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별외계인 Oct 14. 2023

07. "시간 죽이기"를 넘어 "시간을 살리는 법"

시간을 채우려는 강박이 오히려 그 가치를 앗아간다


“아, 시간 아까워! 이동하는 동안에 뭐라도 해야지. 뉴스를 하나라도 더 보고, 메일을 확인하고, 새로운 소식을 접해야 해! 그래야 세상으로부터 뒤쳐지지 않으니까.”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시간 죽이기, 아니면 부활시키기?


나의 본가는 서울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지방에 위치해 있어서, 서울과 본가를 오가는 일이 자주 있다. 그 여정은 때때로 KTX를 타거나 고속버스를 이용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흔히 겪게 되는 것이 '시간 죽이기’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또는 잠시 휴식을 취할 때마다 손은 자동적으로 휴대폰을 찾아간다. 이런 순간들에 우리는 '시간을 죽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정말로 '죽은' 시간일까?


스크린과 가깝게 붙어있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두통과 불쾌함이 찾아온다. 휴대폰은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아이폰이 너무 가깝습니다

웹서핑 흐름을 끊어버리다니, 짜증이 난다. 하지만 곧이어 내 자신이 설정해놓은 기능임을 깨닫게 된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부끄러워진다. 이렇게 된 이상, 오늘은 스크린으로부터 아주 멀어져보자.


스크린 대신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버스 창문이 이렇게나 컸던가? 창문 너머로 펼쳐진 세상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경치 무한 리필 사건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경치를 감상하다보니 문득 우리나라가 무척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계절의 변화는 자연이 가장 먼저 눈치챈다. 삼분의 일 정도가 산인 나라에서 도처에 보이는 산들,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나무들,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논밭들… 아름다운 계절이 왔음을 느꼈다. 


이렇게 멍 때리는 동안 마치 두뇌가 다른 모드로 전환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 안의 잡념들은 사라지고 자연과의 연결감, 미학적인 감탄만이 남은 것 같은. 방금까지도 당연하게 여겼던 디지털 기기와의 작업을 하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다는 사실 또한 놀라웠다.






두뇌를 리셋하는 '생산적인 지루함':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이러한 경험은 '유익한 지루함' 혹은 '생산적인 지루함'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일상적인 자극과 활동에서 벗어나, 단순히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며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탐색하는 시간이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를 활성화시킨다.


뇌과학자들이 발견한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우리의 뇌가 명확한 목표나 작업에 집중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특별한 네트워크, 바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이다. 이 네트워크는 과거를 회상하거나 미래를 상상하는 등의 내부적인 정신 활동 중에 활성화되며, 우리가 자유롭게 생각하거나 공상할 때 주로 작동한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멍 때림' 상태에서 DMN은 가장 활발하게 동작한다. DMN이 활성화될 때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탐색하고, 내면 세계와 교감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우리의 마음은 자유롭게 배회하며 창조적인 생각을 하고 문제 해결 방법들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계속해서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기기에 집착해야 할까? 왜 굳이 버스나 기차에서 여유 시간 동안도 업무 메일을 확인하거나 SNS 업데이트를 체크해야 할까?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들은 필수적인 것이 아닐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가끔은 그냥 멍- 때려보자.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 속에 마음을 빼앗겨보자. 샤워 중에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고, 잠자기 전 침대에서 조금 더 긴 시간을 보내보자. 이런 멍 때림의 시간들은 우리의 자아와 영혼을 돌보는 중요한 시간이 된다.


그리고 다음 번에 '시간을 죽이려' 할 때, 잠시 멈추어 생각해보자. 시간을 꼭 죽여야 할까?


우리는 모든 시간을 꽉 채우려는 경향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시간의 가치를 잃어버린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다. 그러니까 그 시간을 살리려고 노력해보는 건 어떨까. 이동 중이거나 휴식 시간에 스마트폰을 꺼내려 할 때, 창 밖의 풍경으로 시선을 돌려보고, 아니면 닫혀있던 책 한 권을 열어본다면. 그러면 그 시간 속에서 어떤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창 밖으로 계절의 변화를 목격하며 느끼는 기쁨 같은 것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6. 너무 느려, 더 빨리, 더 빨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