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마이크 1화
팟캐스트 첫 화는 구르미와 제이의 수다였다.
내가 구르미, 친구가 제이.
녹음할 때까지만 해도 썸네일도 없었고, 홍보 계정도 안 만들었고, 카피도 써 놓지 않은 상태였다.
일단 녹음하자! 일단! 일단 이야기하다 보면 콘셉트가 만들어질 거야.
그래서 무작정 자리에 앉아 녹음을 시작했다.
라디오 동아리를 했던 게 도움이 되어 따로 녹음실을 빌리지 않고 조용한 동아리실에서 녹음할 수 있었다.
구르미는 사회학 전공에 비교문학 연계 전공. 문학을 좋아하고 글쓰기도 좋아하는 대학생.
나이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치를 떠는 사람이지만 그래서 스물넷이라는 나이를 더 좋아하는 사람.
제이는 소프트웨어 전공에 인공지능 석박사를 준비하는 대학생. 수필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스물넷인데 졸업을 앞두고 있다고 하면 군대 안 갔다 왔냐는 말에 구구절절 대답해야 하는 사람.
자기소개를 하다 보니 나이 얘기부터 나왔다.
스물넷. 한참이나 어리지만 어느 정도 사회가 요구하는 걸 갖추고 있어야 하는 나이.
모르는 척하다가도 다 아는 척해야 하는 나이.
결단코 게으르면 안 되는 자기 주관이 확실해야 하는 나이.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하는 나이.
유럽에서는 아무도 뭐라고 안 하던데. 나이도 안 물어보던데. 그냥 나라고 인정해주던데.
한국에서는 우선 나를 소개할 때는 나이를 이야기하는 것이 필수다.
그리고 내가 왜 스물 넷인지 구구절절 설명해야 한다.
스물넷이야? 그동안 뭐했어? 졸업하고 뭐할 거야? 준비하고 있는 거 있어?
교환학생을 갔다 오느라~ 군대에 갔다 오느라~ 대학원을 준비하느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등등의 이유를 대며 내가 살아온 스물넷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내가 스물 넷인걸 납득하지 않는다.
마치 나에게 "너 왜 스물넷이야? 아무것도 안 하고 뭐했어?"라고 묻는 것 같다.
나는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저 그냥 스물 넷인데요..? 저는 그냥 저인데요?"
그게 쉽지 않은 한국이라 답답한 거지...
제이는 원래 피아노를 치던 친구였다. 피아노를 전공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만두고 소프트웨어 학과를 다니고 있다. 나는 그가 음악에서 소프트웨어로 갑자기 진로 방향을 튼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한참을 물어봤다. 그는 오히려 음악을 깔끔하게 포기하자고 마음을 먹으니 편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음악을 취미로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음악과 전혀 다른 분야인 인공지능으로 진로를 정할 수 있었다.
그가 인공지능으로 쭉 전공을 이어가기로 결심했던 결정적 계기는 정말 우연이었다. 우연히 듣게 된 한 교수님의 수업이 잘 맞았고, 당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던 팀원이 참여를 하지 않아 거의 혼자 진행했고, 그래서 더 교수님의 눈에 들었고, 그 인연으로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연구실 사람들에게 인공지능 분야에 대해 듣고 배우면서 추천해 주는 논문을 열심히 읽었고, 그 논문에 재미를 느꼈고, 공부하다 보니 실력도 생겨서 교수님의 회사 인턴까지 하게 되었다. 아주 작은 우연이 눈덩이처럼 구르고 굴러서 아름다운 눈사람이 되기 일보직전까지 온 것이다.
제이는 자신의 앞날에 대해 확신을 갖고 나서부터 자존감이 많이 올라갔다고 한다. 그래서 남을 부러워할 것이 없다고. 전에는 매일같이 울며 스스로의 삶을 한탄했다면, 이제는 내일이 기대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글도 더 많이 읽고 쓸 수 있고 자신의 미래를 한껏 꿈꿀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게 바로 낭만이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잘하는 건 무엇인지, 그걸 계속 가져갈 끈기가 있는지, 발전한 방법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 얼마만큼 발전할 수 있을지, 미래는 어떻게 꿈꿀 것이고 어떻게 꾸려 나갈 것인지. 이 모든 걸 확신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고민 속에 살고 있다. 문학이 좋고 글쓰기가 좋은데 이걸 완전히 취미의 영역으로 두기에는 아깝고, 그렇다고 일의 영역으로 가져올 거면 직무는 무엇으로 택할 것인가. 일의 영역으로 가져올 만큼 글쓰기를 좋아하나? 그만큼 재능이 있나? 내가 그래도 될까? 자신감이 없어서인지, 아직 나를 잘 모르겠어서인지. 고민이 많다.
뭐 앞으로 팟캐스트 하며 사람들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알게 되겠지!!
나는 아직 어리니까..!!!!!!!
Q. 당신에게 낭만이란?
우리 방송의 시그니처 질문이다.
매주 게스트들에게 물어볼 거다.
낭만이 없다면 끄집어내 줄 거다.
낭만이 최고다!
나에게 낭만이란, 달리기를 하며 오디오북을 듣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 일주일에 한두 번씩 공원에 나가 달리기를 하는데, 그럴 때 오디오북을 들으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특히 어린이책! 윌라 오디오북으로 주로 듣는데, 성우들이 직접 녹음을 해서 그런지 아주 실감 난다. 게다가 어린이책은 스펙터클하고 기발한 상상력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므로 달리기 할 때 들으면 머릿속에도 쉽게 남는다. 무엇보다 달리기가 재밌어진다. 판타지 세계 속을 달리는 느낌이랄까. 덜 힘든 것 같기도 하다. 공원에 나가 달리기 하면서 땀을 흘리는 것도 낭만적인데, 거기에 오디오북을 듣는다니. 게다가 책 속 세상에서 달리기를 한다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낭만 아닌가!!!!!! 그래서 앞으로도 자주 달리기 하러 나가고 싶은데 몸이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 체력이 왜 이렇게 안 좋아진 건지.. 하여튼 낭만이다!
제이에게 낭만이란, 내일이 기대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자존감 올라간 제이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내일이 기대된다는 삶은 얼마나 푸릇푸릇할까? 내일은 또 어떤 삶이 펼쳐질지, 내 눈에 어떤 게 들어올지, 나는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지 기대되는 삶. 그 자체로 행복이라고 감히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맘껏 부럽다고 외쳐도 되는 삶이다. 제이야,, 앞으로도 그렇게 꼭 꾸준하렴!!!!!!!!
제이가 한 마디를 덧붙였는데 오늘 내가 생각한 낭만과 한 달 후, 1년 후에 내가 생각한 낭만이 달라질 것 같다는 것이다. 그것도 참 재밌고 유익한 기록일 것 같다고. 나 스스로가 정의하는 낭만이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하는 것도 제이답다. 꽤나 뜻깊은 생각이다. 자꾸 모습을 숨으려 하는 부끄럼 많은 낭만을 우리 삶으로 꾸준히 끄집어내는 노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가뜩이나 낭만을 잃어버렸다는 오명을 받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말이다.
이렇게 계속, 꾸준히, 대화하고 눈을 맞추고 낭만을 채우자. 제발!
팟빵에서 듣기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84397/episodes/24351788?ucode=L-TaxvQzYB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9804/clip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