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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Sep 04. 2022

관음과 노출 사이

어릴 적 우리 집은 방이 3개였다. 그중 1개의 방은 세를 주었다. 산복도로에 있고 화장실도 좋지 않았던 우리 집 방세는 싼 편이었다. 신혼부부가 살림을 모으기 위해 1~2년 있다가 나가기도 했고, 조선소 다니던 청년이 자취를 했고, 부산으로 일자리 찾아온 아가씨가 머물기도 했다. 그중 아가씨가 자취를 했을 때 너무 좋았다.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마치 언니가 생긴 듯 여겨졌다. 아침마다 곱게 화장을 하고 출근하는 아가씨의 얼굴에 빛이 나 보였다.

 아가씨가 출근할 때마다 갓 일어나 까치집을 머리에 얹고 산발인 나는  멋진 아우라를 보이며 대문을 나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안타깝게도 아가씨는 나와 친하지 않았다. 내성적인 성격이어서인지 말수도 적었고, 방에 오면 불만 켰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나는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엄마가 아가씨에게 반찬을 갖다주라고 한다던가 소소한 심부름을 자처하며 방을 둘러보고 왔다. 사춘기로 접어들기 시작한 어린 소녀의 호기심은 그녀를 훔쳐보고 따라 하기에 이르렀다. 엄마의 화장품을 몰래 꺼내 아가씨처럼 얼굴에 분칠을 하고 찐한 립스틱을 바르며 놀았다.

 어느 날, 아가씨가 출근했는데 방문을 잠그지 않은 걸 알았다. 문이 살짝 열려있는 것을 발견한 나는 문을 활짝 열고 방문 앞에 놓여있는 뾰족구두를 보았다. 나는 아가씨처럼 높은 신발을 신고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마당을 걸어 다녔다. 그리고 제자리에 두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문을 닫았다. 가슴은 콩닥거렸지만 엄청난 희열이 쏟아졌다. 이후에도 나는 아가씨가 출근하고 난 후 문이 열렸는지 확인하게 되었다. 강렬한 자극이 나에게 남아 또 아가씨처럼 행동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가씨는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이사를 가버렸다. 나의 훔쳐보기와 기행도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주기적으로 SNS 프로필을 수정한다. 기분이나 상태에 따라 바꾸며 나를 꾸미고 보여준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와 연결된 사람들의 프로필을 살펴본다. 어디를 갔는지, 뭘 먹었는지, 가족이랑 무엇을 했는지, 배우자는 어떻게 생겼는지 등등 의도치 않게 보며 재미를 느낀다. 그들이나 나나 공개적으로 보여주기로 한 사진들이니 윤리적으로 문제없지만 어떨 때는 파도타기처럼 따라가다 보면 너무 많은 정보를 알게 되어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 같은 교무실을 쓰는 선생님이 옛 연인과 헤어지고 새 연인이 생겨 데이트했다는 것, 동료 선생님의 부모님 생일 파티를 호텔에서 했고, 체육부장 선생님이 홀인원을 해서 동호회에서 상패를 받았다는 것 등등. 다른 사람들의 게시물을 보면서 아가씨를 보았을 때처럼 흥분될 때가 있다. 그러나 안심되는 것은 익명성이 더 보장된다는 점이다. 내가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 이상, 내가 말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내가 보았다는 것을 알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노출 심리’와 ‘관음 심리’가 있다. 관계에 늘 목이 마른 나에게 SNS에서의 노출은 나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타인의 관심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다. 더불어 따라 하고 싶은 타인의 매력적인 행동을 모방하려고, 혹은 ‘다른 사람도 다 비슷비슷하네’ 안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본다.


최근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이유는 유치하지만 자랑하고 싶어서이다. 방학 동안 서울 곳곳 투어를 하며 사진을 찍었는데 보여주며 자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을 늘어놓기에는 너무 얕은 사람으로 보일까 싶어 미치도록 보여주고 싶은 욕망을 인스타에 풀어보려고 한 것이다. 소심한 내가 익명의 대중에게 스스로 노출하는 놀라운 행동을 선택했다. 나의 이러한 행동은 요즘 시대의 트렌드다. 우리 시대는 자신의 삶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주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권장되고 있는 것 같다. 관찰 예능이 육아를 넘어서서 연애, 이혼, 일상으로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 어린이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고, 노출한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긴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하는 대신 소설책을 읽기로 했다. SNS로 소통하는 방법은 너무나 쉽고 빠르고 즉각적이라 생각할 겨를 없이 게시물을 올리고 있는 나를 그냥 둘 수 없었다. 노출과 관음으로 타인에 대한 관계 욕망이 불타오르는 것을 멈추고, 성숙하게 순화시키기 위한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스스로에게, 매력적인 것은 베일에 가려진 삶이라고 주문을 걸면서 소설 속의 주인공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을 건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면서 기-승-전-결로 나를 풀어내는 노출을 선택하자고 타협을 한다.      



 지금도 어제 동대문 전시회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동대문 전시 관련 게시물을 보며 나도 올려야 하나 갈등하고 있는 중이다. 샵과 단어를 조합하여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동대문#맛집#전시회#서울투어#노출#좋아요#맞팔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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