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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Apr 02. 2024

국힙은 진짜로 '정리'되었나

정상 영업 중입니다.

힙합 리스너 16년 차.

내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힙합 음악으로 채워왔다.

힙합은 장르보단 라이프스타일에 가깝다고 믿어온 세월이 무색하게

요즘 들어 국힙은 아주 사소한 것에도 '정리' 되는 경우가 많다.

과연 국힙은 진짜로 정리되었을까?


16년 전 부산의 어느 중학교 교실.

리듬을 느끼고 있던 중학생 찬우는 무슨 음악을 듣냐며 친구에게 한쪽 이어폰을 뺏긴다.

"넌 진짜 이상한 음악만 듣네."

그때 내가 듣던 음악은 에픽하이의 <Flow>

그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는 SG워너비와 VOS였다.



당시 내가 듣던 '이상한 음악'인 힙합.

나는 소울컴퍼니에서 나온 모든 음악과 에픽하이, 다이나믹 듀오, 이루펀트를 좋아했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작은 아이리버 MP3를 졸라서 얻어냈고 작사와 가창을 시도했다.

힙합은 들을수록 플레이어가 되고 싶은 음악이었다.


그로부터 5년 뒤,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는 전국을 강타하고

내가 듣던 이상한 음악은 '힙한 음악'이 되어 전국을 지배했다.

그리고 바로 작년, 힙합의 대중화를 이끈 이 프로그램은 종영했고

귀신같이 한국힙합의 정리는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사소한 라인에서 이 멸망이 재점화됐다.

악뮤의 이찬혁이 <쇼미더머니>에서 뱉은 이 라인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힙합의 근간을 건드렸다.


"어~느 새! 부터! 힙~!합은 안 멋져~"



일견 헤비리스너와 대중의 대립처럼 보이는 어떤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국힙은 OOO선에서 정리 vs. 누구 마음대로 국힙을 정리?




1. 힙합은 더 이상 'hip'하지 않다.



작년과 올해 초 동안 여러분의 플레이리스트 대부분을 차지한 가수는 누구인가?

나는 아마도 뉴진스와 실리카겔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입의 척도가 돼버린 인스타그램 데이터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범대중적으로 뉴진스, 힙스터 픽으로 실리카겔이 확실하게 지금의 'hip'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음악은 무엇인가?

뉴진스의 <OMG>, 실리카겔의 <Tik Tak Tok>은 각각 저지클럽과 사이키델릭 록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이 두 그룹의 음악은 어느 한 장르로 국한되진 않는다.

중요한 건 이 두 그룹 다 일단 '힙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그룹의 히트곡은 힙합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요즘 음악 시장에서 장르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특히 더 그럴 것이다.

리듬의 작법과 운율을 만드는 작사의 스트럭쳐가 비단 한 장르만의 고유한 것이 아닌 지금,

웃기게도 힙합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영향력을 어떤 형식으로든 발현시키고 있다.


작년 뉴진스 붐의 주역이었던 프로듀서 250과 FRNK 얘기는 두 말하면 입 아프다.

그들은 힙합의 정서와 리듬을 아이돌 판의 주류로 만들어냈다.

쇠맛 나는 MZ의 실리카겔이라고 다를까?

밴드의 희망인 이들의 <Tik Tak Tok> 가사에는 매콤한 맛과 더불어 라임이 존재한다.


그런데 왜 힙합은 'hip'하지 않을까?

지코의 <새삥>과 다이나믹 듀오의 <Smoke>가 댄스 프로그램과 함께 초대박을 터뜨렸지만

힙합은 더 이상 주류 트렌드가 아닌 것만 같다.

확실히 그렇게 체감된다.




2. 많고 짧아진 미디어, 정작 떨어지는 집중도



다시 내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 본다.

하늘색 아이리버 MP3 속에는 뮤직비디오도 가사 집도 없다.

그 어느 때보다 청각에 집중하고 가사를 추측하는 '행위'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음악을 진지하게 청취하는 과정이 수반되었다.


- 음악은 음악 자체로 이해된다.

지금 시대에서는 절대 수용 불가능한 콘텐츠 소비 방식이다.

이제는 음악이 전면에 대두되는 시대가 아니다.

음악은 아스파라거스, 비주얼은 적당히 익힌 스테이크가 되었다.



잘 보이지 않을 때는 가창 능력이 정말 중요했다.

'김나박이'로 대두되는 싱어들과 현시대의 싱어들의 실력적인 부분만 놓고 비교해도 이 변화가 명확하다.

이제는 '노래를 못 불러'도 충분히 가수가 될 수 있다.

