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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리라 Aug 09. 2021

누구나 처음은 초보이다

부동산 첫 투자부터 기본이론을 확실히 다져야 하는 이유

부동산에 관심을 두다보면 듣게 되는 속설중에 첫단추가 중요하다 라는 말이 있다. 비단 부동산투자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것이다. 

나의 첫 부동산매수는 2014년 서초구에 위치한 아파트 분양으로부터 시작된다. 2021년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2014년은 부동산 경기가 바닥이었고 투자하기에 최적의 조건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던 시절이었다. 그 옛날 광고에서처럼 다들 네라고 대답할때 아니오를 외치던 사람이 되어(이 광고를 떠올릴수 있다면 저와 같은 동년배) 그런 바닥시기에 그것도 무려 서초구에 부동산 투자를 처음으로 시작했다고 하니, 마치 처음부터 초고수 였던 것과 같은 분위기를 풍길 수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이야기의 끝은 비극이다. 제목에서처럼 초보자일수록 기본기를 다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전달하고파서 나의 사례를 조금 빌리는 것이다.


이 시절 아파트 분양을 받기까지의 나의 배경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2007년의 사회분위기는 마치 2021년이 주식과 코인붐이 일어난 것과 유사하게 적립식펀드가입이 그 당시 20~30대 삶에 녹아들던 시기였다. 그 시절 직장생활하면서 재테크 고민했던 사람중에 차이나펀드 가입여부 고민안한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고 미래에셋의 디스커버리, 인디펜던스 등의 이름을 단 펀드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속에서 사회에 나온 나의 직업은 금융권 재무설계사였다. 그렇기에 나는 자산형성은 펀드나 주식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그 당시 나오는 책 중 베스트셀러가 ‘하우스푸어’라는 제목이 있었을 정도로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부동산투자에 대해서는 관심사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인생에서 부동산 이라는 재테크가 다가오는 것은 사회적분위기와는 별개로 개인적 상황도 원인이 된다. 2013년 결혼을 하고 2014년에 첫아이를 출산함과 함께 나는 처음으로 자가소유에 대해 열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위의 이야기는 대중의 심리를 읽는 것에도 적용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가소유에 대한 열망이 생기는 타이밍이 바로 결혼과 출산이 겹치는 시기이다. 요즘은 1020까지도 부동산에 뛰어든다 라는 기사가 신문에 실릴 정도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부동산에 대한 큰 수요층은 30대 이후의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2명이었던 가족이 3명이 되고 4명이 된다. 신혼이던 시절에도 집은 소중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이것저것 고려해야되는 상황이 더 많아지기에 자가구입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당연한 흐름을 이해해야 부동산 투자를 함에 있어서 나의 매물을 사줄 상대방의 심리도 분석할 수있게 된다.


대표적인 2가지 투자처인 부동산과 주식 중 개인적으로 부동산은 주식에 비해 사람과 사람의 거래라는 특성이 더 많이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이야기 하면 매수자와 매도자, 부동산중개인 이 3명의 앙상블인 셈이다. 



당시 우리의 신혼집은 동작구에 자리잡고 있었고, 내 직장은 선릉역쪽에 위치해 있었다. 출퇴근을 하다보면 항상 보이는 교보타워 사거리의 전광판에 어느날 문득 분양공고가 떠 있는게 퇴근중 운전하는 나의 눈에 들어왔다. 남편과 함께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모델하우스를 한바퀴 돌아보는데 문득 모델하우스 내에 플랜카드로 걸어놓은 [선착순 동호수 지정 이벤트]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뭘까 싶어서 다가가 직원에게 물어봤다.


분양공고가 나면 청약통장을 사용하여 청약을 넣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선발된 사람들 중 당첨된 동호수가 마음에 안들거나 개인 사정에 의해 당첨된 아파트를 포기하거나, 당첨은 되었지만 이후 살펴보니 청약자격이 맞지 않는 부적격 사유로 인해 튀어나오는 호실이 있다. 요즘 말로는 줍줍, 바로 무순위추첨이며 지금은 모든 정보가 온라인에 노출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알고 참여한다. 

하지만 2014년만 해도 지금처럼 이렇게 공식화된 온라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런게 있다는 걸 알지도 못했고 설사 들었다고 해도 잘 믿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2014년의 부동산시장은 얼어붙어 있었기에 당첨이든 줍줍이든 수요자가 항상 부족하여 공급이 남아돌던 시절이었다.


