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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 Sep 26. 2024

이혼의 사적인 기록_엇나감

#_연애의 끝

우리의 시작도 남의 연애처럼 풋풋하고 방실방실한 설렘에서 출발했다.

12살에 시작된 인연, 고등학교 때부터 서로가 둘 뿐이었던 관계가 균열로 인해 어떻게 망가져 갔는지 이제는 조금씩 보인다.



그를 처음 본 것은 초등 5학년, 친구 오빠에서 우리 오빠가 된 것은 고등학교 때이다.


“도라가 좋아할지 모르겠네. 내가 요즘 아르바이트로 소라게를 팔고 있거든. 네가 좋아했으면 해서 가져왔어. 키우는 방법도 메모해서 넣었으니 봐.”

이날의 소라게는 전적으로 나의 공(功)이다.


소라게를 받기 몇 개월 전, 짝사랑을 끝내고 싶었던 나는 동네 스피커라 불리던 친구에게 담아두었던 마음을 흘려보냈다.

“나 사실은 00 오빠 좋아해.”

스피커는 본인의 일을 했고, 1주일 만에 그 사람을 포함해 온 동네 사람이 다 알게 되었다.

그 소라게가 우리 집 피아노 위에 자리를 잡으며 사랑이 시작됐다.

  

고3을 앞둔 겨울에 그는 군대에 갔고, 훈련소에 있을 때 동네 서점을 통해 받던 편지는 어느새 반 친구들이 기다리는 재미난 ‘훈련소 소식지’가 되었다. 편지지가 없을 때면 주변 종이란 종이는 다 동원해서 소식이 끊기지 않게 계속 보내왔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돌려보던 편지는 추억이 되었다.

고3이 된 나는 다양한 고민으로 그와의 연락을 끊으며 10대를 마감했다.

그 후 3년이 흘러 동네 친구들이 불러낸 술자리에 나가기 전까지 우리는 서로 마주칠 일 없이 살았다.

그 3년 동안 내가 짝사랑한 사람도, 나를 짝사랑한 사람도 있었지만, 연애는 없었다.

그 사람이 제대할 때까지 연애는 하지 말자는 나와의 약속을 아무도 모르게 지키고 있었다.


4년의 연애 후에 우리는 결혼했다.

피로연이 끝나고 호텔로 가는 택시 안에서 벌어진 신랑 신부의 진한 키스 때문에 후배가 진땀을 흘렸다는 후기를,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들었다. 서로가 첫사랑이었던 우리는 서로를 제외하고는 인생의 다른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결혼 후 6개월이 흐른 자리에서 나는 남편의 여자와 통화를 한다.

그 사람은 몰랐고, 모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00 아내입니다.”

조심스럽게 둘의 관계를 묻는다.

“00 이를 믿으세요.”

“네”

통화를 서둘러 마무리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말을 듣게 되는 게 무섭다. 나는 듣고 싶은 말을 들었고, 그러면 되었다 생각한다.

이렇게 하나의 문이 닫힌다.


방 한쪽에 생긴 균열이 멈춤과 진행을 반복하며 집 전체를 위태롭게 하고 있었지만,

둘 다 그 방을 의식 밖으로 밀어내고 만다.

그렇게 부부로서의 관계가 엇나가기 시작했다. 


나의 첫 연애가 끝나가고 있었다.





지금 하는 이혼 후기

그때의 우리가 역할보다 관계에 더 집중하였다면 어땠을까? 아내, 남편, 엄마, 아빠, 며느리, 사위 역할에 충실하면 사랑일까? 부부는 서로에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다. 상처를 지우고, 용서를 구하는 방식으로 역할에 충실하기를 선택함으로 우리는 둘 다 소진되었다. 

나의 첫 연애는 19년의 결혼생활과 두 아이를 남기고 끝났다. 충분히 멋진 연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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