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라 Sep 21. 2024

이혼의 사적인 기록_시작

#_확실한 균열

어쨌든, 이혼의 시작은 사랑이었다.

이혼 전에 결혼했고, 결혼 전에는 연애를 했더랬다.

절망 속에 조용히 죽어가며 생각한다. 어느 지점에서 잘못되기 시작했을까?

그 무의미한 생각들을 하느라 드라마도 놓치고 친구의 결혼식도 놓친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그 생각의 고리를 1의 망설임도 없이 잘라낼 것이다.

우리는 모두 현재를 사는 존재들이다. 나를 살리는 일만큼 급한 일은 없다.      



나의 첫 이혼을 기록하려고 한다.

이것은 나에게도, 이혼을 고민하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혼 사유 중 가장 많은 것이 ‘성격 차이’이다.

생각해 보면 타인과 타인의 만남에 성격 차이가 없을 수는 없다.

당신이 운이 좋아 “딱 맞아!” 할 상대를 만났을 수도, 만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축하를 보낸다.

나는 그리 운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딸만 있는 집에서 태어나 오빠가 둘씩이나 있는 친구와 가까워져 버렸으니, 내 운명은 그때부터 꼬였는지 모른다. 이렇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엄마 자궁 입구까지 도달할 판이다.      



결혼할 당시에 우리는 장거리 연애 중이었다. 이어서 주말 부부가 되었다.

나의 임신과 동시에 X는 퇴사했고, 그의 짐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 그는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회사에 입사했다.     

어느 날, 혼자 집에 남겨진 나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의 컴퓨터를 켰다.

발견한 여자의 흔적, 그때 내 나이가 스물하고 다섯이었다.

임신 5개월, 모든 것은 하나지만 생명은 두 개였다.      

이때 이혼을 해야 했나?

확실한 균열이었다. 불행의 확실한 시작점.

너다.     






지금 하는 이혼 후기

그 당시 남편의 여자는 견디기 힘들었다.

결혼 준비과정에서 나와의 약속을 깨고 그 여자를 만났고, 신혼여행 호텔방에서 그 여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이것을 임신 5개월이 되어서야 안 것이다. 나는 아무 관계가 아니라는 그의 말을 믿어야 했다. 뱃속에 있는 아이의 정신건강을 생각해 나는 믿고 싶었다. 그렇게 그냥 덮어버린 것이 조용히 썩고 있는 줄도 모르고 가정을 지키겠노라 아내로, 엄마로 20년을 살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잘 짜서 약도 바르고 덧나지 않도록 충분히 공을 들여야 했다.

가정은 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가정이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