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할퀸 상처들
지난 여름
우리는 경기도 외곽으로 이사를 했다
이곳으로 이사를 하면서 가장 불리해진 상황은 출퇴근이었다
주어진 경제적 여건에서 서울보다는 이곳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활을 정착하기에는 좋았지만 그로 인해 포기해야하는건 어른들의 출퇴근 상황이었고 부모로써 아이들을 위해 그것은 감내할만한 대가라고 생각했다.
나는 매장운영을 하면서 저녁에 근무를 한다.
기존 집에서는 매장하고의 거리가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이사후 40키로의 거리가 되면서 차량으로도 왕복 2시간이 소요되는 출퇴근 거리가 되어 버렸고, 이곳은 대중교통이 서울만큼 좋지 않았기에 만약 대중교통으로 다닌다면 버스와 지하철을 총3번 갈아타는 왕복3시간의 거리로 되었다.
매장운영에 필요한 물품을 집으로 주문하는 경우도 많고, 대량주문시 배달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터라 이사오기전에도 가까운 거리지만 나는 주로 차로 출퇴근을 했었다. 그리고 퇴근시간인 매장 마감이 밤10시 혹은 11시였기에 이사 온 뒤에는 너무 멀어진 거리로 인해 퇴근 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집으로 온다면 자정에 가까운 늦은 시간이 되었고 그렇기에 나는 당연히 이사후에도 출퇴근은 차로 이동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사온 뒤 어느날 남편은 나에게 말했다
"이사하고 차로 다니면 기존보다 주유비가 30만원 더 늘어나.
일주일에 하루 정도를 정해서 대중교통 데이를 하는게 어때?"
얼핏 들으면 꽤나 합리적인듯한 이 말을 듣는 순간 지난 몇년간 반복되면서 이제는 질려버린 욱한 감정이 치솟았다.
"당신은 구제불능이다 진짜..여전히 모든 생각의 우선순위가 '아낌'이구나?
먼거리를 다니느라 힘들겠다라는 멘트 한마디도 없고 퇴근하고 오면 밤11시~12시가 넘기 일쑤인데.. 어쩜.. 그 밤 늦은시간에 퇴근해서 깜깜한 길을 혼자 올 부인에 대한 걱정보다 그저 교통비 늘어난거 밖에 생각이 안들지?"
남편은 또 입을 꾹 닫았다
이 욱함은 생각보다 깊은 상처였는지 저 대화를 하고 난뒤 불쑥 불쑥 화가 치밀어 올랐다
늘어난 비용이 걱정이 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열심히 해서 더 벌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그저 늘어난 비용만이 눈에 크게 들어오고 여전히 내가 소모되는건 안중에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분노케 했다.
물론 이사후 출퇴근 시간이 늘어난건 나만의 일은 아니었다. 남편은 직장이 강남쪽이었기에 원래도 멀었지만 이사 후 더 멀어지게 되었다. 그런 상황을 두고 나는 남편에게 한말은
"당신 아침에 더 일찍 나가야 되서 피곤하겠다"였다
어차피 강남은 차를 갖고 나가기엔 언감생심인 곳이기에 남편은 출퇴근에 아예 차를 이용할 생각도 없었고, 워낙 막히는 구간이라 차를 갖고 출근을 하면 출근시간이 더 오래걸리는 지역이었다. 그건 나도 알고 남편도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내 상황은 차와 대중교통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도 나도 알고 남편도 아는 사실이었다.
원래 하려던 공부였는데 넌 공부도 안하냐?라는 부모의 말이 상처가 되서 마음먹은것조차 하기 싫어지는 심정처럼 사실은 나도 그 먼거리를 매일매일 차를 갖고 다니는게 좀 부담이라 장거리이동이 어느정도 적응이 되고 무거운 짐을 가져가지 않아도 되는 날을 조절해서 10시에 마감을 하고 돌아오는 평일에는 지하철로 다니는게 낫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남편이 저 대중교통데이 멘트를 뱉은 이후부터 그저 분노했다
그렇게 남편이 말로 뱉어 심어둔 가시는 몇달이 지나고 내 안에 자리잡고 나를 계속 상처를 낸다.
그 이후 차를 가지고 나가는 날이면 나는 내가 과연 차로 출근을 할 자격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된다.
배달이 있다거나 집으로 배송온 매장물건을 실어날라야 한다거나 등의 돈벌이를 위해 차를 가지고 나가야만 하는 이유를 발견해서 남편에게 어필하게 되고, 아무런 이유가 없음에도 시간과 체력의 효율성으로 차로 출근을 했는데 일매출이 저조하게 나오면 나는 자격지심에 의기소침해 지게 된다
그렇게 남편은 나에게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상처를 심어두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자차출근이 나에게는 명분이 필요한 선택이 되었고, 제대로 된 명분을 가지지 못한 날이면 그저 일하러 가는 나의 체력을 편하게만 해주는 이런 선택이 나를 죄책감에 들게 하는 선택으로 변한다.
남편의 오로지 아낌우선순위의 삶은 본인이 좋아서 본인만 할때는 상관이 없지만 나를 평가하고 비난하면서 이야기 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나는 자차출근 등의 이런 사소한 것에서도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가 하며 스스로를 평가하게 만들고 위축되게 만든다.
문제는 이런 이슈가 아주 자주 여러번 반복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남편의 말투로 인해 내가 여러차례 상처를 받고, 자존감이 떨어지고, 둘간의 싸움을 유발하고 있음을 어필했음에도 남편은 고쳐지지 않는다.
그 아낌우선순위의 삶이 나의 자발적 의사로 먼저 시작된거라면 나 역시 하나도 상관없다.
자발적행위는 즐거움과 뿌듯함까지 동반하고 남편이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나도 스스로 그런 부분이 많은 사람이다. 일하면서 바깥음식을 매일 먹음이 아깝고 지겨워서 자발적으로 도시락을 싸서 다니기 시작하고, 커피도 꼭꼭 집에서 텀블러에 싸서 나가는 식으로 스스로의 결정으로 아낌을 나도 한다. 근데 남편은 거기서 한단계를 더 원하면서 나를 비참함에 빠지게 만든다
도시락을 싸고 다니기 위해 따뜻한 보온도시락을 새로 구매하는 행위를 함에 있어 "굳이"라는 시선을 느끼게 만들어서 눈치보게 만들며, 텀블러에 담고 자시고 하지말고 그냥 커피를 본인처럼 안 마시면 안써도 되는 비용인데.. 라는 느낌을 준다.
내 기준에서는 노력이지만 그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 이런 일화가 지난 5년간 너무나도 많고 반복되서 나는 아마도 트라우마가 생긴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