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자에게는 별거 아닌 것이 한국 여자에게는 그렇게나 별거였다.
나는 내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걸 초등학교 저학년 때 깨달았다. 성인이 되고 느지막하게 자신의 성지향성을 깨닫는 사람들에 비하면 꽤나 일찍 깨달은 편이 아니었나 싶다.
성지향성을 깨달은 계기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당시 친하게 지내던 같은 반 여자아이가 부쩍 신경 쓰였는데, 나는 그게 단순한 우정의 감정이 아니란 걸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내 감정이 다른 사람한테는 꽁꽁 숨겨야 하는 비밀이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성소수자라는 걸 깨달은 이후 스무 살 중반이 될 때까지, 몇 안 되는 나의 과거 연인들과 믿을 만한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내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다. 여기서 '그 누구'에는 부모님과 형제, 친인척 모두 포함이다. 설사 커밍아웃을 한다고 해도 이 사람이 커밍아웃을 하면 받아 줄 사람인지, 기꺼이 비밀을 지켜 줄 사람인지, 동성애를 혐오하진 않는지 일정 기간의 심사 후(?) 용의주도한 첩보 요원처럼 민첩하고 은밀하게 커밍아웃을 진행했다. 그만큼 내게 커밍아웃은 참 비밀스럽고 어렵고 피곤하기까지 한 과정이었다.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한평생 나를 숨기고 살아와서 거기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 영국에 오고 나서도 나는 쉽게 내 성지향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심지어 영국에서도 가장 퀴어 프렌들리한 도시인 런던에 왔으면서도 말이다. 이 도시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고 한국과 다르게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개방적인데도 연애 관련 대화 주제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늘 성별을 숨겼다. 어쩌다 전 애인 이야기가 주제로 나올 때면 'she'라고 지칭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굳이굳이 꾸역꾸역 'he'라고 지칭했다. 내 이야기를 듣는 상대가 내가 성소수자라고 해서 나를 재단하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내가 있는 곳이 그 어느 곳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줄 수 있는 도시라는 걸 알면서도, 그때는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게 익숙했다. 우선 숨기고 보는 게 익숙해질 때로 익숙해져 버려 족쇄가 나를 옥죄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했을 때 어떤 자유와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지도 몰랐다.
반면 런던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자란 나의 연인 B에게 커밍아웃은 꽤나 쉬운 일이었다. 쉬운 일이라고 해서 마냥 가볍게 취급할 일도 아니지만 딱히 어려워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연애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상대를 'he'가 아닌 'she'로 지칭했고 사람들은 거기에 굳이 더 말을 붙이지 않았다. 굳이 연애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 아니어도 똑같았다. 일상 이야기를 할 때도 '제 여자 친구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 사람들은 그냥 들었다. 거기에 굳이굳이 '그래서 동성애자이신가요?' 같은 군더더기 코멘트를 쓸데없이 달지 않았다.
B의 커밍아웃은 상대가 가족이든, 친구든, 직장 동료든, 이웃이든, 하물며 처음 가는 식당의 점원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커밍아웃을 할 때 이것저것 다 재고 따졌던 나와 다르게 상대와 나 사이의 친밀도나 신뢰도 같은 것 따위는 아주 개나 줘라였다. 그쯤 되니 내 입장에서 B의 커밍아웃은 들숨에 '나 동성애자' 날숨에 '나 레즈비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은 질투 나게도 그게 B가 자라 온 환경이자 그곳의 문화였다. 나처럼 상대가 커밍아웃에 적합한지, 커밍아웃을 하면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따위는 애초에 B에게 중요한 물음이 아니었다. B의 커밍아웃은 처음부터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니까.
그런 B를 만나고 나서 커밍아웃을 대하는 나의 자세도 조금 달라졌다. 물론 들숨과 날숨에 '이 몸이 레즈이올시다' 하는 것까진 아니지만 커밍아웃을 할 때 내 마음의 무게를 전보다 많이 내려놓았다. 그전에는 몸에 힘이 100% 바짝 들어갔다면 B를 만나고 나서 90%, 75%, 60%를 차츰차츰 지나 이제는 한 50% 정도로 힘을 좀 뺀 느낌이랄까.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조금 더 편하게 내가 누구인지, 내게 소중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내가 내 정체성에 마음이 편할수록 내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내 마음, 내가 사는 도시를 대하는 내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내가 여자를 만난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쌀국수가 좋아요'라는 말을 듣는 것처럼 '그렇군' 하는 사람들. 그들의 반응을 보며 그전에는 쉽게 느끼지 못했던 해방감을 느낀다. 나는 어쩌면 커밍아웃을 '커밍아웃'이라는 말에 가둬 너무 거창하게, 또는 무겁게 생각했던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는 여전히 여자 친구가 있다는 말을 할 때 나만 눈치챌 정도로만 입가가 떨리고, 내 파트너를 'he'가 아니라 'she'로 지칭할 때 상대의 눈빛부터 슬쩍 살피는 쫄보다. 게다가 내게는 가장 큰 산인 '가족에게 커밍아웃하기'라는 숙제가 남아 있어서 그때가 오면 또 힘이 바짝 들어가고 입이 바짝바짝 마를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스스로에게 참 대견하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리고 나를 내 모습 그대로 받아 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나일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소중한 사람에게 늘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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