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8의 밤'에서 번뇌와 번민을 이야기한다. 번민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기다리며 괴로워하는 것이며 번뇌는 이미 지나온 과거에 집착하며 슬픔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서로 나누어진 번뇌와 번민이 하나로 합쳐져서 세상을 어지렵히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은 오랜 시간을 기다린다. 합쳐진 번민과 번뇌를 소멸시키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번뇌나 번민과 같은 것들에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히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일상생활에서 의식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행동할 때 기대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문을 열 때도, 잠을 잘 때도, 등을 긁을 때도 우리는 스스로가 정한 기대를 바탕으로 그것이 내가 예상하는 결과 예측대로 잘 될 것이라는 마음을 가진다. 길을 걷는 것도 몸을 움직여서 원하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을 한다. 행동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큰 무리 없이 목표에 이른다. 팔을 드는 행동도 크게 무리 없이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이라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실행한다. 신체의 움직임은 그렇다. 숨을 내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친구를 만나서 즐겁게 대화를 하려는 행동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다. 만날 친구가 정해지고 지정된 장소에서 만나고 서로 대화를 하는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내가 생각한 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일에는 기대와 확신이 함께 공존하며 결정을 내린다. 오랜 시간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여 되돌아왔을 때 아주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또는 행동하는 모든 것에 스스로가 가지는 의도가 있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내가 좋음이나 만족감을 되돌려 받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기대하며 행동하게 된다.
사소한 결정은 걱정거리가 없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일들을 한다. 일어나서 밥을 먹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 중에도 수천번의 결정과 결과가 나타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고 판단하고 그 결정에 노출된다. 팔을 들어야 한다고 고민할 새도 없이 이미 팔을 들고 양치를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문제는 고민이라고 할 수준이 아니다. 몇 가지 선택에서 무엇을 결정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저 그날의 기분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그냥 이끌리는 대로 선택하면 그만이다. 쉬는 날에 잠을 더 자는 것과 외출하는 것의 고민이나 드라마를 볼 것인가 친구를 만날 것인가 하는 등의 일도 그냥 이끌리는 대로 선택하면 된다. 고민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그러기에는 우리들의 삶에는 그것보다 너무 큰 고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습관처럼 고민된다며 말하는 것들은 생각보다 그리 큰 영향력이 없을 수 있다. 뭘 하든 그것이 나에게는 하루를 채워나가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사항이라면 행하려고 했던 일들은 아주 신중하고 심려 있게 결정하게 된다. 주식을 대량으로 매집하려고 하는 경우나 회사를 그만두는 결정, 집을 구매하는 일 등이다. 보통 결정에 따른 결과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상황이며 그 결과로 인해서 앞으로 삶에 방향이 정해질 수 도 있다.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던 그냥 신중한 일들이며 다양하게 고민하고 예측해 보고 결정하는 일반적인 과정이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보다는 더욱더 많은 시간과 생각을 들이는 것이며 그 결과가 좋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기대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때 자신에게 손실이나 나쁨이 발생하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중해야 하는 결정은 결정을 하고 난 이후에도 걱정이 생긴다. 고민이라고 말하고 싶으면 결정을 하고 나서도 그것에 계속 매몰되어 있어야 할 만큼 결과가 중요해야 할 것이다. 자동차를 새로 구매하고 차를 이용하다 보면 그때 후회가 찾아올 수 있다. 더 넓은 자동차를 선택해야 했을 수도 있고 더 높은 자동차를 선택해야 할 수도 있다. 많은 좌석이 필요했을 수도 있고 짐을 많이 싣을 수도 있어야 했다. 차를 타고 여행을 다니고 출퇴근을 하는 중에도 계속 나의 결정에 매몰되어서 다른 결정에 대한 후회가 남을 수도 있다. 내가 기대한 상황이 원하던 짐을 싣고 흔들림이 적으며 조용하고 동승자가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분명 이런 상황에서는 나의 결정이 보다 더 신중했어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분명 일상적인 결정보다는 더 신중해야 한다.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일은 걱정이 되기 마련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날씨가 변하는 런던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보다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보통 예상되는 날씨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맑은 날이 이어지는가 하면 추운 날이 있고 너무나도 무더운 날씨도 있다. 그중에 7월은 1년 중 가장 예측하기 힘든 날씨라고 생각한다. 이 기간에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가장 크게 고민하는 것이 비가 올 것인가의 유무이다. 날씨의 변덕이 가장 심하고 장마전선으로 인해 한번 내리면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져 내린다. 여행 계획에 앞서 날씨의 예보를 계속 예의 주시한다고 해도 그것이 가장 확실하다고 말할 순 없다. 가령 숙소를 예약하고 여행일정이 정해졌는데 그 기간에 비가 올 가능성은 아주 변덕스러울 것이다. 예약이 확정되었다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걱정이 시작된다. 비가 올 것인가 아닌가, 어느 수준의 비가 내릴 것인가, 바람은 어느 정도 인가, 외부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 등의 수많은 상황이 만들어지고 예측하는 걱정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결정하는 문제는 여행을 가는 것이지 그날의 날씨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나의 통제권 밖에서 발생하는 사항에 대해서 나는 그 문제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진짜 걱정이다.
