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중독자들의 탄생
요즘 제가 참석하는 독서 모임이 여럿 있습니다. 제가 운용하기도 하고, 참여하기도 합니다. 그 중 으뜸은 매주 토요일 새벽 6:40에 모이는 양재 나비입니다. 저 역시 책 좀 읽어 본 사람으로 일주일에 한 권 지정 독서를 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우랴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일상에 쫓기다 보니 일주일은 금세 다가오더군요. 일주일에 책 한 권 읽는 것,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경영, 경제, 미래, 혁신 등의 주제의 책은 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게다가 밑줄도 쳐야하고 나의 생각도 첨부해야 하니, 시간 소요는 더 많아졌습니다. 그런데도 그 모임에는 늘 빠지지 않고 가고 싶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그곳에 가면 제가 엄청난 에너지를 얻고 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곳에는 각양 각층의 분들이 모입니다. 그래서 나눔도 더 흥미롭고 신선합니다. 경영에 접목시켜야 할 방법론을 가정의 아이들에게 적용해보시는 사장님도 계시고, 연애하는 데 치밀하게 활용했던 분도 계십니다. 미용실을 하시며 눈코뜰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작정하고 독서에 파고들어서 1년에 1004권의 책을 읽으신 분도 계십니다. 연령층 역시 다양합니다. 6,7세 아이들로부터 70세가 다 되신 어르신까지 그 폭이 매우 넓습니다. 하지만 서로에게 호칭은 ‘선배님’입니다. 나이성별을 불문하고 서로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다양한 분들이 앞에서 독서 후 감상을 발표하는 시간이 되면, 모두 그 분에게 ‘힘’을 실어드립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어떤 분이 그러시더군요. 이상한 피라미드 사업 설명회인 줄 알고 도망가려 했었다구요.
대학원에서 오랜 시간 공부도 해보고 세미나도 경험해 보았지만 대부분 공부하고 책 읽는 사람들은 ‘수동적’입니다. 왜일까요? 대학원에 있다보면 사실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보다 훨씬 더 방대하고 많은 지식들을 습득해야 합니다. 대개는 각 분야 즉, 역사, 철학, 문학의 소위 대가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개 대학원생은 점차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 먼지 같은 존재가 되어갑니다.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우스갯 소리로 그런 얘기들을 나누지요. “대학원은 돈 내가면서 욕은 바가지로 먹는 곳이다”라고요. 하지만 웃어만 넘길 일은 아닙니다. 공부만 하다보면 에너지가 엄청나게 소모됩니다. 내면을 채우는 독서가 아닌 내면을 갉아먹는 독서를 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특히 독서 후 세미나를 열게 되면 불꽃이 튑니다. 다정한 불꽃이 아닌 잔인한 불꽃이 튑니다. 토론자의 주장 대부분에는 상대방은 틀리고 나는 옳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저처럼 소심한 성격의 사람은 대개 패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인문학 공부를 하는 사람들 중엔 성격이 비뚤빼뚤한 사람도 많습니다. 머리에 지식은 넘쳐 나는데 가슴은 냉랭한 사람도 많습니다. 하루 24시간 365일을 공부하는 데만 시간을 소비하다보니, 4차원적인 발상을 드러내 보이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글은 기가 막히게 쓰는데, 그 말들에 독한 말들이 가득한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삶 속에서 배운 이론을 실천하려는 멋진 실천가들도 많습니만. 지식만 가득하다고 좋은 사람,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때론 그 지식이 창이 되고 칼이 되어 다른 사람을 찌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외부에서 만나는 독서 모임의 분들에게 더 큰 애정을 느낍니다. 그분들은 독서를 단지 머릿 속에만 담는 지식으로 남겨두지 않습니다. 배운 즉시 생활에 적용시켜 봅니다. 그래서 삶을 더 긍정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꿉니다. 그리고 이를 다른 이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전파하기도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돈 들여 시간 들여 배웠던 지식들, 그 지식으로 조금은 우쭐했던 그 어떤 때가 순간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니, 참 많은 분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계시더군요. 연령층도 다양하고 방법도 다양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독서를 통해 삶을 바꾸고자 하시는 분들이 참 많구나,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 모임에서 솔선수범하며 책 리더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시는 분들의 성실한 노력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인문학을 처음 배울 땐, 저 역시 인문학이란 아름다운 가치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겠다,는 포부를 지녔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실천하며 살기엔 어려움이 뒤따랐습니다. 일단, 바빠지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당장 눈 앞에 이익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강좌를 열어도 사람을 모집하기 힘들었고, 그분들의 눈높이에 맞게 강좌를 기획하는 일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열리는 강의가 너무 적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 오히려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인문학이 어떤 소용이 되고 필요로 쓰임받기를 바라기보다 작게나마 사람들 틈에 파고들 수 있게 해보자,라고요. 자세히 살펴보면 인테넷, SNS 만능 시대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글쓰기’를 합니다. 또 좋은 글쓰기를 위해 독서를 합니다. 커피 한 잔 마실 돈으로 좋은 명사들의 강연에도 참여합니다. 인스타, 페북, 블로그에는 다양한 강연, 교육, 책소개, 영화리뷰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문학이 넘쳐 납니다. 유튜브에서도 북리뷰의 조회수는 늘 높은 순위를 차지합니다. 사실 우리는 늘 갈망해 왔던 것이지요.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며, 왜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을요.
저는 이런 독서 열풍이 참 감사합니다. 가슴의 열정을 단지 나 하나만 잘먹고 잘살아야지로 좁히는 게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확대시키는 모습들이 참 아름답습니다. 독서를 하고 깊은 생각을 하다보면, 우리는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반성도 하게 되고, 성찰도 하게 됩니다. 마음의 건강함을 되찾게 됩니다.
독서가 삶이 되고, 삶이 독서가 되는, 그런 우리들이 많아지다보면 그 영향력은 점차 커질 것입니다. 비바람이 우리를 흔들어도 쓰러지지 않는 우리가 될 것입니다.
잠시 흔들렸던 저를 일으켜 세워준, 그리고 독서의 지평을 다시 열어준 많은 선배님들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욕심부리지 않고 꾸준함으로 삶을 천천히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일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