아니, 이제는 가수보단 음악을 다룬 엔터테이너가 될 수 있다.


음악이 전부일 필요가 없어지자 음악은 좀 못해도 괜찮은 것이 되었다.

소위 '때깔'이라고 부르는 냄새만 나면 가사가 괴랄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오히려 그게 더 특색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문화 속의 크레용팝, 모모랜드, 래원, 유브이의 방의 사례로 이를 지켜본 기억이 있다.



쇼츠와 릴스, 틱톡이 국힙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잠식하자 음악은 더욱더 사이드로 몰리게 되었다.

미디어가 많아지고 짧아지자 덩달아 음악을 접하는 범위도 많아지고 길이도 짧아졌다.

넷플릭스의 흥행과 더불어 스포티파이가 국내로 진입했고

이제 사람들은 인기 척도인 '차트'보단 내 취향 맞춤의 '플레이리스트'에 귀를 두기 시작했다.


취향저격 플랫폼에 적응되자 사람들은 더 빨리, 더 짧게 음악을 소비하며 진화/퇴화했다.

과거 릴펌의 <Gucci Gang>이 2분 4초의 짧은 러닝타임으로 메가히트를 기록하고 7년이 지난 지금,

2분대의 음악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고

틱톡을 기반으로 한 'Sped Up' 버전의 음원도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후크송은 더욱 자극적으로, 더욱 의미 없이, 더욱 변주되었다.

댄스 챌린지에 맞춰 짧은 반복구를 만들고 확실히 음악은 비주얼을 보여주는 요소로 전락된 것만 같다.

이제 사람들은 음악에 '집중'하지 않는다.

내러티브를 굳이 음악에서 찾지 않는 것이다.




3.  디스, 스웨그와 플렉스는 정말로 한국에 '적응'했나?



그 과정에서 언제나 신선해야 하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힙합은 유리한 고지를 무려 10년 넘게 차지했다.

어느 한 방송사가 만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시작한 이 기이한 현상은 큰 성공과 더불어 반발심을 만들었다.

귀에 들리는 것만으로 센세이션 했을 뿐만 아니라 보이기로 힙합은 확실한 자극을 책임졌다.

도파민 세대의 탄생 이전에 디스와 스웨그, 플렉스로 대두되는 국힙이 있었다.


'감성힙합'이라 불리던 소울컴퍼니 시절을 지나 '돈 자랑' 스웨그의 포문을 연 일리네어.

그때 당시만 해도 진성 힙합충들마저 그 둘의 연결고리인 더 콰이엇을 '변했다'고 말할 정도로 

이 감수성은 한국과 맞지 않았다. 그러나 성공을 보란 듯이 유행으로 증명해 낸다.

이제 대중문화 속에서 '과시'는 부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나 과연 이 태도는 받아들여졌는가.


디스리스펙트의 준말인 '디스'는 이제 비하의 대체적 표현으로 당연하게 쓰인다.

그 출처가 불분명한 사람들의 퍼 나름으로 인해 디스는 국힙 속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았다.

누군가를 물고 뜯고 싸우며 이기는 것은 한국의 경쟁사회와 너무나 잘 합치했다.

내가 응원하는 래퍼의 승리는 곧 내 승리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거꾸로 쓴 스냅백과 금목걸이가 생각나는 스웨그는 어떤가.

일리네어의 태동과 함께 수많은 반발심을 불러낸 한국힙합의 돈자랑과 여자자랑.

"니들 연봉을 공연 한 번에 벌어"와 "니 여자친구를 뺏어"는 유교 베이스의 한국 마인드와 합치되지 못했다.

나조차 소울컴퍼니 이후 일리네어의 더 콰이엇을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돈을 마구잡이로 쓰는 것을 뜻한다고 오용되는 플렉스는 조금 보완됐다.

그 의미가 제법 퇴색되었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본인의 자리에서 이룩해 낸 'effort'를 인정했으니까.

유불리를 따지며 플렉스는 한국힙합의 한 축으로 '갓'과 '좆'을 왕래하며 꾸준히 비호감을 쌓았다.

여기에 현재 씬에서 그나마 대두되는 레이지, 드릴, 하이퍼팝의 '대충 쓴 음악'들이 추가타를 넣었다.


음악이 전부일 필요가 없어지자 도리어 음악을 열심히 하면 힙하지 않고 멋없는 게 되어버렸다.

대다수의 젊은 힙합 아티스트들은 리릭시즘을 경시하고 '들리는 것 자체'에 집중했다.

그러지 못한 것을 오히려 트렌드에 뒤쳐졌다고 역으로 어필하기도 한다.

