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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앨리 Sep 14. 2023

엄마의 외식

집밥이 좋아

“엄마, 오랜만에 우리 나가서 외식합시다.”

내 말에 엄마는 뚱한 표정이다.

“나가서어?”

“그래, 나가서.”

“글쎄, 뭘 먹지이...”

몇 주째 이어지는 기나긴 장마만큼이나 지루한 밥상에 변화가 필요했다. 여름 반찬이라 최대한 불을 안 쓰다 보니 주로 오이지무침, 가지무침, 감자볶음 정도의 반찬이 최선인데 그것도 며칠을 연속으로 먹다 보니 영 입맛이 돌지 않는 거다.

반면 집밥 선호자인 엄마는 외식은 니글거려서 싫고 배달은 위생을 믿지 못해서 꺼려했다. 유명한 집이래도 여기는 비싸서 싫고 저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싫다고 하기 일쑤다. 외식 한 번 가자고 했을 때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난 적이 없다. 늘 뒤 음절을 길게 늘이며 시간을 끈다. 그러면 나는 급한 마음에 훌렁 포기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요 앞에 맛있는 갈비집이 있대, 차로 10분만 가면 초밥집이 정말 맛있대 하며 마치 어린 아이 달래듯 엄마의 기분을 살핀다. 그러길 몇 번의 구슬림이 오고가야 겨우 엄마는 끙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웃옷을 꿰입는다.

오늘은 실랑이가 유독 짧았다. 목적지가 근처 백화점의 중국음식점이기 때문이다. 중국음식은 유일하게 엄마가 타박을 안 하는 음식이다. 짜장면과 짬뽕은 집에서 만들기 어렵기 때문일까? 아니면 입맛에 맞는 바깥음식인걸까? 어딜 가자고 할 때 중국집 가자고 하면 대체로 긍정적 반응이다.

오랜만에 엄마랑 외식을 하러 나간다는 데 신이 나 우산을 쓰고도 발걸음이 가볍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밖은 습도가 높아 몇 걸음 안 걸었는데 숨이 턱 막혔다. 엄마는 비지땀을 흘리며 자꾸만 내 뒤로 쳐진다.

“안 되겠다, 우리 택시 타요.”

“택시이?”

타지 말라는 부정의 표현을 하지만 나는 못들은 척 하고 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시원하다 못해 추울 지경으로 에어컨이 켜있는 택시를 타자 끈적였던 피부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룸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엄마를 본다.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엄마의 눈가엔 굵은 주름이 가득하고 눈 밑으론 지방이 불룩하다. 영락없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우리 엄마가 언제 저렇게 나이를 먹었을까. 쓰라린 마음에 차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사방팔방 뚝딱뚝딱 건축 중인 높은 건물들로 가득했다.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서민동네였던 이 곳이 몇 년 뒤엔 원래 뭐가 있었던 자리인지 기억조차 안 나게 변신 중이다.  


기본요금 거리의 백화점 앞에 도착했다. 엄마가 흘끔 미터기를 보다가 나와 시선이 겹쳤다. 둘 다 얼른 시선을 거뒀다. 나로서는 짧지만 쾌적했던 여행이었다. 지체 없이 백화점 맨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음식점들이 모여 있어 고르기도 쉽고 북적거리는 지하 푸드코트보다 조용히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가족 외식으로 적당하다. 무엇보다 이 이상의 가격대는 엄마가 허락하지 않는다. 정면에 쌀국수 집 옆으로 불고기전골 집, 일본식 돈까스집, 철판볶음밥집,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다. 속으로 혹시 그새 마음이 바뀌었을까 싶어 모르는 척 “엄마, 뭐 먹을까?” 물었다.

엄마는 대충 보는 듯하더니 “난 중국집” 한다. 혹시나 했던 기대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나와서 먹는 게 어디냐 싶어 순순히 중국집으로 향했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중국식 우동과 내가 좋아하는 깐풍기를 시켰다. 중국식 우동은 맑은 국물에 하얀 면을 끓인 우동으로 짬뽕보다 순하고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다. 이집 깐풍기는 짜지도 달지도 않아 내 입에 잘 맞는다.

