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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는 이유는 애정을 가지기 때문이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이 없는 것처럼

by 이고경

요즘 화가 많다. 왜 많을까. 화가 나는 이유는 결국 역설적으로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과 관련없는 것들에 대해선 놀라울 정도로 무심하다. 익숙하지 않은 거리는 피부에 와닿지 않으니까. 하지만 나와 가까운 것들, 손에 닿는 대상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을 좀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때,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 왠지 모르게 스멀스멀 화가 난다. 잘 지내고 싶은 사람과 대화가 어긋나면 화가 나기도 하고, 애써 잘 되었으면 해서 힘을 주던 일이 잘 되지 않았을 때에 화가 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전부 나와 중요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 하나로.


화를 내기 이전에 이미 안다. 원래 거의 모든 일은 의지대로 흘러가리라는 법이 없고, 나는 영화 속의 주인공도, 세상의 중심도 아니라는 사실을. 게다가 감정마저 온전히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자주 화가 나고는 했다.


사실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도 알고 있다. 그 대상에 애정을 걷어내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하지 않는 것처럼. 덜 사랑하면 이별도 덜 아픈 것처럼. 불을 꺼버리면 그늘이 사라지는 것처럼.


하지만 설령 할 수 있다고 해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 쪽에 가깝다. 차라리 불 속에 손을 델지언정 온기를 택하고 싶다. 애정해서, 몰입하고, 다칠지언정 진심 속에 살고 싶다. 나의 일에, 그 관계에, 진심이 담긴 감정과 상황에. 그러니까, 내가 화내는 건 지극히 당연하는 사실과 합의를 했다.


다만 이 가치관이 언젠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도 안다. 감정이 무뎌지고, 기대가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단 하나, 애정이라는 이름의 불씨만은 꺼뜨리지 않기를 바란다. 때로는 화가 되어 나를 흔들고, 때로는 따뜻함이 되어 나를 살게 하는, 이 불씨를 오래도록 품고 가고 싶다.


그리고 화를 내는 모든 애정의 대상들이 진심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난 무언가를 오래 미워하지도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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