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살 아기와 함께하는 방콕 여행 삼시세끼 4
엠쿼티어에서 돌아온 우리는 야시장에 가기 전까지 호텔방에 누워 짧은 휴식을 취했다. 이제 겨우 여행 일정의 절반 정도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 넉다운 되다니, 앞으로 남은 이틀이 걱정스러웠다.
야시장에 가고 싶다고 한 사람은 나였다. 남편은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매일 쇼핑몰만 가는 일정 중에 야시장이라도 한 번 가면 제법 여행 느낌이 날 것 같았다. 게다가 유명한 조드페어(짯페어) 야시장이 머물고 있는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매 시간마다 운행하는 호텔의 셔틀 툭툭이를 타고 야시장으로 향했다.
아직 해가 다 지지도 않은 시각인데 야시장은 사람들로 한껏 붐볐다. 이곳에 한국 연예인이 방문한 이후로 한국인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랭쌥을 많이 먹는 것 같다. 하지만 전날 랭쌥을 먹고 아주 크게 감명을 받지 못한 나는 야외에서 먹는 시원한 맥주와 튀김, 모닝글로리를 선택했다.
한국 사람들보다는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았던 야시장의 한 노천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징어 튀김, 모닝글로리, 파인애플 볶음밥과 함께 내가 마실 창 맥주와 남편의 콜라도 주문했다.
갓 튀겨져 나온 튀김은 맥주와 안성맞춤이었지만 모닝글로리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너무 짰다. 파인애플 볶음밥은 파인애플의 새콤달콤함은 전혀 느낄 수 없어서 아쉬웠다. 햄에서 너무 저렴한 퀄리티의 맛이 났고 남편과 나 둘 다 좋아하지 않는 건포도가 많이 들어가서 골라내느라 애를 먹었다. 뭐든 잘 먹는 남편이 파인애플 볶음밥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을 정도였다.
설상가상 주변 테이블 여기저기에서 담배를 피워댔다. 황급히 맥주와 튀김만 먹고 남은
모닝글로리와 볶음밥은 포장해서 도망치듯 나왔다.
926바트. 한화로 4만 원 정도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다른 곳보다 비싼 것은 감안하겠지만 음식맛이 평타 이하라 많이 아쉬웠다.
아쉬움을 달래려고 과일 과게에서 두리안을 사먹었다. 과육이 두 개 정도 들어가 있었는데 씨를 제외하면 전날 쑥시암에서 먹은 두리안과 양은 비슷한데 가격은 340바트로 두 배가 넘는다.
(야시장은 구경만 하고, 밥은 다른 맛집에 가서 먹는 걸 강력 추천!)
야시장 앞에 있는 센트럴 플라자 그랜드 라마9 에서 남편의 수영복을 하나 사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 돌아오니 제대로 저녁을 먹지 못해 금방 출출해졌다. 그랩으로 음식을 시킬까 하다가 맛이 없더라도 포장해 온 음식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파인애플 볶음밥과 모닝글로리를(먹다가 배를 채우고 나서 남은 것을 버렸다), 남편은 편의점에서 사온 귤을 아기와 나눠 먹었다.
점심에 먹은 5만 원 짜리 게살 오믈렛도 그렇고, 야시장도 그렇고 어쩐지 오늘은 만족스럽지 못한 삼시세끼였다. 다음날은 꼭 맛있는 태국 음식을 먹어야지, 다짐했다. 그리고 완전히 녹초가 된 나는 아기보다도 일찍 잠들었다.
다음 날, 원래 계획은 아기까지 데리고 아침식사를 위해 카오카무(족발 덮밥)을 먹으러 가려고 했다. 하지만 후기 사진을 찾아보니 휴대용 아기 의자 부스터를 설치하기 애매한 식당 의자였다.
남편이 그랩 택시를 타고 음식을 포장해오기로 했다.
호텔 방에 세탁기가 있어서 아기 빨래를 돌렸다. 그리고 럭키와 놀아주며 남편을 기다렸다. 한 시간 10분짜리 빨래 코스가 끝나고 어른 빨래를 돌리기 시작하는데도 남편은 깜깜 무소식.
