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은, '내가 이제 엄마라니, 누구누구 씨가 아니라 누구누구 엄마라고 불려야 하다니'같은 고민(물론 이것도 큰 문제지만) 때문에 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섬세한 고민 좀 해볼 시간도 없이 전쟁처럼 치러지는 혹독한 스케줄 때문에 오는 거였다.
그 혹독한 스케줄의 시작은 모유수유. 하... 뭐하러 모유수유는 한다고 했을까. 신생아 때는 아기가 배고파할 때마다 수시로 먹이는 게 일반적인데, 모유는 분유와 달리 거의 한 시간에 한 번씩 물려야 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분유보다 소화가 잘 돼서 그렇단다. 아니 왜 또 소화는 잘 되고 난리지.
아기는 어떤 때는 먹인 지 30분 만에, 어떤 때는 한 시간 만에, 운 좋으면 한 시간 반 만에 깨서 맘마를 달라고 으앙으앙 울었다. 밤이고 낮이고 구분이 없었다.
밤샘은 그래도 자신 있다는 방송작가 부심(?)이 있었는데. 가여운 내 부심은 하루하고 반나절쯤 지나자 꼬랑지를 내리고 내뺐다.
젖몸살도 왔었구나 참. 온몸이 으슬으슬해 죽겠는데 아기 때문에 보일러도 빵빵하게 못 틀고(실내 적정온도는 22-24도인데 우리 아기는 태열 때문에 21-22도쯤으로 맞춰놓고 있다) 내복에 수면바지도 모자라 털모자와 털목도리까지 칭칭 감고 수유를 했다.
아가야 맛있니. 애미는 춥구나.
모유수유가 좀 자리 잡자(2시간 반-3시간마다 먹임), 이번엔 잠이 말썽. 조리원에선 눕혀놓기만 하면 잘 자던 아기가, 한 달 가까이 돼가자 갑자기 등에 초정밀 슈퍼 울트라 하이테크닉 센서를 탑재한다.
처음엔 안아서 재웠다 눕히는 걸로 됐는데, 센서는 점점 더 하이퀄리티로 업그레이드되어 아예 바닥에 내려놓을 수도 없게 됐다. 그래서 한동안은 내 배에 엎어 재웠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용납하지 않아서 자는 내내 안고 서있어야 한다. 앉아도 깬다. 가끔은 서있는 걸로 부족하고 내내 걸어 다녀야 할 때도 있다. 몇 주간 지속되자 팔이랑 손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아서 울부짖었고, 친구의 조언으로 슬링을 구매하기에 이른다. 한결 나았다. 진작 살걸.
배에 엎어놓고 재우던 시절. 이때만 해도 아기가 잘 때 같이 잘 수 있었는데... (아련)
슬링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잠재우기 노동으로 팔과 어깨와 허리와 고관절과 허벅지와 발바닥이 남아나지 않을 그 무렵. ver. 베타 3.5... 뭐 그쯤의 업그레이드가 한번 더 발생하는데, 바로잠투정이었다.
아기는 졸리면 울었다. 사력을 다해서 울었다. 그냥 좀 자면 될 것 같은데, 잠에 빠지지 않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어차피 질 거면서 그냥 자지 왜 그러는 걸까.
유튜브와 맘 카페와 블로그를 다 뒤졌다. 수면교육을 해야 한단다. 안눕법 퍼버법 뭐시기저시기... 생소한 말들을 신중하게 여러 번 보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도 해보았으나, 고민 고민 끝에 자연스럽게 혼자 잘 날을 기다려주기로 했다. 아무렴 지가 언젠가는 혼자 자겠지. (그래도 이제 밤잠은 누워서 자니까! 기특한 녀석. 예뻐 죽겠네.)
선생님 편안하십니까. 저는 어깨가 빠질 거 같습니다?
그렇게 매일 안 자려고 발버둥 치며 우는 걸 달래며 왜 울어, 왜 우는 거니, 말을 걸다 보니 요상한 설정을 하게 된다.
"아~ 우리 xx이가 꿈에서 엄마, 아빠를 훔쳐가는 도둑을 만나는구나! 그래서 이렇게 우는구나. 아이고 슬펐어. 그래서 자기가 싫어?"
남편이 내 얘기를 듣더니 살려고 애쓴다고 안쓰러워했다. 먼저 엄마가 된 친구는 애환이 느껴진댔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진짜 정신승리다.
나중에 내 아이에게 들려주려고, 혹은 산후우울증 안 걸리려고, 정신승리하려고 동화 몇 편을 쓴다. 그거 좀 올리는데 웬 프롤로그가 이렇게 기냐 싶지만, 쓰다 보니 스트레스가 풀려서 그런다. 며칠간 밤잠은 누워서 잘 자더니 오늘따라 눕히면 말똥 해지는 녀석 품에 안아 재우며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해두고 싶어 그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