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을 이뤄 나가는 것 자체가 제 삶이라고 생각해요"
낭만 마이크 20화 인터뷰
로망. 이루고 싶은 꿈이나 소망.
이루고 싶지만 이루지 못하는 것을 로망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얼른 취업이나 하라는 주변 사람들의 눈치에 못 이겨서, 먹여 살려야 하는 부양자가 있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등등의 이유로 실현하지 못한 로망은 그저 생각하면 즐겁고 설레는 비현실적인 무언가다.
그럼에도 로망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현실의 벽이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꿈을 꾸는 사람들, 언젠가는 이뤄내고 말 거라며 싸늘한 이 사회를 꿋꿋이 버티는 사람들 말이다. 결국에는 로망을 실현하고, 다시 새로운 로망을 품은 채 설레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청춘과 낭만은 옛말이라는 이 사회에서 여전히 로망을 이야기하는 한 청년을 인터뷰했다. 우울하고 불안한 시대를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듯, 맑은 웃음으로 꿈을 키워 나가는 청년이었다. 영어 통번역을 전공하는 24살 대학생 ‘몽둥이’는 인터뷰 예명에서부터 발랄한 분위기가 뿜어져 나왔다.
- 이름을 ‘몽둥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뜻인가요?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 두 명이 자기 닉네임을 ‘귀염둥이’, ‘사랑둥이’로 지었어요. 저도 ‘-둥이’에 끼고 싶어서 제 이름 끝 자인 ‘몬’을 따서 ‘몽둥이’라고 하고 다녔거든요.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몽둥이’라는 예명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몽둥이라는 단어의 의미보다는 발음의 귀여운 어감을 좋아한다고 했다.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확실하게 깨우친 몽둥이는, 본인에 대한 소개에 있어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매일 자신에 대해 탐구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바로 느껴졌다.
- 몽둥이님의 전공이 영어 통번역이잖아요, 독일어도 같이 공부한다고 하셨는데 맞나요?
“네. 맞아요. 이중 전공으로 독일어 통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외국어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고요, 언어에 미쳐 사는, 그런 사람이에요.”
- 언어를 좋아하시는 거죠?
“네. 언어를 정말 좋아해서 여러 나라의 언어를 많이 배웠어요. 혼자 책 사서 언어 공부하는 것이 취미이기도 해요. 틈틈이 공부한 언어들로는 중국어, 스페인어, 일본어 정도가 있어요. 그리고 또 제가 외대를 다녀서 배울 기회가 많잖아요. 원어민 교수님들께 제대로 배우려고 다들 제일 어렵다고 하는 독일어를 이중전공으로 선택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 언어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는 건가요?
“언어를 배우고 싶은 이유는, 사실 제가 외국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외국에 살고 싶고 외국에서 일하고 싶다 보니까 외국 문화에도 두루두루 관심이 많아요. 외국에 나가서 그 나라 사람들과 현지 언어로 소통해야 정말 그 나라의 문화를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거니까요. 언어가 곧 문화잖아요. 그래서 언어 배우는 게 재밌었고, 내가 배운 걸 실제로 외국인들에게 써먹을 때 멋있어 보이는 제 자신… 에게 취한 것도 있습니다. 하하. 저는 항상 멋있어 보이는 것에 치중하거든요.”
- 실제로 너무 멋있어요. 언어를 스스로 공부하고 또 구사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영어 통번역을 공부하시면서 특히 문학 번역에 관심 있다고 들었는데요, 구체적으로 문학 번역의 어떤 부분에 흥미가 있는 건가요?
“저는 문학을 분석하는 게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문학을 좋아해요. 문학에는 항상 철학적 의미들이 많이 숨겨져 있는데, 제가 또 철학에도 관심이 많거든요. 그래서 그 의미와 상징을 분석하는 것에 요즘 푹 빠져 있어요. 이렇게 문학을 분석하다 보면, 제가 어쩌면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의미까지도 찾을 수 있다는 게 좋더라고요. 같은 의미에서 영화도 되게 좋아해요. 영화도 문학이니까요. 각자 삶에 따라, 그리고 매일의 생각과 느낌에 따라 문학과 영화가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점에도 매력을 느꼈어요. 그래서 의미를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번역을 하고 싶다는 꿈도 갖고 있습니다.”
