, 몇 년 후.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 무언가 더 큰 관점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듯 보이지만,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은 '오늘'에 최선을 다해서, '오늘'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중요한 것은 오늘의, 하루하루의 평범한 일상이다. 지금 시민들은 이 소중한 일상을 공격받았기에 분노하는 것이다. 이걸 위에 계신 분들이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