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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정신의 끝은 방전이었다

30대 신혼부부의 서울 내 집 마련 후유증, 하나


우리 슬이가 씨발정신이 있구나?




내 이야기를 들은 우리 회사 대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소에는 순하다가도 누가 버튼을 누르면 '씨발, 내가 저 새끼 밟는다'라며 돌변하는 것.

그게 씨발정신이라는 거거든. 나도 예전에는 그랬는데 너도 참 젊다.


그렇게 나는 씨발정신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그리고 지난 2년간 내 인생을 이끈 원동력이 이 씨발정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패닉바잉이라는 단어가 막 생겨나기 시작했을 때다. 우리 부부도 당연히 그 열풍에 동참해야만 할 것 같았다. 지금 거주하는 집이 자가인지 임대인지 안부 인사처럼 물어보는 세상에서 우리는 자꾸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무작정 우리 돈으로 매수할 수 있는 아파트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자금이 부족해서 100세대 이상의 나홀로 아파트밖에 볼 수 없었지만 어쨌든 아파트니까.


서울에 아파트가 이렇게 많은데 왜 내 집은 없을까?


후보에 오른 두 아파트는 동대문구에 있는 준신축 나홀로 아파트와 나홀로 주상복합이었다. 아파트촌도 아니고 빌라촌 속 나홀로 아파트라니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그때는 그런 단점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 참, 재미있더라. 나홀로 주상복합은 세입자가 거부해서 내부를 아예 볼 수가 없고, 나홀로 아파트도 세입자한테 사정해야 겨우 볼 수 있다고. 한두 푼짜리가 아닌데 물건 상태도 못 보고 사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집 마련을 해내고 싶다는 일념 하에 철저한 을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나홀로 아파트 매물은 세입자 눈치를 보며 겨우 매물을 살펴보았고, 나홀로 주상복합 매물은 외부에서만 살펴보았다.


희한하게도 나는 내부를 보지도 못한 나홀로 주상복합에 마음을 뺏겼다. 정말 부동산을 1도 모르니까 내릴 수 있는 판단이었다. 나홀로 주상복합의 근사한 문주와 번쩍거리는 상가에 눈이 돌아 버렸던 것일까. 매수 의사를 밝혔지만 돌아온 매도자의 답변은 급할 것 없으니 조금 더 지켜보겠다는 것.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는 데다 여기저기서 매수 문의도 쏟아지니 두고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부동산에 매물을 왜 내놓은 거야?

입질이 얼마나 오는지 보려고?


속상했지만 굴하지 않고 바로 나홀로 아파트 매수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비슷한 사유로 엎어지고 말았다. 우리가 아무리 영끌을 해도 매도자의 콧대는 한없이 높았던 것이다. 이쯤 되니까 무력감을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에 화가 나더라. 그리고 반드시 서울에 등기를 치고 말겠다는 투지가 불타올랐다. 내 안의 씨발정신이 눈을 뜬 순간이었다.


그 후 우리 부부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던가. 부부 합산 월평균 소득 700만 원에서 시작한 우리 부부는 1년에 1억을 모으는 성공하며 빠른 속도로 종잣돈을 모았다. 그리고 결혼 2년 반 만에 마침내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는 성취감에 벅차올랐다. 이 망할 놈의 서울에 마침내 내 이름으로 집을 마련하다니. 하지만 성취감은 찰나일 뿐 이내 무기력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져 버렸다. 씨발정신이라는 엔진이 꺼져 버리자 어떤 일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방전되어 버렸다.


※ 내 집 마련 경고문 ※

서울 내 집 마련 후유증, 그 첫 번째는 방전.
건전지가 다 된 손전등처럼 잠깐 빛나다가도 이내 꺼져 버린다.
서울 아파트는 젊음의 차고 넘치는 에너지마저도 한입에 집어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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