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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영 Nov 13. 2021

즐거운 겨울

박완서 <수많은 믿음의 교감>

 봄을 믿을 수 있는 건 여기저기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봄에의 약속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섭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 박완서, <수많은 믿음의 교감>,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세계사, 2020.



    겨울보다 봄에 무지개다리가 많이 뜬다고 한다.


    차라리 겨울에는 봄에 대한 희망이 있으리. 봄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아픈 것이다.


    싹이 터져 나오는 소리, 개나리가 튀어 오르는 소리, 벚꽃이 흩날리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혀 와도, 나의 몸이 겨울에서 깨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다.


    눈동자가 얼어붙고. 입김이 서리고, 턱이 고드름이고, 늑골이 텅 빈 설굴(雪窟)이고, 가슴이 떠내려가는 빙하이고……. 그래서 봄은 비참하다.


    그럼에도, 어리석게도 봄을 또 기다린다.


    다음 봄에는 괜찮겠지, 1년이 지나고, 다음 봄에는 괜찮겠지, 2년이 지나고, 그 다음 봄에는…… 3년이 지나고…… 이제 찾아들 봄은 네 번째 봄이다.


    이제 봄은 희망을 의미하지 않는다. 봄의 우울도 차라리 하나의 섭리이다.


    낫지 않는 지병을 사시사철 섭리로 받아들이는 게 마음이 편하리…….


    그러므로 더 이상 섭리는 믿음이 아니다. 섭리는 차라리 항복이다. 항복함으로써 평안을 바라는, 평안을 바람으로써 낙담해버린 쾌유를 바라는, 절망한 희망을 희망하는 절망이다.


    아, 눈이 꽃비처럼 흩날린다. (202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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