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자치회 아이들과 이벤트를 준비했다. 학교에 지원된 사회성 회복 지원금으로 학생들과 상의하여 점심시간에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만들고 진행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참 흐뭇했다. 우정 팔찌 만들기, 우정 엽서 쓰기 활동 등을 진행했는데 책임감을 가지고 의미 있게 진행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나는 아이들이 참여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핸드폰을 이리저리 갖다 대며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일부 아이들은 '브이'를 하며 응하기도 했고, 또 일부는 팔찌를 만드느라 신경도 쓰지 않았다.
교사들이 직업병 중의 하나는 결과물을 남겨놓는 것이다. 보고서를 쓰거나 발표를 할 때 필수 적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학습 결과물을 기록하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사진이다. 그러므로 어떤 교육활동이든지 사진으로 남겨놓는 것이 거의 습관화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아이들의 사진을 찍고 보니 표정들이 너무 예쁘고 대견해서 담임들이 소통하는 sns에 올렸다. 담임들의 칭찬하는 분위기에 나의 흐뭇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전 제 초상권 사용에 동의한 적 없습니다. 단톡방에 계신 선생님들은 모두 사진 삭제 부탁드립니다!"
아뿔사!
아이들 사이에 조그맣게 찍힌 선생님의 사진이 있었던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단톡방에 올린 것이다.
아이들을 대견해하던 분위기는 메시지 하나에 반전이 되었다. 내가 마치 죄인이 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사진을 모두 삭제하며 해당 선생님께 본의 아니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로 답장을 했다. 해당 선생님은 전화도, 문자도, SNS에도 답이 없다.
선생님의 답을 기다리면서 되려 나는 반감이 생기고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업무상 만든 담임 단톡방이긴해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마음 나누는 사이로, 1학년 교육과정을 이야기하며 공동체로서의 통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개인 초상권을 운운하니 그간의 관계가 허무하기 짝이 없다.
나에게 개인적으로 말해주었거나, 조금 더 애교 있게 말해주어도 좋았을 것을.... 굳이 저렇게 사무적으로 글을 써야 했나 싶어 서운함이 생겼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내가 해당 선생님을 도와주었던 일이며, 노력했던 것이 다 헛짓이 아닐까 했다. 마음이 상당히 불편한 채로 주말을 보냈다.
그러나 나의 서운한 마음이 더 크게 자리를 잡아 표정과 행동에서 튀어나올까 싶어 경계했다. 교무실로 찾아가 선생님을 만나 사과하며 이해를 구하는 것이 맞는 행동임을 알고 있다.
개인정보가 중요한 시대에 내가 실수를 한 점은 부인할 수 없었다. 공동체니 암묵적 동의니 하는 것은 내 입장이며 변명일 뿐이다. 해당 선생님의 입장에서 보면 황당하고 싫을 수 있다(이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내가 경솔했고 잘못한 것이 맞다.
나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싶어 한다. SNS에 글을 올렸을 때 동의와 공감의 댓글이나 이모티콘을 보면 기분이 좋다. 그래서 아이를 키울 때 아이의 다양한 표정 사진을 공유하기도 했고, 업무상 실수를 투덜투덜 하소연도 했으며, 핫플레이스에서 경험한 것을 자랑하기도 했다. 내 이야기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공감 표시는 곧 격려와 위로의 표시였다. 소속감을 주기도 하고 특별한 존재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나는 공감에 중독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SNS에 아이들 사진을 올린 것을 두고,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다.
공감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이만큼 잘하고 있다고 홍보하고자 한 것은 아닌가.
학년 부장이니 온라인에서도 주도권을 가지고자 한 것은 아닌가.
일방으로 정보와 감정 공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모든 감정이 범벅되어 흥분된 나머지 정작 생각해야 할 중요한 이성의 끈은 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공감이 중요한 시대라 해도 남발은 부작용을 유발한다.
문제를 제기한 선생님이 밉지만 고맙다.
하! 이제 얼굴 붉히지 않고 이야기 할 일만 남았다. 대면하며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하는 일!
공감은 쉬운 게 아니라는 걸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