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물과는 우연이든 필연이든 인연이 있다. 책도 그렇다. 제임스 설터의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우연히 창비 문화센터 수업을 듣던 중 조해진 소설가가 나에게 에세이풍 소설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하면서 추천한 작가다. 본인도 궁극적으로 쓰고 싶은 장르라고 하면서.
나로선 언감생심 제안이고 조언이었으나 제임스 설터의 책을 찾아 읽어가긴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이 아닌 소설가의 에세이를. 그러고 보면 나는 에세이스트들보다 에세이를 쓰는 소설가들을 더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대표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렇고 알랭 드 보통 김영하와 김연수 그리고 김훈의 산문이 소설보다 좋다. 빠질 수 없는 박완서 작가의 소설포함 에세이는 나의 교과서다.
다시 돌아와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한참 전 이 책을 내 카톡 프로필로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걸 보고 절친이 너와 너무 어울리는 예쁜 표지이고 제목도 좋다고 해서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너 먼저 읽으라고 나는 그 책을 들고 친구 네로 갔다. 나중에 그녀는 책 속에 밑줄치고 메모한 나의 글 읽는 재미가 좋다면서 웃었다. "그냥 그 책 너 가져" 읽을 책이야 널렸고 나는 다시 사면 그만이다. 그 책을 볼 때마다 내 생각이 난다면 나로선 더 해피한 일이므로. 그리고 잊었다. 블로그를 하면서 읽던 책을 포스팅하고 연작들을 다시 읽다가 제목이 다 한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이 생각났다. 바로 주문 들어갔는데 아뿔싸 절판이다. 오마갓. 잊고자 하다가 친구에게 물었다. 혹시 그 책 다 읽었지? 다 읽고 예뻐서 아들 책장 꽂이에 넣어 두었단다. 고민하다 안면 몰수하고 물었다. "그럼 그거 나 다시 돌려줄 수 이쏘오? 구매하려고 보니 절판이래엥." 내 친구 쏘 쿨하게 "그러엄." 휴 다행이다가 아니라 너무 미안했다. 줬다 뺏다니? 겸사해서 그녀가 좋아하는 다른 책을 선물했다. 그리고 어제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난 내가 휘갈긴 민망한 메모부터 찾아보았다. 이런 감정들을 끄적였구나. 내 아버지 이야기도 있고 나의 여행 등 그때 그 심경이 오롯이 떠올랐다. 글을 쓴다는 것. 그렇다.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걸 절감한다. 사라지지 아니하고 돌고 돌아 내게 다시 온 제임스 설터의 제목이 다한 책. 회고록이다. 그럼에도. 내 맘대로 해석하며 읽는 책, 계속해서 쓰는 길밖에 없음을 알게 하는 책이다. '다시 읽고 다시 쓰거라' 말하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