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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ju Woo Sep 20. 2019

킬리만자로 트레킹, 고산병은?

킬리만자로 트레킹 에필로그 1

***저는 전문산악인도 의사도 약사도 아닙니다. 그저 저의 경험을 토대로 공유할 뿐입니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 나는 킬리만자로 트레킹 셋째날 저녁에 혈관확장 약 한알을 복용했다. https://brunch.co.kr/@iamhyunjuwoo/6 그러나 다음날 아침 속이 쓰려 더이상 복용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정상까지 다녀왔다. 그러나 나의 다른 가족들은 부담없이 효과가 좋아 복용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건 결코 개인의 문제이다. 본인에게 약이 잘 맞아 효과가 좋은데 굳이 두통, 구토, 미식거림, 소화불량등의 고통을 참을 필요는 '전혀' 없다. 게다가 약에 의존함으로서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면 더할나위없는 컨디션이 되는 것 아닌가. 반면, 본인에게 맞지도 않는 약을 굳이 먹어가며 또 다른 고통을 스스로에게 가할 필요는 없다. 


나의 상황은 이랬다. 

-부모님은 쉬라캠프에서부터 두통이 시작되어 가이드의 허락을 받은 뒤 아스피린을 복용하심

-동생은 라바타워에서 바랑코캠프 가는 길에 타이레놀과 비슷한 성분의 약을 한 알 복용함

-부모님과 동생은 셋째날 저녁식사 이후 추가로 혈관확장약 복용

-마침 나도 바랑코로 급히 내려오는 바람에 두통이 심해 한번 먹어볼까? 싶어 혈관확장약 한 알 복용 

-다음날 부모님과 동생의 컨디션은 좋았지만 나는 속이 너무 쓰렸음

-나는 더이상 약 복용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함 


그러나 이게 가능하려면 조상중에 고산지대에 사시는 분이 계시던가 아니면 고산에서 태어났거나 하는 등의 고산병이 안걸리는 타고난 체질이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체질이 아니란 걸 지난 두번의 라다크 여행을 통해 알았다. 첫번째 방문때는 델리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30시간정도 고도를 천천히 높여가며 해발 약 5600미터를 넘어 라다크에 갔기에 별 무리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는 버스에서는 잠도 실컷 잘 수 있었고 40분에서 2시간 마다 멈춰주는 버스덕에 물도 충분히 마실 수 있었다. 두번째 방문때는 비행기를 이용해 델리에서 라다크의 레까지 1시간 30분만에 날아갔다. 이전에 고산병이 안왔기에 마구 뛰어다니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가 하루만에 어지러움이 시작되어 방에 3일은 푹 쉬었었다. 그 당시 마늘스프와 따뜻한 차를 굉장히 많이 마셔 차를 화장실을 계속 갈 정도였고 소변의 색깔조차 걍 투명할 정도였다. 게다가 양말과 모자를 계속 쓰고 있고 옷도 따뜻하게 입어 체온을 유지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왜냐하면 라다크 방문 시 창파 유목민의 터에 방문하여 텐트치고 잔 적이 있는데 그 당시 그곳은 해발 4300미터 였다. 그때는 물론 어리기도 했지만 그 추운데서 침낭도 없이 텐트에서 잘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라다크경험, 약이 맞지 않음, 컨디션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음 등의 조건으로 정상등반까지 내 멘탈을 내가 관리해보겠다고 마음먹었던것 같다.


1. 할 수 있는 최대한 몸을 사리자.

-잘때는 무조건 귀까지 감싸는 겨울 모자(공간이 충분한)썼고, 따뜻한 물통 2개를 끌어안고 잤다.

-양말은 발 씻을때만 벗었다.

-바람이 차거나 건조하다고 느껴질때는 마스크를 쓰고 잤다.

-화장실가거나 밥먹으러 갈때, 사진찍으러 돌아다닐때에도 트레킹하는 것 처럼 엄청 천천히 움직였다.


2. 트레킹 중

-심장을 빠르게 뛰게 하지 않았다-->숨이 차지 않게 했다. 

  한 가지 팁, 팔짱을 끼고 걷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으면 내가 숨이 찬지 안찬지 알 수 있다. 참고로 나는 팔짱을 끼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서 스스로 상태를 점검했고 그랬을때 숨이 차거나 심장이 뛰는게 느껴지면 속도를 더욱 낮췄다. 그렇다고 그 걸음이 결코 느린게 아니다. 

