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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ul 04. 2023

1등 신랑감

사담 3

 결혼할 나이가 됐다. 나만 느끼는 생체 리듬이다. 다들 요즘 누가 서른에 벌써 결혼하냐, 3년만 더 생각해 봐라 조언하지만 날이 갈수록 확고해진다. 인생에 큰 재미가 없는 것은 취미의 부재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 본능인 애정. 그 애정의 유통기한이 갈수록 짧아진다는 걸 내가 여실히 느껴서다. 늦어도 3년 안에 나는 유부남이 되어야’만’ 한다.


 사회 속 인간을 다섯 단계로 분류한 어른이 말했다. 결혼은 3단계, 출산은 4단계라고. 그럼 마지막 단계는 뭐예요? 죽음. 서글펐지만 일리가 있었다. 4와 5 사이의 긴 공백은 내 주니어들의 4-1, 4-2, 4-3을 겪으면서 채워진다고. 그럼 나는 아직 2단계에 머물러 있는 레이스의 중간조차 도달하지 못한 애매한 주자. 누가 남자는 서른부터 숙성된다고 했는가. 나는 나날이 썩어가고 있다.


 삶의 불안정성을 결혼이 주는 책임감으로 지속하려는 건 아닌가 검열하게 된다. 남들 다 하는 일을 똑같이 하는 것조차 버거운 MZ세대들에게는 자의적 선택처럼 보이던 결혼도 앞자리가 바뀌면 비교 범위에 속하는 것만 같다. 비혼은커녕 비연애마저 흔해 보이지 않는다. 역시 혐오는 인터넷 속에만 존재하나? 그렇게 내게도 오래간만에 정말 위대한 이성 친구가 생겼다.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 싸구려 프러포즈만 열댓 번을 건넬 정도로 나보다 훨씬 사려 깊고 매력적인 이 작고 소중한 친구는 이전의 지난한 사랑들과 확연히 다르다. 물론 모든 연인들에게는 이러한 수식어구가 붙을 것이다. 사랑이란 으레 그런 것이니까. 하지만 이번엔 진짜 다르다고. 마음보다 한 발 뒤늦게 떠오르는 생각과 곱씹음이 방증한다. 난 좋은 사람이 되고 있다.


 유부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듣다 보면 결혼할 운명의 상대는 의외로 첫인상이 별로인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아직 파릇파릇한 미혼들에게 쑥스러움을 느낀 나머지 겸손한 너스레를 떠는 걸까? 그들의 배우자는 종을 울리지도 백마를 타지도 않은 평범한, 오히려 약간 비호감인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 안도감이 든다. 나 그렇게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연애의 종착점(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을 준비한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일까. 함께, 평생을 조탁하는 과정일까 아니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혹은 갇히는)는 일일까. 집, 차, 상황이 다 들어맞아야만 맺을 수 있는 약속은 분명 아닐 텐데. 조건을 따져보고 지레 겁을 먹은 사람들을 보며 답답함과 동질감을 느낀다. 귀한 진실과 보편은 상호 작용하지 않는다는 좌절이 고개를 빼꼼 내민다.


 한 어리숙한 어른은 내가 부모의 미래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대기업에 다니며 키가 180은 되기 때문에 1등 신랑감이라고 한다. 그 어이없는 주장에 어느 정도 동감한다. 하지만 나는 흡연자이고 탈모가 진행되고 있으며 성격이 예민하다. 이 중 단 하나 때문이라도 나는 1등이라는 수식어와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내가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을까.


 머리를 대고 5초 만에 잠을 캘 수 있는 상황이 어이없는 그녀와 꿈속을 헤집으면서도 정신을 차려야 해, 어떻게든 다시 눈을 뜨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 지척에서도 그리움을 느끼는 건 애정이 분명할 때 일어나는 놀라운 현상이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 남기 위해 생명력을 잃어가는 것이 사랑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게 믿는다. 비록 나는 1등도, 신랑도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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