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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민 Oct 17. 2024

고흐와 테오의 편지를 읽다, 내 동생에게 편지를 쓰다

반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

얼마 전부터 계속 네 생각이 나는 거야.
우리야 뭐 하루 일과를 전화로 시작해서 전화로 마무리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렇게 편지를 써 봐야겠다는 생각은 근래 들어 처음이네.

너는 나보다 늘 한수 위고 한걸음 앞서가는 동생이지만
이번에 아주 제대로 감했다는 거 아니겠니.
넌 꽃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단연 해바라기지.
너희 집 가보면 커튼은 물론 그 커튼을 여미는 장식물조차 해바라기 모형인 데다
사진틀 액자 거울(참 신기하더군 어디서 그렇게 잘도 구해 사다 모으는가 싶어서)
언젠가 해바라기가 조각된 그릇까지 세트로 구했노라는 소식에 막내랑 나는 아연하고 말았지.
왜 자꾸 난데없는 해바라기 타령이냐고? 앗 참 너 카톡 프로필 배경도
반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더라.
그건 나도 좋아하는 그림이라 이쯤 되면 눈치챘는 감? 내가 무슨 얘기하려는지?
맞아, 요즘 나 빈센트 반 고흐에 빠져 있단다.

내가 알던 이미지와 많이 다른 모습에 자꾸만 그의 자화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면서
너를 떠올린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언니, 난 고갱보다 고흐가 더 좋아" 하던 네 말에
나는 "워낙 유명한 데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화가니까. 에피소드도 많고..."
정도로만 밀쳐놓았었지, 그 많은 사연이 생길 수밖에 없던 배경과 내면을 들여다보진 않았어.
네가 왜 아련한 목소리로 고흐를 이야기했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더군.
동생 테오와 수없이 주고받은 편지 대화를 나는 내 동생에게 시도한다.

그가 대단한 다독가인줄은 알았지만 책과 도저히 뗄 수 없는 예술가로
내가 보기엔 철학자이자 종교적 사상가이기도 하더라.
흔히 알려진 광기 어린 정신병자(하긴 이 부분도 의견이 분분하긴 해)
천재화가 이면에 감추어진 독서 편력가의 모습을 보며
삶과 가족에게 소외당한 외로움과 고독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어. 느낌을 넘어 전염까지 되던데.
나는 내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언니는 꼭 뒷북쳐.
내가 고흐며 해바라기며 프랑스 아를 이야기할 때는 먼 산 바라보더니..." 할지도.
너 그래도 반갑지? 늦게나마 우리 둘이 이런 이야기 주고받을 수 있어서.
더불어 starry starry night~으로 시작하는 돈 맥클린의 빈센트를 곁들이면 금상첨화겠는데 아쉽게도 우리 집에 그 음반은 없더라.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하룻밤에 원고지 5~60장 분량의 편지를 썼대.
악 소리 날 법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당시 그가 읽던 책이며 작가들 만나는 사람과
거닐던 거리 그림에 대한 끊임없는 아이디어와 견해 종교관 희망과 절망 기타 등등 얼마나 할 말이 많았겠어?
비슷한 감성의 소유자들이었음이 분명해. 서로 언제나 통했다는 거지.
나도 지금 같아선 그 정도의 대화쯤 너랑 얼마든지 이어 갈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말이야.
이것저것 중구난방 할 말이 많아진다.

빈센트는 위고 발자크 모파상 에밀 졸라 등의 문학 작품도 좋아했지만
성경의 누가복음과 바울의 편지글 역시 애독했다고 해.
예수가 비유한 말씀을 그림에 담기도 하면서 그의 사상을 존중했어.
존경하는 밀레에 영향을 받고 이미 고흐 시대에 밀레는 없었으니
꾸준한 독학으로 이어진 힘겨운 나날이었음을 짐작하게 돼.
그럼에도 환경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프랑스 남부 지방 아를에 와서
더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게 되는데 내 생각엔 햇빛의 힘이 아니었을까 싶어.
너도 알다시피 그의 그림은 유난히 노란색과 인연이 깊잖니.
그가 살던 노란 집 도 그렇고 '밤의 카페테라스'도 그렇고 황금들판이며
정물화 '의자'도 노란빛이던가? 암튼 고갱의 그 호화스러운 '의자'와는 단연코 대비가 되는 터.

프랑스 아를의 뜨거운 햇빛이 상상되는구나. 강렬한 지중해의 태양 말이야.
뜬금없이 햇빛이 눈부셔 살인을 하게 되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주인공도 생각나네. 이방인의 뫼르소가.

빈센트가 사랑했다는 책의 목록만으로도 체증을 느껴 나는 자꾸 커피를 찾는다.
그 많은 책 중에 내 눈과 마음이 가는 건 위고의 레미제라블도 아니고
기독교 고전이라는 버니언의 천로역정도 아니고 그보다 더 심오하고 무거운 책들이 아닌
스토부인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란 책이야.
우리 어릴 적 교과서에도 실렸던 기억나지? 억압받는 노예의 자유를 그리고
사랑만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메시지와 소설 곳곳에 성경 구절과 비유 말씀을 곁들였다는
내용에 눈길이 멈춰지더라고.
빈센트 사상이 하나로 귀결되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예술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지만
임신부인 거리의 여자 시앵을 데리고 와 그녀의 딸까지 거두는
빈센트의 마음을 막막히 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빵 먹듯이 공부하고 싶다던 옛 화가 앞에 숙연해지는 요즘이었어.
 
옆에서 형부가 자기 안부도 전해 달라기에 직접 하시라 했다.
조만간 제부에게 연락이 갈 것이야. 엄마 모시고 막내네랑 곧 만나자.
너희 집으로 해바라기를 보러 갈지도 모르지. 그럼 총총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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