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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un 22. 2023

흡연자의 기억법

사담 2

 역량과 인성 중 양자택일을 하라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무엇을 선택할까? 아마도 근소 우위로 역량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흡연장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5~20분 사이의 다양한 DUR을 가진 이 배연 타임은 인간을 보다 더 인간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흡연자에게는 그 공백의 시간만큼 추가 업무를 부여해야 하지 않느냐 따위의 일갈은 인류애 저하에 일조하는 악수일 뿐이다.


 장소의 협소성이 만드는 비밀 누설은 흡연의 예상 못한 부가 포인트다. 가끔 나는 알고 싶지 않은 정보까지 너무 쉽게 노출되는 이 환경이 거북해 좀 더 멀리 나가기도 한다. 특히나 그 내용이 공통의 적을 향한 추문에 가까운 이야기일 때 더욱 그렇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없다는 통용과 달리 무심한 일상이 반복되는 직장인에게는 뒷담화가 심심풀이로 강제된다.


 어느 곳에서도 쉽게 정을 느끼지 못하는 습성이 공황처럼 다가올 때면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피우러 내려갔다. 가끔 일면식 있는 사람들이 경황을 묻기도 했지만 답변보다 못한 얼버무림으로 대화를 흐지부지 만들었다. 사실상 누구보다 인간을 애정하기에 느끼는 어려움이라고 믿어왔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난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인간이라고.


 그러던 어느 날, 흡연장에서 목례 정도만 주고받던 한 어른이 뜬금없이 엘리베이터에서 어린 시절 꿈이 무엇이었냐고 물었다. 이상한 사람인가 보다, 래퍼였는데요?라고 대답하니 그는 어린 시절 꿈이 육상 선수였다고 한다. 성장기에 키가 크지 않아서 관뒀지만요. 하하. 그 당시에는 줄을 세우면 맨 앞에 서야 할 정도로 키가 작았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는 지금 키가 족히 180은 넘어 보였는데.


 관성적으로 찾는 공간에서 내가 마주하기 싫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자 나만의 흡연장소를 물색했다. 이제는 구태여 함께 담배를 태우며 소소한 일 얘기를 하는 순간을 휴식으로 포용하고 싶진 않다. 동료들과 열을 올리다 보면 그래도 내가 마냥 비정상은 아니구나, 칼로리가 금방 소모되는 일시적 안도만 얻었다. 이건 여기서 어쩔 수 없는 거야. 당연하지 말아야 할 게 당연해졌다.


 문화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게 체감되지만 여전히 이 사회에서 여성의 흡연권은 남성보다 낮은 것 같다. 가끔 몇몇 동료들은 담배를 숨어서 피운다. 인사상의 어떠한 불이익도 없겠지만 괜히 눈치가 보인다고 한다. 연기를 내뿜으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뭐 어쩌겠어요. 이 회사가 딱 그 정도 수준인 거지. 진심을 담아 말했다기 보단 침묵이 어색해서 건네는 말에는 표정이 없다.


 흡연량이 늘었다. 미루고 미루던 전자담배 구입이 작년에야 이뤄지면서 머리나 목이 아픈 부담감이 확연히 줄었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흡연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질문 두 가지. 왜 담배를 피우게 되셨나요. 끊을 생각은 없으신가요. 지금의 나는 한심한 표정 반, 멋들어져 보이고픈 표정 반을 섞어 두 가지 질문에 둘 다 답할 수 있다. 너무 힘들어서요. 아직은 없어요.


 시선 높이에서 스멀스멀 상승하는 연기를 빤히 바라보면 내 속에 이런 게 들어갔다 나올 수도 있구나. 쓸데없는 생각이 들어 머릿속에 좁은 방을 하나 만든다. 딱 5분 동안 여기에 모든 감정을 매립해 둬야지. 연초와 달리 속을 후벼 파내는 개운함은 부족하지만 요사이 시간 동안은 끊어내긴 커녕 참아내기도 힘들 테니까. 이 시간을 빌미로 오늘도 간신히 기억해 낸다.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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