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가방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기요~ 가방 열렸어요~'

'가방이 열린 걸 이야기해줘야 하는 걸까?'

퇴근길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중 저 앞에서 내려가던 남자의 열려있는 백팩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람은 자신의 백팩이 열려있는걸 당연히 알지 못한 것 같았다. 헤드폰을 눌러쓴 채 퇴근길 혹은 어딘가로 향해가는 길과 귀를 통해 들려오는 음악에 집중하고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뒤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가방 속에 들어있던 책이나 노트북은 가방이 조금이라도 더 열리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바깥으로 쏟아질 것 같은 위태로운 모습이었고 마치 조금 덜 열린 가방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물론 그 뒷자리에 서 있지 않았으니 앞선 그에게 말을 건넬 수는 없었다. 그 뒷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은 앞에 열린 가방 혹은 앞사람의 행동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그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맞긴 채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짧은 혹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줬던 남자는 어느새 에스컬레이터를 벗어나 유유히 걸어서 시야에서 멀어져 갔고 그 순간의 고민 또한 동시에 사라져 갔다.

"저기요, 뒤에 가방 열렸어요"

하차 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내리려고 걸어 내려가던 찰나, 나를 불러 세우던 누군가가 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열린 가방 속에 책들은 반쯤 기어 나오고 있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버스에서 내리면서 책들을 집어넣고 가방을 닫았다. 순간 드는 마음은 책들을 무사히 지켰다는 안도도 있었지만 왠지 모를 부끄러움의 마음 또한 들었다. 마치 내 속을 다 보여주고 다니는 것처럼 열린 가방을 통해서 허술한 내 모습을 들켜버린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들 말이다.

보통 외출을 하거나 자리에서 떠날 때 항상 가방이 잠겨있는 걸 확인하곤 하지만 가끔 어딘가 작은 포켓이 열려있거나 하는 일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벗으며 이런 장면을 발견했을 때는 안에 들어있던 소지품들을 잃어버리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가방을 메기 전 확인하지 못했다는 후회와 함께 밀려드는 부끄러움도 함께 있었다.

타인의 모습을 관찰하는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고 혹은 안타까운 일이기도 했다. 타인에게 서슴없이 말을 건네는 일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누군가의 가방이 열린 것을 알려주는 아주 사소한 행동에도 '이걸 말을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괜히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수많은 생각들로 고민을 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누군가 열린 내 가방을 지적해주었을 때는 고맙다는 마음과 함께 부끄러움도 함께 느끼기도 하는 자신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본인이 겪었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한 일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타인에게 다가감에 주저할 수밖에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문득 고민하던 자신을 뒤로하고 가방 틈에 매달려 살아남기 위해 절규하던 소지품들에게 시선을 돌려본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물건일 수도 있는데 낙하하여 손상되거나 혹은 분실되어버릴 수 있는 그들에게 고민하던 순간을 뒤로한 채 선뜻 다가서 보는 건 어떨까? 물론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못하겠지만 언젠가 새벽녘에 꿈속 어디선가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오는 그들의 모습을 만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