차가 밀리나보다. 여행 3일째지만 방콕의 교통체증은 정말 적응이 안된다.
럭키도 슬슬 배가 고픈지 칭얼거렸다. 아기 아침밥으로 주려고 전날 밤 편의점에서 럭키의 최애 음식인 삶은 달걀과 흰밥을 사두었는데, 플라스틱 용기에 든 편의점 흰밥을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싶지 않아서 남편에게 식당에서 밥을 추가로 더 사오라고 한 터였다.
주방이 딸린 호텔방에는 식기구가 있었고 그 중에서 전자레인지 사용이 가능한 것을 찾아볼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릇들이 깨끗해 보여도 설거지를 하지 않고서는 사용하기 찜찜했다. 설거지를 한다해도 마지막에 헹굴 생수가 부족했다.
한국에서만 지낼 때는 수질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한국처럼 수돗물이 깨끗한 나라는 흔하지 않다. 말레이시아에 살 때에도 필터는 필수였고, 현재 살고 있는 미얀마 집에도 주방과 욕실에는 필터가 달려있다. 아기 식기와 물병은 필터를 단 물에 설거지를 한 뒤에도 생수를 열탕 하고, 아기 샤워의 마지막 단계에서도 생수를 데운 물로 헹궈준다.
방콕에 올 때 샤워기에 달 필터는 가져왔지만 주방 필터를 챙겨오지 않았다. 주방 식기를 사용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달걀만이라도 까서 아기에게 줘야겠다 생각했을 때 드디어 남편이 도착했다.
그런데….
밥도 고기도 모두 비닐봉지에 담겨 있다. 특히 고기는 국물과 함께여서 그대로 먹는 건 불가능해보였다.
배고프다고 보채는 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둘러 호텔 주방의 그릇들을 꺼냈다. 그리고 봉지를 살짝 뜯어 그릇에 받쳐 올려두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설거지를 하고, 룸서비스로 생수를 주문해서 헹궈둘 걸 후회했다.
미슐랭 맛집인데다 백종원 님이 나오는 프로그램에 소개되어 한국 사람들에게 더 유명해진 식당의 대표 음식답게 고기는 간이 잘 배어 있고 부드러웠다. 그런데 대충 찢은 비닐의 비주얼에, 씻지 않은 그릇의 찜찜함이 남아 음식에 조금도 집중할 수 없었다.
게다가 밥이 정말 별로였다. 찰기있는 한국 밥 스타일까지 원하는 건 아니지만, 혀끝과 입안에서 맴도는 터덜터덜한 식감이 입맛을 더 떨어지게 만들었다.
나와 달리 남편은 너무 맛있게 먹었다. 교통체증 때문에 또 사러 가고 싶진 않지만, 만약 식당이 근처에 있었다면 또 먹으러 가고 싶을 정도라고 했다.
그래. 만약 포장이 아니라 주방에서 따끈하게 갓 내온 음식을, 그것도 제대로 된 그릇에 담겨 있는 것을 먹었다면 훨씬 맛있었을 것 같긴 하다. 물론 밥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았겠지만.
가격은 너무나 저렴했다. (물론 왕복 그랩 택시 비용을 합친다면 결코 저렴한 한 끼는 아니었지만) 메인 고기와 밥 세 개까지 해서 190바트. 8300원 정도다. 단, 잘 먹는 사람이라면 양이 적을 수 있으니 큰 걸로 주문해야할 것 같다. 남편은 큰 사이즈를 주문하려 했으나 식당 직원분이 두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해서 중간 사이즈로 사왔는데, 내가 많이 먹지 않았는데도 살짝 모자란 느낌이 있었다.
남편이라도 맛있게 먹어서 다행이지만, 아 뭔가 아쉽다.
뭐지, 왜 어제부터 계속 실패하는 기분이지.
이번 방콕 여행에서 내가 바란 건 적당히 맛있는 태국 음식들과 우리 럭키의 질좋은 기저귀 구입 뿐이었는데 그 마저도 충족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