각각의 건설사는 이렇게 부동산 심리가 바닥인 시점에서도 완판을 향해 자기만의 전략을 펼치고 있었는데 이때 방금한 건설사에서 선택한 전략이 아예 동호수를 지정해서 골라서 계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어 선택자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었다.

부동산에 대해 뭣도 모르는 초보자였지만 그 순간 나는 야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강남에 살아야겠다!”

비록 결과는 비극이지만 과정을 돌아볼때 참으로 칭찬해주고 싶은 선택이다. 

대상물이 무엇이든 사고파는 행위에 있어서 가장 기본은 수요와 공급을 이해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부동산은 결국 그 기본을 더 상향시키는 것이 입지이다. 강남은 우리나라 최고의 입지이고 항상 대기수요가 있는 곳이며, 그 지역을 갖겠다고 결심한 것은 당시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잡은 격이지만 탁월했던 초보자의 행운이었다


내가 고른 동호수는 그 아파트 분양매물 중 가장 큰 평수의 필로티 2층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시골에서 진짜 아무것도 없이 올라와서 닥치는 대로 일만하여 3명의 자식들 키움과 동시에 시골에 있는 동생들 줄줄이 걷어키운 장남장녀부부 였다. 그렇기에 항상 넉넉치 않은 살림이었고 그래서 나는 어릴때부터 32살에 첫 독립을 하기 전까지 작은 빌라에서 5식구가 북적거리며 살았었다. 그래서 넓은 집을 무조건적으로 좋아했다. 이런 개인적인 배경이 내가 겁도 없이 첫집을 48평이라는 대형평수를 고르게 한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첫아이가 아들이었기에 나는 나중에 아이가 자라면서 층간소음 문제가 반드시 일어날꺼라고 생각했고 그거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마음으로 일부러 필로티2층을 골랐다


우선 남편은 내가 대형평수를 골랐다는 것부터도 놀랐지만 왜 2층을 하는지도 몰랐기에 내 머리속 전략을 설명해 주었다.(그는 사실 그냥 놀러온 줄 알았던 모델하우스에서 동호수 지정을 하고 가겠다고 마음먹는 상황 자체에 제일 놀라고 있었다)

“강남의 이런 비싼집을 청약으로 청약통장써가면서 진행하는 경우 다들 원하는 건 고층일거야. 우리같이 어린 아이들을 키우면서 필로티2층에서 대형평수를 살만큼 경제적 여유가 많은 사람은 드물꺼고(나중에 알고보면 또 그렇지만은 않았다), 자금이 넉넉한 중장년층은 아이가 다 자랐기에 우리와 같은 이유로 필로티 2층을 선호하는 사람은 드물꺼야. 그러니 대형평수 2층은 당첨이 되어도 포기하는 할 확률이 높지 않겠어?”


청약발표가 난 날 단순하지만 확고했던 내 전략이 적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고른 동호수는 당첨자가 계약을 하지 않았고 모델하우스에 100만원을 걸고 차순위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우리에게 연락이 왔다.

당연히 안 될꺼라고 생각했고, 아마 된다고 해도 그냥 경험상 해보는 거지 내가 진짜 계약까지 하려고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듯한 남편과 다르게 나는 확고했고 이미 마음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수요와공급.

이것은 부동산 이론 중에 기본중의 기본이다. 현재 여러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부동산 가격상승의 전망을 뒷받침 하는 것도 이 수요와공급를 바탕으로 하여 각자의 주장이 펼쳐진다. 

특히 서울,경기 수도권의 부동산 시장은 공급이 현저히 부족하다

서울의 수요공


서울경기 수요공급

물론 공급이 부족하다고 해서 부동산 가격이 무조건 오르거나 하지 않는다. 2014년의 서울도 공급은 부족했지만 미분양이 넘쳐나던 시절이었으니. 다만, 확실한 것은 공급이 부족하면 전세가는 올라간다. 올라가는 전세가는 매매가를 떠받치는 하방방어선이 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수요가 많은 강남3구는 현재 매매가와 전세가 모두가 미친듯이 상승하고 있는 와중에 2021년 이후 공급은 여전히 부족하다.



2014년 당시 강남,서초의 분양시장은 2021년 현재 모습과 판이하게 달랐다. 정말 말 그대로 미분양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그랬기에 건설사들은 완판을 향해 수요자를 위해 여러가지 당근을 내놓고 있었다. 그때는 그래서 서울도 중도금대출도 무이자였고 분양권 전매제한도 없었다. 계약금 10%만 있으면 강남입성이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다만 나에게 그 10%가 전부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게 문제였던 상황이었다.


