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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영 Dec 31. 2021

오만 질투

김상미 <노랑나비 한 마리>

 어차피 나는 누구의 구미에도 맞지 않고 맞추지도 못하는

 길 잃은 이 시대의 슬픈 문학적 나비떼 중의 한 마리 나비


- 김상미, <노랑나비 한 마리>,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2017.



    ‘등단용 시’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던 날이다. 2~3년 전에 매일매일 습작하던 나는, 첫 시집을 낸 시인의 낭독회에 갔다. 재기발랄하고 기교 넘치는 시인이었고, 습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나에게 그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따라할 수 있다면 따라하고 싶을 정도였다.


    시인을 시인으로 등단하게 해준 시편을 낭독하고 사회자는 시인에게 물었다. “이 시로 등단하셨는데, 등단용으로 쓴 시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요새 문예창작과가 등단을 휩쓰는데, 글만 쓰고 사니 당연하기도 하겠다. 그런데, 출판사별 등단 스타일이 있다고 뜬소문처럼 들어보긴 했지만, 그들은 정말로 그 스타일의 정체를 뚜렷이 아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에 맞게 자기 시를 일부러 맞춰 쓴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그들에게 존경보다 질투심이 자리하였다. 더욱이 이공계열인 내 주변은 문단계는커녕 문학은 자체에 관심 없는 이들이 많아서, 정보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나의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후로도 문예지와 신춘문예에 계속 투고했지만 낙담만 커져갔고, 질투는 이제 분노로 변해갔다. 치사하고 더러워서 내 스스로 등단하겠다! 그리하여 출간한 것이 내 시집 『무한해서는 안 됐다 슬픔은』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투고를 안 하는 것인가, 하면 부끄럽게도 그렇지 않다.

    예상은 했지만, 독립출판은 정말로 팔리지 않았다. 가뜩이나 독립시집인데 기성시인들의 것이나 흉내 내고 있으니, 누가 굳이 내 걸 사겠는가, 등단시인들의 것을 읽겠지……. 기념시집으로 여기자고 합리화도 했지만, 쓰라림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은 또 등단을 노리는데, 너무나 먼 얘기인 것만 같고. 그렇다면 또 내 시집을 내볼까 하면, 시집이 읽히지는 않겠고. 내 시가 읽혔으면 싶어서 또 등단을 원하고…. 『무한해서는 안 됐다 슬픔은』을 내기 전이나 후나 변한 건 없었다.


    어쩌면 이런 것도 같다. 나는 도도한 나비인 마냥 자만감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성문단계에 기웃 독립출판계에 기웃, 흔들흔들 나풀거리는 것이 아닐까?


    이 글을 남기면서도 나는 다음 투고할 詩들을 추리고 있다. (20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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