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너무 무서워..
일을 마치고 잠시 차에서 쉬는 경우가 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시간을 쪼개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만 나에게 더이상 불행이 닥치지 않을 꺼 같은 기분이 들어서 요즘엔 매순간 일을 한다.
매장을 살피고, 손님이 없을 땐 온라인 홍보를 한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틈만 나면 인스타그램 계정을 키우기 위한 작업으로 매장 계정이 아닌 두어가지 다른 계정의 피드를 위한 영상을 편집한다.
그러다 이동을 하게 되면 일에 도움이 되는 강의를 듣거나 유튜브채널을 본다.
나에게 쉼을 주면.. 그나마의 행복도 괘씸죄로 빼앗길것만 같아서 요즘엔 더 나를 몰아치는 스케줄을 산다.
그러다 아주 잠시 숨을 돌릴 타이밍이 오면 나만의 작은 사치인 넷플렉스를 킨다.
요즘의 나는 알콩달콩 행복한 느낌이 조금이라도 나는 드라마나 영화는... 보고싶지가 않다.
마치 비극을 읽으면서 대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처럼 나만큼 혹은 나보다 더 힘든 캐릭터가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만을 골라보게 된다.
그들을 보면서 나의 불행이 상대적으로 나은 것임을 위안 받고 싶은 게 아니라, 그렇지 않은 밝은 캐릭터를 보다보면 내 이 죽일놈의 긍정마인드가 또 스물스물살아나서 이런저런 희망을 가지는 나를 또 발견할 까봐.. 그게 싫어서 이다.
우연히 발견한 '인간실격'은 지금의 나에게 선택될만한 분위기를 풍기는 드라마였다.
특히 나는 예전에도 전도연 특유의 힘듬을 꾹꾹 참는 연기를 좋아했었다. 남과여 에서도, 밀양에서도, 그녀의 담담하면서도 참는 연기가 괜히 좋았다.
아직 1화밖에 보지 못한 '인간실격'에서 전도연은 너무나 현재의 내 모습과 닮아 있었다.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스스로에게 느끼는 자괴감을 꾹꾹 참아내는 모습, 타인으로부터 받는 모멸감에 맞서지 않고 삼키는 모습, 남편도 가정도 의지할 곳이 없어서 화만 나지만 부모님께는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
그러다 인간실격 속 전도연이 아버지 앞에서 저 대사를 했다
"아부지.. 나는 아무것도 될 수 없을 꺼 같아요.. 나는 아부지보다 더 가난할 꺼 같아요.. 나는 아부지의 자랑이 아니예요"
버스정류장에서 저 말을 뱉으며 우는 전도연의 과하지 않은 연기를 보면서
운전석에서 나는 엉엉 울어버렸다. 그냥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진짜 큰 소리로 엉엉 울어버렸다.
운전을 시작하면 눈물이 멈출까 싶어서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멈출수 없게 계속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나도 극 중 전도연처럼 말했다
"엄마.. 나는 아무것도 될 수 없을 꺼 같아.. 엄마.. 그래서 나는 너무 무섭고 외로워.."
지난 5년간 나는
내가 열심히 꾸역꾸역 노력하면
이 수렁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꺼 같았다
그래서 나만 이 진흙탕에 빠져서 깨끔발을 들고 내 머리위로 남편을 포함해 우리 아이들을 들어올리고 있는것도 덜 힘들었다.
내 인생을 바닥에 쳐박으면서 가족을 간신히 지켜낸 그 시간이 나를 힘들게는 해도 버텨낼 수 있었다.
나에게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러게 되면 다시 행복해 질 수 있을꺼라는 희망..
하지만 그 사건으로부터 6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지금의 현실은 6년전 그때로부터 나아진게 없는 숨막히는 상황을 다시 맞닥뜨리니.. 더이상은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어진다
그리고 무섭다
이렇게 내 인생이 마무리 될까봐.. 나의 재기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루지 못하는 꿈이 될까봐..
시간이 가는게 무섭고, 나의 무능력이 한탄스럽다
인간중독의 전도연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과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