음식이 나오고 엄마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갈색 깐풍기를 먼저 한 점 집었다. 좀 씹나 싶더니 갑자기 캑캑 거린다. 엄마가 나이 들더니 사레도 잘 들리나 보다 우스갯소리를 했더니 깐풍기요리에 들어있던 매운 태국고추 때문이었다. 한참을 물도 마시고 밥도 먹어봤지만 맵고 따가운 맛이 가시질 않는다더니 급기야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잠시 뒤 나타난 엄마 얼굴이 핼쑥하다.

다 토했단다.

헉 싶었다. 태국고추가 들어가서 위가 갑자기 뒤틀리더니 도저히 견디질 못하겠더란다. 괜히 외식 한 번 하려다 사람 잡겠다 싶어 남은 음식은 먹는 둥 마는 둥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익숙한 듯 서랍에서 두꺼운 약봉투를 꺼냈다. 위장약과 설사약이었다. 얼마 전에 항생제를 길게 먹을 일이 있었는데 그 다음부터 조금만 잘못 먹어도 탈이 나서 내과에서 타온 약이란다. 그런지 몇 달 되었다고. 그동안 매일 이렇게 많은 약을 먹고 계셨다는 걸 나는 전혀 몰랐다. 괜히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속이 안 좋았으면 미리 말을 하지...볼멘소리를 해보았지만 엄마는 약 먹었으니 괜찮아질 거라며 돌아누웠다. 그러다 문득 외식가격이 왜 이리 비싸졌냐고 앞으로는 가지 말자고 한마디 하셨다. 그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간신히 알아들었다.  


사는 게 바빠 엄마와 단 둘이 외식을 해 본 건 수년 전쯤이다. 늘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당연시 받아먹었고 그나마 돕는 건 밥상을 차리는 정도였다. 애가 좀 크면, 코로나가 끝나면,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던 시간들이 지나 이제 나에겐 여유를 부릴 시간이 생겼는데 그러는 사이 엄마는 걷는 것이 힘들고 바깥음식을 소화 못시키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빨리 엄마의 시간이 나이 듦으로 향할 줄 미처 몰랐다.

툴툴거리며 외식이 뭐가 맛있냐고 하던 그 시절이 차라리 엄마가 한 살이라도 젊었던 시절이었다. 엄마도 나도 늙는다는 게 아직 멀게만 느껴져 그걸 구체적인 모습으로 상상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삶은 생생한 실체가 되어 내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이게 정말 내가 꿈꾸던 인생이란 말인가 하는 중년의 혼란함과 당혹스러움 속을 헤매다 정신 차려 보니 내 몸은 예전 같지 않고 눈은 침침하다. 그리고 태산 같던 엄마는 어느새 작은 노인이 되어있다. 외식하러 나갔다 이 슬픈 현실을 깨달았다.

엄마 옆에 조심스레 누웠다. 자는 줄 알았던 엄마가 게슴츠레 눈을 뜬다.

“야야, 근데 우리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냐?”

“그러게, 내가 40이 넘었으니 말이야.”

꼼짝 않고 누워 안방천장을 응시했다. 비지땀을 흘리며 왔다 갔다 했더니 몸이 노곤해왔다. 이제 외식 말고 엄마와 함께 할 다른 추억거리를 찾아야겠다.  

“엄마, 내일 내가 죽 끓여볼까?”

“그래.”

오늘 처음 들은 긍정적인 대답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이듦을 부정하거나 거부하고 싶지 않다. 다만 늙어가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훌쩍 떠나버리는 부모님을 마주하지 않도록 엄마의 시간을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봐야겠다.  

어느새 엄마의 코고는 소리가 낮게 들려온다.

바깥은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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