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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lly Nov 25. 2019

불편하지만 필요한 이야기

영화 '조커'(2019)를 중심으로


다들 한 번쯤 손가락을 종이에 베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상처 부위는 크지 않지만, 물이 닿는 순간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온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 상처 부근을 은근슬쩍 건드린다고 생각해보자. 아프지는 않아도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 ‘조커’가 그러하다. 조커는 가상의 인물이라는 태그를 달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자신의 불행을 사회의 탓으로 돌리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들. 오늘의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손님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니 어쩐지 불편하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코믹스 영화 사상 최초로 베니스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해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조커. 덕분에 R등급 영화 최초로 전 세계 9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달성하는 흥행 신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에 대해서는 다들 호평 일색이지만, 서사에 대한 평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찌질한 인간의 정신 승리를 정성스럽게 포장한 장르 영화라며 혹평하고, 누군가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사회 고발 영화라며 호평한다. 예상치 않게 논란의 도마에 오른 조커를 두고 토드 필립스 감독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 느끼지 않았는가. 이 영화, 굉장히 불편하다.




평생을 존재감 없이 살아온 코미디언 지망생 아서. 가난하고 정신질환이 있는 그는 소외, 멸시, 차별을 받는 인생 패배자다. 하지만 조커라는 가면을 쓴 채,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하면서 하층민들의 우상으로 떠오른다. 일평생 받아본 적 없는 관심이 집중되자 그는 이에 도취해 폭력을 정당화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이 영화 불편하다’라고 말한다. 조커를 단순히 허구적 인물이라 생각하고 넘겨버리는 것은 상대의 외도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 마냥 찜찜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우리 사회의 곪아 있는 단면 주위를 은근슬쩍 건드리고 있다. 자신의 불행에 좌절하다가 그 분노를 사회로 돌려 버리는 조커. 연일 사회면을 뜨겁게 달구는 사회 부적응자와 닮아있지 않은가. 묻지마 살인, 묻지마 폭행 등 요즈음 사람들을 바들바들 떨게 만드는 범죄자들. 지하철에서 세 남자를 총으로 쏴 죽이고, 전 직장동료의 머리를 깨부수는 그의 모습은 이런 범죄자들과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영화는 조커라는 인물에게 서사를 부여하면서 그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조커를 불편하다 느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의 신변을 위협하는 범죄자를 혁명의 선구자로 포장한 영화. 살짝 베인 상처 주변을 툭툭 건드리는 기분이다. 불편하고 불쾌하다.




하지만 이 영화를 그저 불편한 영화라며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영화를 본 우리는 조커에게 동정심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아서라는 인물의 주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서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코미디언이 되고자 하지만 주변인들은 그의 병력을 조롱하고 재능이 없음을 비웃을 뿐이다. 아서의 우상인 머레이 프랭클린 역시 모자라 보이는 그의 모습을 이용해 대중의 웃음을 유발하고자 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아서가 받을 상처는 생각하지 않은 채 그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 평가조차도 객관적인지 의문이 든다. 혹시 기억하는가. 소위 대중이라 불리는 작자들이 아서의 유머에 매긴 점수는 0점이었지만, 아직 사회에 찌들지 않은 아이들에게 아서의 유머는 100점짜리였다. 상대방의 가치를 점수화하여 판단하는 각박한 사회는 멀쩡한 사람도 사회에 학을 떼게 만든다. 알고 보면 조커라는 사회 부적응자는 판단의 잣대를 들이미는 사회가 완성한 괴물인 셈이다.




‘코미디는 주관적인데 모두가 웃기고 안 웃기고를 판단하려 든다. 예의도 배려도 없다.’ 극 중 조커의 대사는 점수 매기기에만 혈안이 된 사회에 일침을 날린다. 어쩌면 병든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조커 가면을 한 손에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 가면을 쓰고 괴물이 되는 것을 택할 것이고, 누군가는 가면을 쥐고만 있을 것이다. 영화는 고담시에 사는 평범한 악당 조모씨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병든 사회에 찌들어가는 평범한 인간의 타락을 보여주고 있다. 엄마의 잔소리가 불편하지만 필요하듯이 조커의 탄생 스토리가 불편하지만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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