- 현재 공부하고 계시는 전공과 굉장히 잘 맞는 것 같아요. 통번역학이 흔한 전공은 아니잖아요. ‘영문학’이 아니라 영어 ‘통번역학’을 공부하고 계신데, 예전부터 공부하고 싶던 학문이었나요?
“사실 통번역학 전공이 저에게 다른 무엇보다 더 잘 맞는다고 느끼고 있어요. ‘진짜 나만큼 자기가 다니는 학과를 좋아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만큼 좋거든요. 재밌는 일을 하루 종일 하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이 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통번역에 딱히 관심이 많던 건 아니었어요. 제가 이 학교, 이 학과에 지원한 건 별다른 의도가 없었거든요. 그냥 고등학교 때까지는 꿈을 찾지 못해서 계속 방황을 하다가 어쩌다 보니 이곳에 입학했는데 들어오고 보니 너무 좋은 거죠. 덕분에 제가 정말 배우고 싶은 걸 찾은 것 같아요. 그래서 아주 완벽한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몽둥이는 이 대학에 오기 전, 경영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수능 성적에 따라갈 수 있는 대학 중 가장 순위가 높고 인기가 많은 학과를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본인이 원하는 삶이 무엇이고, 배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몰랐을 시절의 몽둥이가 할 수 있던 최선의 선택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꿈에 그리던 대학에 입학했는데,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아무런 재미도, 성취도 얻지 못했던 그는 돌연 자퇴를 신청했다. 그리고 다시 수능을 준비했다. 그때부터 본인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탐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롯이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몽둥이가 로망을 꽃피우기 시작한 것도 본인을 처절하게 공부하고 난 후였다.
- 상상도 많이 하시고 로망도 많다고 들었어요. 어떤 로망이 있으신가요?
“저는 로망이 생길 때마다 공책에 하나씩 적어 둬요. 그래서 로망이 정말 많이 쌓여 있는데요, 몇 가지만 이야기해 볼게요. 일단 최근에는 자동차에 빠져 있어요. 픽업트럭이라고, 반은 차이고 반은 트럭처럼 된 그런 차인데요. 미국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픽업트럭 뒤에 담요랑 베개를 깔고 누워서 별을 보는 거예요. 이게 가을에 했던 상상입니다.
두 번째로는, 다가오는 겨울에 딱 맞는 로망이에요. 갑자기 파리에 가고 싶더라고요. 파리에서의 아침을 상상해보는 거예요. 우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나무로 된 창문을 활짝 열어요. 그러면 코끝은 차가운데 햇살은 따스하게 내리쬐는 거죠. 털이 복슬복슬한 로브를 하나 걸쳐 입고 겨울 냄새를 맡으며 집 앞 빵집까지 걸어가요. 폴폴 풍기는 버터 냄새에 저절로 발이 움직여질 거예요. 그렇게 새벽 같은 아침에 크루아상 하나와 카푸치노 한 잔을 들고 강가 벤치에 가서 앉아요. 폭신한 우유 거품에 크루아상을 찍어 한 입 베어 무는 거예요. 너무 황홀하고 기분 좋은 로망이지 않나요? 하하. 이런 로망을 꼭 실현하고 싶어서 나중에 불어도 배워보려고 합니다.”
- 로망이 정말 구체적이기도 하고 다양하기도 하네요. 어떻게 이런 삶의 로망을 갖게 되신 건가요?
“코로나가 엄청 심해서 밖에 나가지도 못한 기간 동안 정말 지루했어요. 집에만 있어서 그런지 코로나 블루도 온 것 같았고요. 그래서 그때 더 다양한 상상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내가 왜 주저하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인데 그냥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쉽잖아요. 제가 하는 상상들을 막상 이루려고 시도만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작은 로망들을 하나씩 실현시키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 보니 매일이 새롭고 알차고 재밌더라고요. 이렇게 로망을 정말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더 재밌는 상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그게 저의 원동력이에요. 이런 로망을 이뤄 나가는 것 자체가 제 삶이라고도 생각해요. 그러니까 로망이 그냥 제 삶이었으면 좋겠어요. 매일의 삶이 단조롭지 않고, 항상 새롭고 설레는 것이 제 인생 목표거든요.”
