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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앨리 Sep 14. 2023

빼앗긴 공책

처음 쓴 나의 소설

는 아홉 살 때쯤 첫 소설을 썼다.

우연히 친구네 집에서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읽은 날부터였다. 당시 나와 여동생이 쓰던 방에는 여닫이식 벽장이 있었다. 내 소설 속 주인공은 그 벽장 속에 숨어 사는 어떤 소녀였다. 그 소녀 역시 나처럼 아홉 살이었고, 벽장 안쪽 문을 열면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세상으로 연결되는 비밀을 알고 있었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를 모방한 유치한 이야기였지만 나는 내가 만든 이야기에 취해 자라서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매일 밤 줄공책에 이야기를 삐뚤빼뚤 써내려 간 뒤 엄마가 읽지 못하게 벽장 안쪽 높은 선반에 공책을 숨겨놓았다. 나의 유일한 독자는 두 살 어린 여동생이었다. 여동생은 한글을 잘 읽지 못했기에 나는 동생을 위해 내 소설을 직접 읽어주었다. 벽장 뒤 소녀의 이야기로 나와 동생은 몇 날 며칠을 설레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언니,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동생이 불 꺼진 베개 맡에서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속삭이면 나는 마치 마감을 독촉하는 편집자를 대하듯 이마를 찡그리며 글쎄, 그래서 말이야, 하고 뒷부분을 어떻게 하면 흥미진진하게 꾸밀지 생각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교하고 돌아온 집안 공기가 평소와 달랐다. 엄마가 눈앞에서 내 공책을 흔들며 이게 뭐냐고 물었다. 이야기공책이었다. 엄마의 눈초리와 목소리가 날카로웠기에 나는 긴장했다. 엄마가 내 이야기를 읽길 바랐던 것은 아니지만 내심 잘 썼다는 칭찬을 바랬던 것도 같다. 내가 쓴 동화라고 하자 엄마는 고개를 저으며 글을 쓰면 가난해진다고 했다. 나는 가난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것은 무언가 부끄럽고 옳지 않은 상태 같았고, 그래서 어른이 되어 가난해지고 싶진 않았다.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얼굴이 빨개져 엄마에게 별 저항도 못하고 공책을 압수당했다.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내가 의사가 되는 꿈을 꿨었다며 너는 작가가 아니라 의사가 되어야 할 운명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 뒤로 다시는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벽장 속 소녀의 이야기는 쉽사리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혼자 있을 때 나는 가만히 누워 나의 상상 속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 또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20분 남짓의 시간동안 내가 지어낸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다. 신기하게도 친구들은 내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었고 때론 너무 재미있다고 그 책을 자기도 빌려 달라고 해 나를 으쓱하게 했다. 그렇게 내 이야기는 글이 아니라 말로 이어져갔다. 물론 엄마에게는 비밀이었다.


마의 태몽은 맞지 않았다.

간당간당하게 썼던 의대는 떨어졌고 안전빵으로 지원했던 공대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학과 공부는 나에게 맞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내 20대는 그저 술 마시고 놀며 멍하니 흘러갔다. 이 전공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20대의 나는 방황만 했을 뿐 이렇다 할 도전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회사에 입사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렇듯 새벽달을 보고 나왔다가 별빛을 친구삼아 퇴근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퇴근 버스 차창에 머리를 기대면 창문에 비친 내 머리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 같았다. 일을 열심히 할수록 일은 더 쌓였고 그 속에서 나는 사나워졌다. 회의에서 싸우고 온 날은 밑도 끝도 없는 절망감에 감정을 주체 못할 지경이었다. 자기개발서나 심리학 책을 수없이 사서 줄치며 읽어도 잠시뿐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는 막막함은 커져만 갔다. 엄마말대로 글은 한 줄도 쓰지 않았는 데 내 마음은 너무나 가난한 상태였다.


2018년 겨울, 우연히 블로그에서 ‘매일글쓰기’ 모집글을 보게 되었다. 인터넷 까페나 블로그에 글을 쓰고 채팅방에 자신의 글을 공유하는 형태였다. 재미있어 보였다.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 같았다. 앞 뒤 생각할 것도 없이 냅다 그 줄을 잡았고, 나는 그렇게 수렁에서 건져 올려졌다. 너무 절실했기에 당시에 나는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오늘 있었던 일 중 어느 한 장면을, 두서없이 썼다. 그런데도 댓글이 달리고 좋아요가 눌렸다. 혼자인 줄 알았는 데 나처럼 세상에 자신의 자리를 찾아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깜깜한 방에서 드디어 전등스위치를 찾은 기분이었다. 글쓰는 동료들과 매일의 일상과 감정을 나누며 나는 서서히 치유되어갔다. 밖에 있어도 오늘 매일글쓰기에 뭘 쓰지? 생각하며 세상을 좀 더 진지한 눈으로 눈여겨 보았다. 화 나거나 짜증나는 일이 있으면, 이거 이따가 매일글쓰기 소재로 써야겠다 생각할 정도였다. 온라인으로 알게 된 사이지만 가족보다도 더 내밀한 이야기들을 밀도 있게 나눌 수 있는 세상이었다. 내가 느끼는 치졸한 감정들이 타인에게 공감받을 수 있고 나도 그래, 라고 건네는 다정한 말들에 위로받았다. 내 자리는 여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글쓰기의 세계에 물들어갔다.

하지만 이 글쓰기 활동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친한 친구가 무심결에 던진 “왜 일기를 남에게 공유해?”라는 말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말이었지만 나는 무릎에 힘이 풀렸다. 내가 쓰는 글은 정보를 주거나 지식을 전달하거나 하다못해 어린 시절 내가 쓰던 소설도 아니었다. 그저 일상의 나를 드러내는 글일 뿐이었다. 돈을 벌지도 못한다. 맞는 말인데 나를 비난하는 말처럼 들렸다. 엄마에게 소중한 이야기공책을 뺏겼던 9살의 나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글을 쓰려고 모니터 앞에 앉을 때마다 허무감이 몰려왔다.


지만 나는 결국 그 터널을 빠져나왔다.

언젠가 엄마에게 아홉 살 시절의 그 사건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40여년 가까이 지난 그 일을 똑똑히 기억하는 나와 다르게 엄마는 기억조차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 지난 일을 가지고 뭘 그러냐고 핀잔을 주셨다. 내 친구도 역시 나에게 상처 줄 의도가 아니었다고 했다. 나는 어쩔 줄 모르고 쩔쩔 맸던 주변인의 조언이지만 정작 그 조언을 준 사람들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거나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다. 상처는 혼자만의 세상에서 생각을 증폭시키면서 더 깊어지곤 한다. 그걸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글을 써서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목적은 없다. 나는 쓰고 싶어서 쓰고, 내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 쓴다.

쓰지 않았을 때 보다 쓸 때 너그러워져서 쓴다. 나처럼 우주 어딘가를 유영하고 있는 친구들과 닿기 위해 쓴다. 그 글이 소설이건 일기이건 에세이건 장르는 따지지 않는다. 이게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이다. 사실 그 친구에게는 고맙기까지 하다. 덕분에 나는 내가 왜 글을 쓰고 있는 지에 대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홉 살 소녀가 이야기공책을 빼앗기지 않았더라면,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이야기공책을 빼앗기지 마시라고. 설령 빼앗으려는 사람이 당신의 엄마나 친구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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