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말없이 가르친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고.
바위틈에 솟아나는 샘물을 보아라.
굳은 땅과 딱딱한 껍질을 뚫고 여린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아라.
살아 꿈틀거리는 망망대해를 보아라.
빗방울이 모여 개울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자연이 들려주는 소식에 귀 기울이면 삶이 보이고 세상이 보이고 내가 보인다.
이제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를 들어라.
- 김영갑 사진집 '오름' 중에서
슬픈 영화는 좀처럼 선호하지 않지만 오늘만큼은 아들과 함께 펑펑울었다. 예전 박신양의 편지인가 약속인가를 보고 그렇게 울었었는데. 이 영화 '히말라야' 몰입도가 참 대단하다. 좋은 영화는 희노애락이 모두 들어있다고 한다. 히말라야는 그런 공식을 완벽하게 답습했다.
영화정보를 검색해보니 별로라는 사람도 제법있다. 아마도 이런 뻔한 영화공식을 때문일 수 있겠다. 너무 울리는 신파. 주인공의 시련과 극복. 너무나 잘 짜여진 구성은 아무래도 신선함과는 거리가 있다. 특히 엄숙한 산이야기를 거의 오락물로 만들었다는 지적도 만만치않다. 과거 <버티컬 리미트> <노스 페이스>같이 고급 산악영화를 생각하고 갔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으니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여하간 판단은 본인의 몫이다.
승승장구하는 산악인 엄홍길.
좋은 맴버들과 수많은 산을 정복한다. 감독은 이 상황을 아름답고 웅장하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이 부분이 약 1시간가량 진행된다. 멋진 설경과 네팔 현지의 느낌은 가슴뻥 트이는 해방감을 보여준다. 억지스럽지않고 CG도 크게 안써서 진짜 고생했을거 같은 멋진 장면들이 상당히 볼만하다.
1시간쯤 지나면 영화는 2부로 들어간다. 은퇴하고 교수로 살아가던 엄홍길대장. 자서전을 쓰고 팬사인회를 열고 있다. 행복하게 살던 그에게 예기치 못한 시련이 닥쳐온다. 그를 따르던 후배 박무택 (정우, 왼쪽)와 박정복(박인권, 오른쪽)이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서 실종된 것이다.
후배와의 행복한 순간을 되새기면서 주인공 엄홍길은 견디기 어려운 책임감과 지키지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져든다. 엄홍길은 후배의 시신을 되찾기 위해 다시 맴버들을 취합하러다닌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흐른 뒤였다. 은퇴한 사이 맴버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자기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함께 등반을 권하는 엄 대장에게 돌아오는건 함께 하기 어렵다는 소식 뿐. 후배 박무택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절망하고 있던 찰라 맴버들이 다시 하나 둘씩 엄 대장을 찾아온다. 그리하여 시신을 찾기 위한 원정대가 조직된다. 이름하여 휴먼원정대.
의기좋게 투합했지만 시신을 찾으러 히말라야로 올라가는 여정은 만만치않다. 박무택의 기일에 맞춰 시신을 찾으려하나 기상 악화로 앞으로 나갈수가 없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왜 이런 고생을 하는가 의문스러웠다. 모비딕의 선장인 에이허브를 보는 듯한 무모함이랄까. 엄홍길에게 산은 에이허브에게 향유고래와 같은 존재다. 삶의 존재이유라는 말이다.
히말라야에서 겸손함을 배웠다면 영화 한 편에 대한 지나친 찬사일지 모른다. 하지만 엄홍길 대장의 등정을 카메라로 따라가다보면 그의 유명세에 비해 슈퍼맨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상황을 꼼꼼하게 체크할 줄 알고 답답할 정도로 판단이 신중한 보통사람이다. 힘으로 산을 정복하는 초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산을 정복한 비결은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
영화 '히말라야'를 관통하는 문장이 하나 있다.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다. 하잖은 인간에게 허락해주어 한번 등정할 수 있도록 산이 배풀어준 기회일 뿐이다.
여기서 훌쩍, 저기서 훌쩍, 주변에 울지않는 사람을 도시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다. '히말라야'를 보면서 사람은 '결'을 따를 줄 알아야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다. 영화를 보고 울어본 것도 오랜만이지만 이렇게 깨달음을 느낀것도 한참만이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만난 히말라야의 예고편에 마음대로왕자의 시선은 다시 고정되어버렸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지만 느껴지는 바가 남달랐는가보다. 히말라야를 보던 내내 함께 울던 이 아이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는 알수 없다. 하지만 아빠와의 좋은 추억만큼은 만들었으리라 확신한다.
거대한 자연의 공명이 가슴 속 깊이까지 메아리치는 영화 '히말라야'. 모두가 들떠있는 연말에 한 해를 되돌아보고 반성하기에 썩 괜찮은 작품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