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었다
2017년의 봄
난 이 비가 가랑비 라고 생각했다
금방 그칠 비일꺼라고
비오는날 밖에 나갔을 때 아예 한방울도 젖지 않길 바라는 건 욕심이지만
우산만 잘 들고 있으면 그렇게 폭삭 젖지는 않을꺼라고 생각한 비였다
하지만 금새 비는 폭우가 되었고, 태풍으로 변하면서 나 뿐 아니라 우리가족 모두를 뒤흔들었다.
나는 어떡해서든 태풍을 막고자 노력했다
처음에는 희망을 품었다
금새 그치겠지... 금방 다시 해가 뜨겠지...
하지만 빗방울은 천둥번개를 동반하고 점점 더 토네이도처럼 거세지기만 했지 잦아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가족만큼은 지켜야 된다고
나는... 내 인생은 비록 태풍에 휩쓸리고 폭풍에 날라가도
아이들과 남편.. 가족만큼은 살려내야 한다고
그때는 몰랐다.
어중간한 착한 마음이 얼마나 최악이 되는지. 그리고 태풍에 휩쓸리는 삶을 산다는 건 얼마나 외롭고 힘든 길인지
몰라서..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내 인생을 망가뜨리는 태풍이 내 가족만큼은 최대한 덜 할퀴도록
그 가족에는 남편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너무 슬프고 힘들었지만 내 인생과 내 감정이 망가지는것에 후회는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어쩌면 그때조차도 나는 희망을 가득 품고 있었던 거 같다
태풍은 곧 지나갈꺼라고..
태풍이 나를 쓰러트리고 밟고 내던지고.. 그렇게 나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무서운 순간에도 나는 나를 다독였다.
괜찮아.. 견디면 지나갈꺼야
지나고 나면... 그리고 다시 태양이 떴을때
태풍으로 인해 홀딱 뒤집혔던 밭에서 농작물이 더 잘 자라나는 것처럼
나도 더 굳세고 풍성하게 자라날꺼야
나는.. 지독한 낙관주의자 였다.
태풍은.. 잠시 잠잠해 지는 척 했지만.. 쉽게 잦아들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농작물을 심고 싶어도 심을 기회가 없었고, 망가진 밭을 일구고 싶어도 밭을 갈 호미도 삽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 태풍속에서 작은 초가집 안에서 비라도 덜 맞으라고 피신시켰던 남편은
엉망진창이 된 집 내부에서 쫄딱 젖고 방에 들어서서 초라해진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상처가 너무 커서
집밖에서 내내 비바람을 맞으며 그 문앞을 지키고 있었던 나를 보지 않았다
비가 잠시 잔잔해진듯 해도
그는 내게 곁을 주지 않았고
한없이 나를 외롭게 했다
나는 태풍에 휩쓸려 날아가 진흙탕에 빠져서 간신히 숨만 쉬는 엉망인 상태로
그에게 갔지만
그렇게 기어나온 내 모습보다 비바람에 젖은 자신의 모습이 더 힘들었던 그는
나를 그냥 밖에 세워뒀다
나는 몸에 말라붙은 진흙들을 후두둑 털어내고
다시 밭을 일구고 있었다
초라하고 초라해서 슬픔이 한없이 나를 잠식시켰지만 그래도 먹고 살아야 했기에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며 무언가 자라나길.. 그래서 나를 구원해주길 바라며 밭을 일구고 있었다
2023년 겨울
다시 또 태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는 문을 걸어잠궜다
나는 떨어지는 빗방울에 진흙자국들이 먼저 눈에 띄기 시작했고
그제야 미련을 버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과 나 사이의 문은 열리지 않을꺼다
태풍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