기대와 결과가 일치할 것이라는 생각은 확률이 낮은 게임에 베팅을 하는 것과 같다. 포로수용소에 오랫동안 수용되어 있던 장교는 주변 사람들에게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한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나갈 수 있다거나 다음 달이 되면 나갈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하지만 실제 그때가 되어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실망하고 낙담하며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또다시 언젠간 나갈 거라며 말하지만 장교는 나갈 수 없을 거라며 단념하라 했다. 장교는 스스로가 결정할 수 없는 불가항력에 대해 그렇게 되리라고 기대하면 높은 확률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던지 관계없이 수용소 밖에서 전쟁이 끝나야만 하는 것이다. 전쟁의 종료는 나 스스로가 결정하는 문제가 아닌 타인의 결정의 문제다. 누구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란 것이다.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결과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확률에 의존하는 도박 같은 일이 되어 버린다.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가 정해져 있다면 변수에 집중하면 된다. 중요한 시험을 치러야 하는 주말이 며칠 남지 않았다면 마음이 쓰일 것이다. 만약 이번 시험의 결정으로 자신의 입사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하자. 이번 시험이 어렵고 합격률이 낮다고 해도 시험에 합격하고 불합격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임을 틀림없다. 그런데 시험에 불합격할 것을 걱정한다. 본인의 실력에 따라서 결정되는 시험에 걱정을 하는 것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자신의 기대가 합격이지만 그렇지 못한 불합격의 결과가 나타날 것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일에 기대와 결과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는 기대와 결과가 같지 않을 것을 걱정한다. 그것이 누구에 의해서 결정이 되든지 관계없이 말이다. 미래에 나타날 결과를 기다리며 노심초사하는 것은 결과를 기다리는 입장에서 더이상 해줄 것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자신의 행동은 여기까지이며 이제 그 결과가 나타나야 한다는 논리이다. 분명 자신의 노력이 충분했다고 판단한다면 그러한 걱정은 없었을 것이다. 시험을 치르기 전에 자신감이 넘칠 것이고 시험 문제를 푸는 과정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충분히 학습하고 다양한 문제를 풀어봄으로써 만전의 대비를 갖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걱정하지 않으며 걱정할 필요도 없다. 자신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없기 때문 일 것이다. 오히려 변수가 정해졌다면 고민이 아니라 변수를 제어하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결정에 대해 다양한 변수가 영향을 끼치면 우리는 예측을 해야한다. 일반적으로 고민이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의해 무엇인가 결정을 할 때는 나의 결정에 대해 미래를 예측해 봄으로서 결정을 보정해 간다. 이 경우 확실하게 예측이 되는 요소들이 많은 경우는 문제가 간단해진다. 나의 득과 실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위에 있기 때문에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지 선택하면 된다. 흔히 이야기하는 기회비용의 이야기이다. 예측이 어려운 변수가 다양해지면 각 상황의 모두 예상해 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변수가 5개라면 각각의 변수에 예상값과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는 방식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장시간 고민에 빠지게 된다. 하나의 선택을 위해 예상해야 하는 변수마다 다시 결정을 하게 만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변수에 대한 예상값이나 시나리오는 아주 다양할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선택지에서 무작위로 하나를 골라야 하는 수준일 수도 있다. 그러니 각 변수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최종 결정을 내리는 중첩된 구조일 수밖에 없다. 예측에 예상을 더하여 내리는 결정은 확률적으로 이득을 주는 것이 낮아질 것이다.
결국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현명한 결정을 하기로 소문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항상 옳은 결정을 하고 예상하는 결괏값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명성을 얻은 것이 모두 현명한 결정에서부터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좋은 선택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 대처 가능한 시나리오와 해결 방법을 마련해 두는 것이라고 했다. 시장은 시시각각 변하고 사건사고가 터지면서 경제는 요동치는데 자신의 능력밖의 일이라서 스스로가 제어할 수 없는 변수였다고 한다. 그래서 각 변수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나쁜 방향으로 흘러갈 때 나에게 가장 큰 악영향을 주는 것을 일부 대비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가령 환율의 변화가 무역수지에 영향을 받는 상황이면 적자의 폭이 커질 것을 미리 대비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환율은 자신의 소관이 아니지만 나의 사업이 환율에 종속되면 크게 흔들릴 것을 대비해 그렇게 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신규 사업을 펼칠 때는 아주 진보적인 방식으로 저돌적으로 공격하되 나쁜 결과에 대해서 미리 대처방안을 마련해 두면 된다는 것이다. 모든 결정엔 좋고 나쁨이 생기고 그 나쁨에 내가 휘둘리지 않도록 뒤에서 지켜보며 웃고 있으면 된다고 했다. 결정을 잘하는 것은 그런 대처에 모두 대응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 결정한 것이다. 나의 결정은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걱정은 사치일 뿐이다. 내가 지금 고민하는 것이 무엇을 얻기 위함인지 아니면 잃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해진다. 우리는 많은 일을 고민하고 결정하고 또다시 고민에 빠지기를 반복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말이다. 나의 결정이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인지 먼저 고민해 보면 그 나머지는 걱정이라기보다는 나의 마음이 더 이끌리고 선호하는 것이 무엇인지의 기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