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낀느 Aug 01. 2024

막말 댓글에 상처는 받지 않으려 하지만


이제 싸울 일이 거의 없다. 부부 싸움도 가족들끼리도, 친구와도. 글을 쓸 때도 예전에는 내 말이 먼저였지만, 이제는 남을 상하게 할지 저어하여 늘 진중하게 말을 고른다. 나이 먹은 자의 당연한 배려다. 

그러고 보면 개인의 행 불행을 차치하고, 평생 안온한 세상에서 살아왔다 싶다. 집과 학교, 학원. 나름대로 안전하고, 막말 따위 쓸 일이 없는 세상이었다.      


몇 년 전 내 학원에 노랗게 머리를 물들인 예쁜 여자 중학생이 왔다. 외모와 달리 걸걸한 목소리를 지녔던 그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욕을 수시로 내뱉었다. 솔직히 속으로 기겁했다. 어른 앞에서, 선생 앞에서 맞대고 욕하는 아이는 그때 처음 봤다. ‘x나’ 같은 말은 이제 욕도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조그맣고 이쁜 입에 그 애는 욕을 달고 살았다. 


참다못해 과자를 사다 나눠 먹으면서 분위기를 풀어놓고 달랬다. 

“앞으로 내 앞에서는 욕 쓰지 마. 왜? 내가 기분이 나빠지니까.”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하자, 아이는 아이인지라 히히거리며 경쾌하게 대답한다. 

“네!”

그 정도가 잊을 수 없는 막말과 욕에 대한 기억이다.  

   

지난주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로서 제주와 삼겹살에 대한 글을 썼다. 그 기사의 네이버 판에 댓글이 60개 달렸는데, 그 내용이 정말 기가 막힐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반말. 제주에 대한 원망과 분노, 질타. 

정말 사람들이 이제 제주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가장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 댓글은,

“응, 이미 늦었어.”

이 짧은 한마디였다.     


그 댓글들에 상처받지는 않았다. 단지 그런 댓글을 쓰는 사람들이 정말로 그렇게 느끼고, 경험하고 쓰는 것인지, 아니면 덩달아 ‘제주도 죽이기’에 동참하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남을 비난하고, 상처 주는 댓글을 쓰는 사람들의 심리적 배경은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에 잠겨본다.


얼마 전에는 브런치 작가의 글에 댓글을 달았는데, 내 댓글을 공격하는 글에 나도 상처를 입었다. 

‘그게 아닌데, 나는 제주도민 누구보다 제주에 사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만족하는 사람인데.’

싶어서 해명하는 답글을 달려다가 가만있었다. 아마도 정작 그 글을 쓰신 분은 댓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를 것이다.     


앞으로도 또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댓글과 상처에서 견딜 수 있는 근육을 좀 길러야겠다. 아니, 그런데 그게 기른다고 길러질 것일까?

어쨌든, 나는 평화로운 세상, 아름다운 말씨를 쓰는 사람들 속에서 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롬스의 임윤찬, 베토벤 황제를 듣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