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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준 Oct 16. 2023

쌀 먹는 영국 여자, 빵 먹는 한국 여자

레즈비언 한영 국제 커플의 식성

내가 요즘 즐겨 먹는 아침 식사는 토스트. 거친 사우어도우 브래드를 먹기 좋게 잘라 토스트기에 넣고 노릇노릇 구워져 나오면 그 위에 버터를 듬뿍 바른다.


그리고 한입 먹으면


아아, 그곳은 천국.


다른 슬라이스에는 땅콩버터를 듬뿍 발라 또 한입.


아아, 그곳은 지상 낙원.


나는 토종 한국인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식 대부분은 토스트와 버터, 파스타, 샌드위치 등과 같은 서양 음식이다. 거기에 한번 꽂히면 질릴 때까지 먹는 천성까지 있어 영국에 와서 한 3-4개월은 샌드위치만 주야장천 먹기도 했다. 오죽하면 연애 초기 B가 내 식사 메뉴를 물어볼 때마다 늘 답이 샌드위치로 정해져 있던 탓에 그녀는 한동안 나의 영양 상태를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매번 재료와 소스도 바꿔가며 샌드위치를 만들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샌드위치를 좋아하는 게 보여서 걱정을 덜었단다.


반면 B는 어떨까. B는 런던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자랐다. 영국인들 사이에서 '런던은 영국이 아니라 런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런던은 영국의 다른 도시와 구분되는 고유의 색을 갖고 있다. 그건 바로 인종 다양성.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와서 정착하는 도시 런던에는 영국 전통 음식점보다 인도 음식점, 중국 음식점, 자메이카 음식점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점을 만나는 일이 흔하다. 그래서 같은 영국에서 자랐어도 런던 출신인 사람은 다른 나라 음식에 대한 수용도가 높은 편이다.


거기다 대학에서 일본학을 공부한 B는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가서 지내기도 했다. 일본에서 지내며 일식을 접하고 근처 다른 나라를 다니며 다른 동양 음식도 접했다. 그 말은 즉슨, B는 동양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서양식보다 살짝 더 선호하는 편으로, 한 번은 빵 없이는 살아도 밥 없이는 못 살겠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아무리 동양 음식을 좋아한다고 해도 영국인은 영국인인지 정작 B의 소울 푸드는 선데이 로스트(Sunday Roast)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우리 두 사람의 입맛이 출신 국가와 다르게 반대여서 결국에 각자 입맛이 다른 거 아니냐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 둘은 '서양 음식만 좋아!', '동양 음식만 좋아!'와 같은 극극단적 케이스는 아니다. '동양인이지만 서양 음식도 좋아함', '서양인이지만 동양 음식도 좋아함'처럼 대체로 선호하는 음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우리 둘 다 애초에 음식에 그리 까탈스럽지 않다.


한 사람이 '오늘은 인도 카레가 먹고 싶어!' 하면 다른 한 사람은 '오, 좋아!' 하며 따라간다. 그러다 다음 날 다른 한 사람이 '오늘은 스튜가 먹고 싶군!' 하면 이번에는 어제 인도 카레를 외친 사람이 '좋아, 좋아' 하며 따라간다. 늘 그런 식이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서로의 하루를 나누는 식사 시간, 자신이 해 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나를 보고 B는 종종 감동받은 표정을 하며 고맙다는 말을 한다. 뭐든 잘 먹어 줘서 고맙고, 내 식성이 까탈스럽지 않아서 고맙다고. 그러면 나는 똑같은 말에 'too'를 붙여서 이야기한다.


'나도 네가 뭐든 잘 먹어 줘서 고맙고, 네 식성이 까탈스럽지 않아 고마워.'


나는 다른 듯 비슷한 우리의 식성이 참 좋다. 상대의 다른 부분도 포용하며 서로의 교집합을 넓혀가는 우리가 좋다. 이건 비단 음식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몽땅 반반으로 나루려다가 자주 지저분해지곤 하는 접시

추가로 B가 이번 글에 꼭 언급하라고 해서 적는 이야기. B는 우리의 식성이 까탈스럽지 않은 것도 좋지만 한 가지 더 좋은 게 있다고 한다. 그건 바로 '나눠 먹는 것을 꺼리지 않는 것'.


연애 초반 브런치 가게에서 B는 비건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를, 나는 에그 플로렌스를 시켰는데 메뉴가 나오자마자 내가 자연스럽게 반은 B에게 주려고 자르는 모습에 속으로 '예스!'를 외쳤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식당에 가면 약속하지 않아도 늘 자연스럽게 자기 음식의 1/3 정도를 덜어 상대의 접시에 올려 주게 됐다는, 자랑 아닌 자랑을 슬며시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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