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무렵,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싱싱마트에서 이른 장을 보았다. 칼칼한 된장찌개를 염두에 두고 느타리버섯에 두부, 매운 고추까지 샀다. 장보기를 마치고 마트 출구를 나오는데 중씰한 사내의 목소리가 발걸음에 차였다. “애가 조금 녹았어요.” 목소리와 맞닥뜨린 건 마트 옆에서 노점을 하는 생선가게를 지날 때였다. 이 가게는 일찍 파장하기로 동네에서 유명하다. 그날 팔 물량만 떼어다 신선할 때 팔아버리기에 서두르지 않으면 생선을 살 수가 없다. 마트 안에도 어물전이 있지만, 조각 얼음 위에 몇 날 며칠 누워있던 걸 여간해서는 선택하지 않는 게 이 동네 주부들의 상식이며 무언의 규칙이다. 그냥 지나치려다 사내의 말이 하도 애달프게 들려 곁눈질로 좌판을 보았다. 과연 생태 한 마리가 외롭게 누워있다. 애가 조금 녹았다는 말은 생선이 선도를 잃어가고 있다는 말일 터. 생선을 내려다보자니 생각이 많아진다. 차갑고 먼바다에 새끼들만 뿌려 두고 잡혀 온 어미 명태일까. 모두 팔려나가고 홀로 외톨이가 되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명태는 사내를 올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어찌해도 새끼들이 있는 바다로는 돌아갈 수 없는 신세, 차라리 얼른 열탕 지옥으로 보내달라고 애걸이라도 하는 중인지. 아니면, 북풍한설 몰아치는 진부령 고개로 가 황태로 변신해 새로운 삶이라도 꾸리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내 생각일 뿐. 명태는 해탈한 노승처럼 오히려 평온하다. 사실, 이 가게의 주인은 할머니, 사내의 어머니였다. 왼손으로 생선의 배를 가르고 토막을 냈던 할머니는 새벽 찬바람을 가르며 물건을 떼어 와 가게를 열었다. 당신이 주인이었을 적에는 친구뻘 되는 다른 이들이 푸성귀를 들고 와 팔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옆에 사내가 나타나 누런 고무장갑을 끼고 역시 왼손으로 생선을 다듬었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홧김에 버렸다나. 사내의 어머니는 아들이 손질한 물건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돈과 바꾸며 서서히 자식에게 가게를 넘기고 있었다. 결국 할머니가 일을 놓고 쓸쓸히 가버리자, 옆자리 친구들도 자리를 떠났다. 시간도 인생도 하오를 향하는 시점에서 발견한, 햇볕과 일순 불어온 바람에 표면이 말라가며 애가 녹아 가는 명태 한 마리. 그림자가 길어지는 시각, 나는 사내와 명태 사이를 오고 가다가 급기야 사내의 어머니에게 마음이 쏠렸다. 졸이다가 태우며 내색 없이 애간장을 끓였을 그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애가 녹아가는 명태처럼 저 사내의 인생이 자기 어머니의 애간장을 녹이는 삶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애가 조금 녹았어요.”라고 연방 읊조리는 사내 곁으로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