10%의 계약금을 마련하기 위해 갖고 있던 모든 현금을 총동원하고 일으킬 수 있는 대출도 모두 알아보고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께 돈도 빌렸다. 내가 당시 부알못임에도 이렇게까지 지를 수 있었던 유일한 믿는 구석은 그때 나는 현금흐름이 좋은 사업자였기에 이상태로 사업이 커져서 완공되기전까지 남은 기간 3년이면 어떻게 해서든 답이 나오게 할 수 있을꺼 같았고, 성과가 곧 수입인 1인 사업자에게 재무목표는 멘탈을 유지시켜 주는 가장 큰 원동력인데 이 아파트가 내가 사업에 있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해줄 강한 삶의 원동력이 되어줄 것 같아서 지른 결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 명의의 첫 아파트를 서초구 라는 지명에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부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 글의 맨 처음에서 말했듯이 결말은 비극이다.

잠시 슬픈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좀 더 이야기 하자면 나는 매일매일 동작구와 선릉역을 오가는 출퇴근길에서 지어지고 있는 건설현장보며 하루의 힘듬을 다독이고 기쁨도 얻으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3년을 지냈는데 입주를 진짜 코앞에 둔 2017년 6월중순에 전직장 대표의 사기행각이 수면위로 떠올랐고 나는 한순간에 초박살로 망해버렸다. 


그때 나는 입주를 앞두고 신혼집에서 월세로 한번 옮겨서 살고 있었다. 그집의 월세집의 계약만기는 입주에 맞춰서 2017년 6월로 만기를 해 둔 상태였고, 전세보증금이 5,000만원밖에 안 되었기에 당시 전재산을 날린 상황에서 분양받은 아파트로의 입주 말고 어디 갈 곳이 없었다. 더군다나 당시 아이를 봐주시는 친정엄마가 차도없이 매일 한시간을 넘게 왔다갔다 하시는게 힘들꺼를 생각해서 사시던 곳은 전세를 주고 우리집 옆으로 월세를 구해드려 이사와 계신 상황이었다. 그런 부모님의 집도 만기가 7월이었다. 이 모든것이 우리의 새집 입주시기에 맞춰진 날짜였고 날벼락 같이 닥친 사건이 친정부모님과 우리집  두 가족을 오도가도 못하게 만드느 상황을 만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2017년이 되면서 서울 주요입지인 강남,서초,송파의 집값이 가장 앞서서 오르기 시작했고 분양가보다 주변시세가 많이 올라준 덕분에 우리는 해당아파트의 잔금대출이 분양가의 거의 90%까지 대출이 나오는 기적이 보여졌다. 2021년인 지금과 다르게 그당시에는 대출도 엄청 잘 나왔다. 더군다나 지금과 다르게 아파트잔금대출의 경우 집단대출의 성격을 띄고 있었기에 개인별 소득이나 현금흐름이 큰 영향을 주지 않고 그저 시세에 맞춰서 대출액이 책정되었다. 부동산 규제가 강한 시기와 완화가 된 시기의 차이가 뚜렷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앞서 분양당시 계약금 10%도 대부분이 개인 대출이었는데 나머지 90%에 가까운 것도 잔금대출이 나왔다. 필요한건 취득세 였는데 이 돈이 없어서 형부에게 부탁하여 빌려서 냈다. 투자자문사를 운영하던 전직장대표로 인해 당한 사기였기에 이 회사를 믿고 자산운영을 맡겼던 이때의 피해자는 나 뿐 아니라 우리 부모님, 시부모님, 언니네까지도 모두 연결된 상태여서 나는 모두에게 너무 미안했고 어쩔 수 없이 언니에게 말해서 형부에게 돈을 빌려달라 부탁하는 마음이 더욱 처참했다.  