OG들을 향한 영보이들의 무작위적 비난과 시대정신에 부합하며 위반되는 스웨그와 플렉스가 설켰다.



박장대소하며 즐겼던 국힙에 대한 돌아섬은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니들이 벌면 얼마나 벌고 로우킥 한 대 세게 차면 부러질 것 같이 생긴 놈이 누구 여친을 뺏어?

뜨신 밥과 된장찌개를 먹고 자란 일반 중산층 가정의 자식이었던 래퍼들의 역설이 반발심을 불렀다.

니들이 무슨 게토고 갱이냐? 국힙은 외힙 발가락에도 못 미친다!


'저항정신'과 '파티음악'이라는 대조되는 기류가 맞부딪히기 시작했다.

"힙합은 저항정신!"이라 여전히 믿는 몰지각한 대중과 

"힙합의 뿌리는 파티음악!"이라 설파하는 몰개성의 현시대 리스너들은

유튜브 댓글창이라는 싸움판 안에서 서로를 '가짜(fake)'라고 물고 뜯기 시작했다.




4. 결국 젊은 음악이기에 '줄 세운다'



그럼에도 힙합은 결국 '젊은 음악'이라는 점은 반박하지 못하겠다.

녹음이 가능한 마이크와 타입 비트 하나만 있어도 뚝딱 만들 수 있는 간편한 음악에서 젊음은 태동한다.

내 마음대로 텍스트를 욱여낼 수 있기에 더욱 혈기왕성하다.

힙합은 명명백백하게 가장 젊은 음악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지금 젊은 여성 세대들 사이에서 '아이브 vs. 르세라핌 vs. 뉴진스'가 중요한 것처럼

힙합은 젊기에 세우는 것에 열광한다.

개그 유튜버 뷰티풀 너드의 맨스티어가 만든 <AK47>이 수없이 많은 젊은 국힙을 정리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들을 풍자 혹은 비하하는 것처럼 보이는 콘텐츠가 지지받는 것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



과거라고 달랐나?

먼 옛날 버벌진트의 '지진아 사냥'과 그보다 더 멀리 '라임 4대 천왕'만 봐도 힙합은 이런 상황에 익숙했다.

언제나 진짜와 가짜를 각자의 잣대를 가지고 따져 드는 음악이었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래퍼가 과연 국힙 안에서 누가 있을까?


한국힙합은 이제야 한 사이클이 돌았을 뿐이다.

작년 한 해 <쇼미더머니> 없이, 비록 대중의 관심도에서는 멀어졌으나 좋은 앨범이 쏟아졌다.

빈지노의 [NOWITZKI]는 한국대중음악상의 꼭대기에 올라섰고

스카이민혁의 [해방]은 여전히 젊고 배고픈 힙합 아티스트들의 가능성을 충분히 증명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젊은 슈퍼스타가 딱히 없다는 점뿐이다.

여전히 한국 힙합 씬에 큰 축을 차지하는 래퍼들이 40대 근방이라는 것은 장르가 확실히 경계해야 한다.

그나마 창모와 홍다빈을 필두로 이어진 하입이 여전히 30대 근처에 있다는 것을 보면

더 젊은 국힙 슈퍼스타의 탄생이 간절히 필요하다.




힙합의 영광은 리스너의 영광과 비슷한 시대를 향유하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국힙 음악에 대한 멜론 댓글을 보면 특히 더 그렇게 느껴진다.

학교 다닐 때 여름에 들었던 이 음악, 헤어지고 이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이런 감상이 비단 힙합에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국힙은 특히나 그 '시기'를 중요시 여기는 것 같다.


본인의 골든 에라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요즘 음악을 싫어한다.

이건 힙합이 아니야, 저건 랩이 아니야.

가사와 플로우, 현시대 상황을 떠나 좋은 기억에 음악을 가두는 건 어른들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음악과 자란 사람이 회고하는 장르의 하락은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얼마 전 인천의 인스파이어 리조트에서 진행한 에픽하이의 20주년 앵콜 콘서트에 갔다.

내 유년시절의 영웅들은 이제 4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여전했다.

주변의 관객들만 봐도 나와 비슷한 또래들 같았다. 힙합 인기 없다더니 다 여전하네.

<Bleed>와 <빈차>를 들으며 눈물이 났다. 나도 이제 늙은 리스너네.



아직도 나는 국힙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한국에는 너무나 좋은 힙합 아티스트들이 여전히 너무 많이 있고 또, 생겨나고 있다.

기나긴 세월의 장르 팬을 자처하며 소울컴퍼니에서 일리네어로, 일리네어에서 스꺼러갱 비즈니스로.

국힙도, 나도 여전히 레벨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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