- 로망을 로망으로 두지 않고 직접 실천해 나간다는 게 정말 대단해요. 로망은 헛된 희망이라고 치부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사실 제가 상상한 것들을 이룬 후에 저 스스로도 많이 변했어요. 내가 꿈꾸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가 구체적으로 그려지니까 저의 이상향대로 스스로를 변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에게는 로망이라는 게 결코 가벼운 장난은 아니에요. 직접 상상을 실천해가는 게 곧 제 삶이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로망을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않으면 충분히 실현할 수 있어요. 제가 계획형 인간이기는 한데 계획을 짜는 것만 좋아하고 실천하는 건 잘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런데 제 로망은 가볍기도 하고 제가 너무 좋아하는 것들이니까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점점 더 큰 것들을 이루게 된 것 같아요.”
- 실현했던 로망에는 어떤 게 있나요?
“제가 외국인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는 게 로망이었는데요, 물론 여전히 그런 로망을 갖고 있어요. 이런 로망을 처음으로 이뤘던 게 21살 때의 여행이었어요. 러시아와 영국을 3주 정도 혼자 다녀왔는데, 저의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었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여행을 했습니다. 횡단 열차를 타면 영국까지 일주일 정도 걸리는데 그동안 기차에서 먹고, 자고, 씻고 했던 게 정말 재밌었어요. 물론 기차여서 샤워실이 구비가 안 되어 있으니까 좁은 화장실에서 대충 머리 감고 씻어야 하는 고충이 있긴 했어요. 그럼에도 너무 좋았던 건 그 기차에서 친구들을 정말 많이 사귀었다는 거예요. 제가 탔던 열차에 한국인 두 분이 더 계셨는데, 그분들과 금방 친해져서 같이 모여 있다 보니 저희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더라고요. 그래서 러시아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많은 사람들과 같이 놀았어요. 그때 친해진 러시아 친구가 나중에 저를 본인 집으로 초대해주어서 한 번 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여행했습니다. 정말 재밌었어요. 그때 서로의 언어를 완벽하게 알지 않아도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면 무엇이든 통할 수 있다는 걸 배우기도 했고요.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던 여행이었어요.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살면서 꼭 한 번쯤은 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몽둥이는 본인을 심한 긍정주의자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무엇이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머릿속에 나쁜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눈을 가진 몽둥이는 좋은 것들로 본인을 가득 채우고, 또 긍정적인 힘으로 본인을 변화시켜갔다. 실패할까 봐, 넘어질까 봐, 힘들까 봐 고민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실천하는 몽둥이의 삶이 부러워졌다.
- 저희 인터뷰의 시그니처 질문을 드려 볼게요. 당신의 낭만은 무엇인가요?
“제 낭만은 처음 보는 세상에 발을 들여놓는 일, 그리고 매일이 새로운 일상이 되는 것입니다. '일상'이라는 단어의 뜻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라는 의미인데, 그런 일상도 매번 새롭기를 꿈꾸는 게 제 낭만이에요. 앞에서 말한 로망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사실 지루할 만큼 똑같잖아요. 그런 생활에서도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새로운 것을 향해 도전하는 것이 바로 낭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대시 앤 릴리>에 ‘make a magic’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이 말이 지금까지 제가 했던 이야기들을 다 담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의 마법을 직접 만들어간다는 의미예요. 우리 삶에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면 그 일을 직접 만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실현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영어 단어 하나로 인터뷰를 끝낸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단어는 ‘stardust’ 예요. '소성단 또는 황홀한 매력'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요, 제가 생각하는 이 단어의 의미는 말 그대로 별처럼 빛나는 먼지예요. 그러니까 별이 뿜어내는 먼지는, 먼지이기는 하지만 아주 반짝이며 빛나잖아요. 사람들이 밤하늘을 볼 때 먼지를 먼지로 보지 않고 별로 보겠죠. 그래서 내가 스스로 빛나는 사람이면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아주 하찮은 거라고 해도 전부 멋지게 빛날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도 계속 stardust처럼 살면서 남의 시선에 두려워 않고 맘껏 꿈꾸며 로망을 실현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본인이 좋아하고 꿈꾸는 것을 고민 없이 택하는 삶. 비현실적인지 현실적인지를 따지기 전에 우선 마음껏 꿈꾸는 삶. 아직 젊은 세상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누리는 삶. 몽둥이의 하루하루는 우주 속에 가득한 별만큼이나 알차다. 힘들고 어려운 사회에서도 본인에게 주어진 것을 가꾸고 발전시키며 낭만 가득한 일상을 만들어가는 몽둥이와 같은 청년이 여전히 건재함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