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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본 Jul 10. 2022

10. 부르크하르트, 문화의 관점에서 '미술'을 보다

- 미술사회학의 탄생

르네상스는 고전 문화예술이 부활하며 중세시대 무시되었던 인간의 창조성과 개성이 복원된 시대로 16세기 미술가 조르조 바사리가 그의 저서 《예술가 열전(1550)》에서 '부활'을 뜻하는 'rinascia(리나시타)'를 사용한 것이 시초가 되며, 이후 프랑스 역사학자 쥘 미슐레가 이를 '재탄생'을 뜻하는 'renaissance(르네상스)'로 번역하며 '르네상스'라는 말이 정착되었다. 그러나 르네상스는 단순한 명칭에 그치지 않는다. 중세 이후의 시대를 일컫는 평범한 말도 아니다. 그것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 새롭고, 혁신적이고, 아름답고 위대한 것'의 대명사이자, 서양문화사 측면에서 중세를 벗어나 '근대'로 넘어가는 전환기 - 즉, '근대의 발판'을 가리킨다. 


르네상스가 하나의 문화예술사조나 어떤 문화예술의 유행에서 그치지 않고, '시대 개념'으로 확립된 배경에는 19세기 스위스 출신의 역사학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의 공이 크다. 



스위스 바젤 출신의 이 역사학자는 그의 저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화(1860년)》에서 르네상스를 중세와 완전히 구별되는 다른 시대로 파악했다. 고대 문화예술의 부활은 '신' 중심의 획일적이고 관습적인 중세 시대에서, '인간' 중심이었던 고전 시대로의 부활을 의미하며, 따라서 르네상스는 오랫동안 잊혀졌던 인간성을 회복하고, 창조성과 개성을 회복한 중세와는 완전히 다른 시대라는 것이다. 부르크하르트의 이러한 접근법은 이후 르네상스를 이해하는 구심점이 되어, 중세와 르네상스를 시대적으로 구분하는 사고방식을 정착시켰다. 



부르크하르트가 중세와 구분하여 르네상스를 다른 '시대'로 구분하는데 결정적 기준이 바로 '자유'의 개념이다. 중세는 개인보다 집단, 집단보다 '신'이라는 수직적인 구조가 강했고, 무엇보다 기독교, '신' 중심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획일적이고도 폐쇄적인 사고방식이 모든 사회문화, 일상생활 저변에 가득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는 달랐다. 특히 도시국가 중심의 북부 이탈리아는 중세적 관습에서 탈피하여 근대적 국가모습을 갖추었고, 특히 고대 문화예술이 부활하여 '인본주의(humanism)'가 성행함에 따라 인간의 창조성이 다시 각광받고, 집단주의적인 중세에서 벗어나 개인의 능력이 강조되는 근대적 의미의 '개인' 탄생했다. '신'에 얽매였던 가려진 눈이 열리고, 이제 르네상스 시대 북부 이탈리아는 자연과 인간, 과학에 대해 근본적인 관심을 보이며 종교적 학문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사회적으로도 수직적인 중세의 신분제적 분위기가 차츰 힘을 잃어갔다.  


위와 같은 사회문화적 변화가 북부 이탈리아인들에게 '스스로 창조하는 환경'을 허락했고,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자유'가 결국 르네상스라는 시대를 탄생시켰다는 것이 바로 부르크바르크의 해석이다. 



물론, 부르크하르트의 해석이 정론은 아니다. 후대 학자들에 의해서 당시 이탈리아 사회문화적 변화가 부르크하르트가 믿고 있었던 만큼 중세를 탈피한 것도 아니고, 도시국가의 정치적 면모 또한 근대국가적 조건을 두루 갖춘 것도 아니다. 여전히 그 당시에도 중세적 미신과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지속되었고, 근대 과학의 시작은 18세기는 되서야 등장해으니 부르크하르트가 근대적이라고 믿었던 근대과학은 당시에는 여전히 미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화》가 르네상스의 기본서이자 르네상스의 개념을 확립한 저서임에는 확실하다. 그로 인해 르네상스가 인간의 개성이 드러나고, 인간 본연의 능력이 부각되고, 합리적인 생각과 보다 유연한 생활방식이 가능한 시대로 중세와 다른 시대임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미술사적 측면에서도 부르크하르트가 남긴 영향력 또한 의미가 있는데, 그동안 역사적 기록으로서 미술을 바라보던 '빈켈만'적 시각에서 미술을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해석하는 새로운 접근법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문화가 당대 사람들에게 '자유'를 허락했고, 중세문화에서 '해방'됨으로써 새로운 문화예술 시대 르네상스가 도래했다라고 하는 그만의 접근은 미술을 문화의 하나로 보는 문화사적 미술사의 탄생과 뵐플린을 선두로 한 새로운 미술사학자 시대를 열였기에 부르크하르트는 미술사학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역할을 완수했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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