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이 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기훈 May 06. 2023

아이 엠 #1

일어나거나, 기이하거나, 기특하거나.

  내 나이 10살 즈음 나는 동네의 컴퓨터 학원에 다녔다. 컴퓨터가 배우고 싶었다기보다는 친한 친구들이 있어서, 같이 놀기 위해 다녔다. 하지만 학원을 다니는데 아무것도 배우지 않을 수는 없기에 다양한 자격증 공부를 했다. 워드프로세서, 컴퓨터활용능력, ITQ 등등등… 내가 처음 한자로 내 이름을 적은 것이 그때였다. 자격증 시험을 보기 위해서 원서접수를 해야 했고, 원서에는 내 한글이름과 한자이름, 원한다면 영어이름까지 적어야 했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은 이름인데 뭐가 이렇게 많이 필요한가 생각하며, 아버지께 내 이름은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여쭤보았다. 아버지는 내게 ‘일어날 기(起)’에 ‘가르칠 훈(訓)’자를 쓴다고 알려주셨다.


  나는 내 이름이 굉장히 평범하다고 생각했었다. 발음이 특별하지도 않고, 하늘이나 대한이, 별이 처럼 뜻이 보이는 한글 이름도 아니고, 나와 이름이 같은 친구들도 2명이나 있었다. 한기훈, 장기훈. 심지어 형의 친구 중엔 성까지 같은 김기훈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이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뜻을 알게 되었을 때 어딘가 조금 멋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어나서 가르치는 사람이 되라니.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그런 사람을 꿈꾸지도 않았지만, 그런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약 10년 정도 내 이름은 ‘일어날 기(起)’에 ‘가르칠 훈(訓)’을 쓴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다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원서를 쓸 때쯤 충격적인 것을 목격했다. 金奇訓. 내 주민등록등본에 적힌 내 이름은 내가 알고 있는 그것과 달랐다.


  나는 나에게 충격을 안겨준 그 한자가 어떤 뜻인지 검색해 보았다. ‘기이할 기(奇)’라고 했다. 난 분명 내가 일어나서 가르칠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이한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 순간부터 나에게 내 이름 기훈은 다시 어딘가 기운 빠진 이름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였을까? 잘못 입력된 한자 이름은 신청을 하면 바꿀 수 있다고 하였지만, 나는 어딘가 기운이 빠져 뭐 쓸 일이나 있겠나 생각하며 그냥 넘어가 버렸다. 그다음 해 난 입학했던 학교를 한 달 만에 그만두고 나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어딘가 기이한 사람이 되어있었고, 그런 사람이기 싫었지만, 나도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보았다.




  그 뒤로도 나는 조금 기이하게 살았다. 다시는 가지 않겠다던 학교를 다시 가고,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다시 자퇴하고, 남들보다 조금 늦게 군대를 가고, 다시 학교를 갔다가 또 자퇴를 했다. 조금 기이해 보이지만, 행복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시작한 아르바이트에서 아직까지도, 앞으로도 사랑할 사람을 만났고, 늦은 나이에 간 군대에서 책을 만나 나도 글을 써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행복했다. 그렇게 기이하게 행복하다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글을 쓰기 전 나는 다시 한번 내 이름의 중간 글자를 찾아보았다. ‘기특할 기(奇)’라고 했다. 분명 내 기억 속 나는 기이한 사람이었는데, 지금 보니 기특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 나이 30.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내 이름은 분명 그대로인데, 10년마다 바뀌었다. 앞으로의 10년은 새로 바뀐 내 이름처럼 기특하게 흘러갈까? 아니, 기특하게 행복할까? 아직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지만, 그런 사람을 꿈꾸고, 그런 사람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