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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브 Jun 02. 2023

시작은 서툴게

두 번째 우울증


시작은 서툴게 —-

엉킨 마음과 망설이던 손으로 문장을 만든다. 차마 입 밖으로도 나오지 못해 되뇌이던 것을 꺼내 놓으려니 고작 두줄만에 심장이 벌렁이다 못해 펄떡거린다. 뭉글어져 어떻다 하지 못할 상태로 있던 덩어리들을 손에 잡히는 형태로 맞춰 세우려니 내 언어는 자꾸만 차가워진다. 여름날 키보드 위의 손 끝이 꼿꼿해지는 것은 수족냉증만의 이유는 아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유머라고, 그게 건조한 너와 나 사이를 미끄럽게 우리로 만드는 윤활제라는 말은 참인데 왜 나는 지키지 못할 개똥철학을 말했나. 자꾸만 솟는 승모근에 등허리부터 팔꿈치까지 바짝 힘이 들어간다. 불필요한 힘이 글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데도 여전히 힘을 빼지 못하고 담백하지 못한 글을 계속 쓴다.


나는 맞은편에 앉은 할머니와도 아이스크림을 나눠먹으며 주책스럽다고 할 정도로 수다스럽지만, 보이지 않는. 나와 비슷하거나 전혀 다른 모양을 하고 있을 당신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속이 뒤틀린다.

쉽게 시작했던 나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기록은 동시에 나를 병들게 했고 그 과정 속에 나는 다시. 다시 또 이어간다.


이건 내 짧은 생의 서글픈 몸짓이다.

나 혼자 서 있는 승자 없을 사투다.


다행스러운 것은 나는 링 밖으로 도망갔다가 멀리 가지 못하고 다시 기어 올라왔다.

생에 처음, 도망치고 외면하고 싶어 후들거리는 다리를 꾹 지면 위에 누른다.

이 순간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미치겠는 마음을 부디 당신이 모르길 기도한다.

—- 겁쟁이의 지질한 마음으로부터






앞으로 계속 쓸 글은 ‘선데이 모닝 독립출판 클럽'에서 얻은 힌트였다. 서른다섯을 맞이하여 인생의 1분기 결산의 숫자와 상관없이 자축의 세리머니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게 별 것 없는 사람들의 자서전이 그렇듯 글은 초기 기획과 달리 점점 산으로 가고 있었고 5번째로 글을 전부 다시 쓰며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였다. 내가 이 글을 정말 왜 쓰고 싶어 하는 걸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내게 다시 하고 있을 무렵 클럽원은 나에게 지금 써야 하는 건 다른 것이라고 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색한 시간을 참지 못하고 주절대는 나의 버릇으로 시작된 이야기였다.


어느 날 패닉에 가까운 불안을 느꼈는데 도무지 진정이 되질 않았다. 뚜렷한 이유 없이 심장이 아프고 숨쉬기가 어려웠다. 앉아있기도 버거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나는 왜 불안한 감정을 느끼는 걸까?라는 질문을 계속했다. 내가 내린 답은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인정'이란 뭘까. 일이고 사람이고 내가 느끼는 가장 강렬한 감정은 ‘불안'인데, 내가 불안을 느끼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대게 상대방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에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나약한 점을 처음으로 마주 보게 되었다.


클럽원들은 첫 책은 본인의 이야기를 진하게 담은 글을 쓰는 게 좋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세리머니를 저버릴 수 없어서 옵션으로 가져가기로 하고 가볍게 시작했다. 기존에 쓰던 글이 막힐 때, 나의 오래된 기억 하나를 건져 쓰면 되니 환기용으로 좋다고 여겼다. 이게 어떤 날갯짓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저마다 어릴 때 쓰린 기억은 몇 있을 것이다. 치료할 시기를 놓쳐 그저 우글어진 흉터로 내 한 부분으로 그저 평생의 상처로 가져가는 것들 말이다. 딱히 떠올려서 눈물이 나거나 시큰해지는 부분이 없이 그래 그땐 그랬지 하는, 이제는 나이가 먹어 그땐 너무했다고 말하기엔 멋쩍은 것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이젠 괜찮다고 믿는 아릿한 냄새가 나는 사건들.


글을 쓰면서 나를 반추하기도 하고, 많은 깨닮음을 얻고 성장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반대로 내가 쏘아 올린 돌에 마음의 벽이 무너졌다. 나는 쓰러지는 벽들을 보며 베를린 장벽을 떠올렸지만 그 건 나를 지키던 성벽이었다. 바보같이 신나서 투석기에 잔뜩 돌을 올리고 과거의 나를 뛰어넘는다고 춤을 추다 온몸이 부서졌다.


자꾸만 쳐지는 기분과 집중이 잘 안 되는 일상에서 아무래도 혼자 힘으로는 이겨내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섰다. 예약자가 많아 2주 후로 상담일을 잡으며 세상엔 병든 사람이 많구나, 무섭네. 라며 건조한 시선에서 사나흘이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2022년 12월 27일. 사당역에서 환승을 하며 우주를 생각하다가 너와 나의 경이로운 만남의 확률을 생각하다 너무나도 찬란해 그대로 스러져 공기 중에 녹아 없어지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생각을 멈추기가 어려웠다. 아니 그 후로도 나는 계속 지워지고 싶었다.


내 인생에 두 번째 우울증을 겪었다.

나는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었다.


2023년 1월 1일

나는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2023년 1월 3일

나는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병원 예약일까지 내 몸에 갇혀 나는 나와 싸웠다.

억지로 밥을 먹고 토하고 싶은 것을 누르고 나는 죽고 싶어서 떨다가 살고 싶어서 울었다.


오늘은 비록 죽고 싶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도 분명하게 나는 과거 어느 순간 부드러운 바람과 함께 햇살이 따사로워 감동했고 빵집 앞을 지나가며 버터 냄새에 황홀해했으며 베란다에 움트는 여린 잎을 보며 대견해했다. 잘 느껴지지 않지만 분명 그 순간이 있었음을, 그 모든 것을 느꼈던 나를 기억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 이 순간 버티면 나는 곧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리라 믿었다.


두 번째 우울증을 겪으며 되돌아보니 내가 이렇게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이었나, 놀랐다.

그건 첫 번째 우울증을 지나 많은 것들을 담고자 움직였던 나의 과거 지난한 시간의 힘이었다. 언제나 나를 일으킨 것은 미래의 목표나 대단한 사람들의 명언이 아닌, 과거의 나였다.


그리고 언젠가 또 무너져 내릴 미래를 위해 오늘의 닻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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