당장 살곳이 없어진 꼴이 된 우리는 그 곳에 일단은 들어가 살아야 되었고 갈곳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한달에 300~400만원에 육박하는 이자를 감당할수 없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이 일은 일단은 거처를 정할 수 있어서 가족에게는 다행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재앙의 시작이었다. 망했다더니 강남 신축 대형아파트에 이사를 갔다더라 라는 프레임으로 나는 엄청난 비난을 받기 시작했고, 사기사건으로 인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나의 위치가 변경되게 만드는 큰 역할을 한것도 어쩌면 이 곳으로의 이사였을지도 모른다. 그당시 전직장 자산운용에 자금을 맡겨서 날린 내돈과 내 가족의 돈이 7~9억이 넘어갔고 이 집은 그냥 대출로 들어온 깡통집이며, 둘째까지 임신한 와중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업도 문을 닫게되어 당장 먹고사는 걱정이 시급한 내 속사정을 아무리 설명해도 20년을 알아온 절친도 믿지 않았고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넌 지금 강남아파트에 들어가 살고 있잖아'였다


분양을 받아서 처음 입주하는 아파트는 그 명의를 개인소유로 가져오기 전까지 최소 6개월에서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건설사에서 조합으로 등기를 이전해주고 조합원분양분이 먼저 소유권이전등기가 일어난다. 그 다음이 일반분양분의 소유권이전등기가 일어나고 그때부터는 각각 명의의 부동산이 되는 것이다. 즉, 그전까지는 내 재산이지만 내 명의가 아닌 상태인 시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사를 옴과 동시에 이 아파트는 하루라도 빨리 팔아야 되는 아파트였다. 하지만 분양받아 입주하는 아파트의 소유권이전등기는 시간이 걸린다는 걸 처음에는 몰랐다. 소득이 없는 와중에 한달에 몇백씩 하는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서 당장이라도 팔고 싶었지만 건설사로부터 소유권 이전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6개월에서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고 답변을 들었다.

정말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남편에게는 이자는 내가 알아서 해보겠다고 했지만 정말 막막했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내 사업을 서포트 하고자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남편은 6월이후 들어오는 소득이 없어서 생활을 유지하고자 밤에 일을 나가기 시작했고 나만큼 충격이 컸던 남편은 이때부터 나에게 말을 거는 일이 급속도로 줄었고 어두워졌다.


결국 이 아파트는 다음해 2018년 2월에서야 소유권이전등기가 이루어졌고 나도 그제서야 처분이 가능해졌다.

이때 판 아파트는 그 때 이후로 분양가의 2배가 넘게 올라서 그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잡음과 동시에 넘사벽의 가격을 자랑하는 모습이 되었다.


내가 부동산을 제대로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다 내 인생에서 일어난 부동산스토리 때문이다.


나는 첫아파트를 분양받던 2014년에도 이 아파트를 팔수 밖에 없었던 2017년에도 사실 부동산에 대해 잘 몰랐다. 그냥 운과 감이 좋았던 거였고 나의 최장점인 실행력이 좋다는 것으로 일어난 일이다. 

만약 내가 지금처럼 지역분석을 할 줄 알고 수요와공급에 따른 전망을 할 수 있는 실력이었다면 어쩌면 나는 죽어라 이를 악물고 남편을 설득해가며 그 아파트를 지켰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때 깊은 수렁에 빠져 있었고, 희망이라곤 없었다. 그런 나에게 이 아파트는 그저 빨리 팔아버리고 싶은 골칫덩이에 불과했다. 아파트가 희망이 되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해봤다.


이렇게 잘 몰라서 놓친 아파트가 이게 끝이 아니다. 내가 그때 날려먹은 아파트는 서초동과 더불어 잠원동에도 하나 더 있다. 서초동 아파트는 2014년에 얼떨결에 줍줍을 한거 였지만 잠원동 아파트는 2016년에 목적을 가지고 일일이 발로 뛰어 줍줍을 하러 다녀서 손에 쥔 매물이었다. 이건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겠다.


수요공급을 이해하고 지역분석을 하여 부동산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하는 이유는 부동산을 매수하는 결정에도 큰 영향을 주지만, 그 부동산을 팔아야 되는 시기가 왔을때 지금 파는게 최선인건지 아니면 더 버텼을 때 그 존버의 노력이 나에게 더 큰 가치로 돌아올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주장한다. 지금 현재 내가 돈이 많든 적든 부동산은 공부해야하는 분야라고.

인생에서 처음은 다 중요하다. 첫 연애가 향후 나의 결혼에도 영향을 주고, 첫 직장이 향후 나의 커리어에 영향을 주듯 첫 부동산이 향후 나의 자산형성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준다.

그렇기에 지금은 여러가지 직업 중 부동산 강사로써도 살고 있는 나는 소중한 나의 수강생들에게 이러한 기본기에 대한 이야기를 열심히 강조한다. 나의 비극이 그들에게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강렬한 마음으로 말이다.


안녕 나의 첫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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