-내리막길에서는 오르막길보다 더 천천히 가는 느낌으로 걸었다.

-상체를 최대한 세워서 어깨를 펴고 걸으려고 노력했다.

-5일차에 가방을 가이드에게 넘겼다 : 허리벨트를 꽉 조이지 않아 4일차에 겨드랑이 쪽이 결리더니 숨쉴때 폐에 통증이 느껴졌다. 5일차 베이스캠프까지는 통증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정상등반때에는 괜찮아졌었다. (내가 아프다고 했더니 나의 최애 가이드 하지가 ㅋㅋㅋㅋ 알고 있다고 했다 ㅋㅋㅋ???? 장난하냐고 왜 안들어줌 그럼?????ㅋㅋㅋㅋ).


3. 심리전

-정신을 팔았다. 자꾸 고산에 대한 생각이나 내가 머리아픈가 안아픈가라는 종류의 생각을 하게되면 멀쩡하다가도 아프기 마련이다. 그러니 주변에 관심을 두는편이 낫다. 나의경우, 

1) 시야 확보가 불가능할때 : 앞사람의 걸음걸이를 보거나, 고프로로 나를 촬영하거나, 가이드와 대화를 하거나, 뜬금없는것들에 대해 생각을 하는 등. 

2) 시야 확보가 가능할때 : 생태환경에 관심이 없어도 관심을 두고 관찰하기, 사진을 많이 찍기, 나머지는 1번의 경우와 비슷

-가이드에게 나의 성향에 대해 알렸다 : 개인적으로 목표가 정확해야 달려나가는 성향이다. 예를들면 등산 중에 사람들이 '조금만 가면 되', '다왔어', '5분이면 가' 와 같은 거짓말을 하는데 절대 싫다. 물론 그들은 용기와 희망을 주려고 하는 얘기지만 나는 현실적이고 정확한걸 좋아한다. '아직 10분의 1왔어', '7시간 더 걸려', '여기까지는 아주 평탄한거야. 앞으론 진짜 급경사야'와 같은 편이 훨 낫다. 그래서 킬리만자로 등반 시 나의 가이드에게 나는 정확한게 좋으니 너무 고통스럽고 지옥같은 대답일지라도 그냥 솔직히 얘기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정말 정상 등반때, 해뜰때까지 걸어야 되라고 얘기해줬다......ㅋㅋㅋ. 

-무한 긍정 태도 : 난, '몸살날것 같다' 라고 생각하면 정말 5분안에 몸살이 난다. 그래서 트레킹내내 긍정적인 생각만 하려고 무진장 노력했다. 무슨일이든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 목표 설정 : 대부분의 한국인이라면(우리가족을 포함한) 그 비싼 돈을 내고 거기까지 갔는데 등반에 실패하면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얘기니와같은 태도를 지닐텐데 그것에 대한 부담이 나에게는 마이너스 100프로였다. 나는 정상을 등반하던말던 관심이 정말 1도 없었고 트레킹과정을 즐기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참고로 우리가족은 출발 전에 몇달에 걸쳐 이것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모님은 정상에 올라선 뒤에야 마음이 놓였다고 하셨다. 그러나 되도록이면 그냥 걸으라면 걷고,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면된다. 그러면 어느새 정상에 와있다. 트레킹하는 과정에 더 중점을 두어 압박감을 조금 내려 놓는것이 중요한 것 같다.


4. 가이드

킬리만자로 등반의 여부의 50프로는 고산병의 문제이고 나머지 45프로는 가이드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 5프로만 본인의 의지이다. (고산병은 의미와는 별개의 문제니까). 운이좋게도 우리가족은 아주 좋은 가이드들을 만났는데 20대 초중반으로 완전 에너지가 뿜뿜넘치고 매사에 긍정적이고 농담을 시도때도없이 하는 친구들이었다. 게다가 경험이 수두룩해 첫날 산행때 산 초입에서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엄마의 숨소리만 듣고도 앞으로 갈길을 생각해서 엄마가방을 자기들이 들어주기도 했다. 그러니 가능하면 경험은 많지만 긍정적인 에너지가 뿜뿜 넘치는, 웃긴 친구들을 배정해달라고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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