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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멀 IMEOL Sep 02. 2019

쓸데 없는 것은 쓸모 없지 않아

#01. 어른이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법 - 비눗방울

"선생님, 이따 3시에 버블타임?"

"어머, 너무 좋죠!"

"좋아요! 그럼 15분만 더 일하고 보아요!"


흡연이나 티타임이라도 가지려는 듯한 제안을 마치면, 15분 동안은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버블타임의 시작은 교내 문구점이었다. 학교의 문구점에는 온갖 예쁜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슬라임, 장난감 칼, 뿅망치 등 초등학교 하교 길에 눈길을 사로잡던 것들이 한가득이다. 연구실 옆 자리에 앉아있던 선생님과 나는 가끔 문구점에 가서 이런 쓸모없는(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것들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운명처럼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오랑이'였다! 노란 빛깔 몸에 나름대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오리가 나를 부르는 듯했다. '이리 와! 어서 나를 데려가! 지갑을 열어도 돼!' 나는 여러 마리의 오리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친구를 뽑아 흔들어보았다.


"꽥꽥 삑삑삑!!!"


사람들의 갑작스러운 관심을 갖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편임에도, 이 소리를 듣는 순간 내 친구로 데려가야겠다 마음먹었고 어느새 계산을 하고 있는 나였다. 그렇게 데려온 친구가 바로 이 오랑이이다! 

뒤에 소리 구멍이 달려있어서, 흔들면 소리가 난다.


그렇다. 오랑이는 비눗방울이다. 이름은 옆자리 선생님이 지었다(이름을 금방 떠올려 잘 붙여준다). 대학교 교내 문구점에서 이렇게 경쾌한 소리가 나는 비눗방울을 파는 것도 너무 신기했지만, 3천 원의 소비에 금세 행복해지는 것도 신기했다. SNS에서 돌아다니는 글 중 어느 어린이들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너 왜 그렇게 쓸데없는 것을 사?"

"야, 너 왜 말을 그렇게 하냐. 내가 쓸 데 없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나도 사람들이 쓸데없다고 말하는 것들을 참 좋아한다. 비눗방울도 그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 학교는 높은 곳에 있어서 건물 옥상에 올라가면 서울시내 풍경이 한눈에 잘 보인다. 특히 미세먼지 없이 맑고 선선한 날에 파란 하늘로 비눗방울을 날리는 일은 나의 소소한 힐링이 되었다. 담배가 한숨을 대신할 수 있다고 했던가. 그것처럼 세게 한숨을 내쉬면 비눗방울은 만들 수 없다. 그래도 후후 부는 것만으로도 제법 기분전환이 된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재밌고 즐거울까요?"

"별 거 아니지만, 내가 불어서 만들어 띄우는 거 때문도 있는 것 같아요. 주체적으로 행동해서 그 성과가 눈에 보이는 일이라서요. 예쁘기도 하고요."


늘 그렇듯 작은 것 하나에서도 뭔가 발견하고 의미를 찾는 우리식의 대화를 이어갔다. 하지만 단순하게 내가 분 비눗방울을 보고 누군가 기분 좋아하고, 동심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그것도 나름대로 기분이 좋다. 투명하지만 또 무지갯빛으로 빛나서 마냥 투명하지 만은 않은, 가볍고 약하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면 멀리 자유롭게 날아가는 방울방울. 일이 많아 퇴근하지 못하고 있을 때, 옥상에서 흘러가는 예쁜 방울을 보면 나도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든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는 옥상에 올라갈 시간 내기도 어렵지만, 잠깐 동료 선생님과 시간을 맞추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 시간도 너무 행복하다. 비눗방울이 아이들만의 놀이라고 한다면, 나는 어린이로 남고 싶을 만큼.


그렇게 한참 비눗방울에 꽂혀있을 무렵, 나는 또 다른 장비를 마련했다. 그야말로 잇템이었다. 누르기만 하면 비눗방울이 연속으로 만들어지는 총이었다. 장만한 김에 또다시 선생님들과 옥상에 올라가서 비눗방울을 날렸다. 


"선생님, 우리 이러다가 졸업할 때쯤에는 대야 가져와서 만들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때는 그러면 비눗방울 안에 저를 집어넣어주세요!"

"나중에 버블아트라도 배워야 할까 봐요. 왜 유럽 가면 거리에서 하는 그런 거요!"


뭐든지 하면 열심히, 전문적으로, 최선을 다해하는 우리 모습을 보며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또 취미생활을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그렇지만 뭐 어때, 그럴 수 있지. 즐거운 일을 열심히 해서 나를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만드는 것인데! 해야 하는 일만 열심히 효율적으로 하란 법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효율적으로 온 힘을 다해서 해도 된다. 

작고 쓸데없는 것을 삼으로써, 그리고 쓸데없는 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쓸모 있는 일은 없다. 곧 가을이 온다. 날이 선선해지면 다시 파랗고 맑은 하늘로 방울을 날려 보낼 것이다. 'It's bubbl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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