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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D-90

I'm rooting for you

by 뭐 어때

밥 하기 싫으면

배달앱 열면 되는데


공부하기 싫으면

무슨 앱을 열어야 하나





애쓰는 우리 집 고삼씨를 위해 배달의 민족대신 공부의 민족을 만들어주고 싶은 요즘이다. 오늘로써 수능이 90일 밖에 남지 않았다. 마치 수능시험날 하루를 위해 수년간을 살아온 사람처럼, 그날만이 인생의 큰 틀을 결정해 주는 것인 양 살고 있다.

대학진학에 목표를 둔 대한민국 고3이라면 그 사실을 크게 부정할 수 없다. 가끔은 안타깝고 서글프지만 현실 앞에 고개 숙이고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첫째 입시 때는 어쩌다 보니 대치동 돼지엄마 생활도 했었고 이제 두 번째 고3 엄마역할을 수행 중이다. 경력이 쌓인다고 수월한 건 아니다. 아이가 10명이라 해도 아이마다 다른 개별사안이다. '아롱이, 다롱이' 그렇게 아이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매뉴얼을 짜야한다.

오늘은 사설 모의고사를 치르는 날이라 아침 일찍 관리형 독서실에 데려다주었다.

'파이팅!' 그놈의 파이팅. 매일매일 주문처럼 외쳐준다. 차에서 내려 독서실로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참 힘들겠다 싶었다.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시험을 치르는 연습을 해야 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여 오는 압박을 느낄 아이가 안쓰러웠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 고작 이 말뿐. 이리 해줄 말이 없다니.

지겹지만 또 파이팅!!!


매번 다이어트를 외치다가 실패하는 나를 보면서 문득 공부와 다이어트는 비슷한 면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점.
나름 한다고 해도 단기간에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는 점.
주변의 유혹이 너무나 많아서 흔들리기 쉽다는 점.
'에라 모르겠다'하면서 나 자신과 쉽게 타협을 한다는 점.
반면에 원하는 걸 이뤄냈을 때 성취감은 그 무엇보다도 크다는 점.
목표달성 시 사람들이 격하게 인정하고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점.
웃픈 공통점은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는 점.
아는 데도 안된다는 점.


이렇게 쓰다 보니 공부를 좀 못한다 해도, 안 한다 해도 이해를 해줘야 할 것도 같다.

신경 써서 한다고 하는데 살이 안 빠지는 나처럼 아이들도 하느라고 하는 걸 테니까.


물론 공부를 잘하는 게 전부는 아니다. 그럼에도 하고픈 걸 하면서 살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거라 믿기 때문에 힘들지만 모두가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예쁜 게 전부는 아니지만 예쁘면 살기 편한 것도 사실이고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있으면 나쁠 건 뭔가. 사실 좋지 않은가? 그것도 많이 좋다. 공부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일단 잘하기를 바란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최소한 공부가 발목 잡는 일은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국숭세단 광명상가 인가경

입시판에서 대학이름 앞글자만 따서 한 번에 알아듣기 쉽도록 만든 줄임말이다. 약간의 서열화이기도 하다.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는 재미라도 있지. 이건 리듬도 없고 재미도 없다. 앞쪽은 재미있으려나.

시험에 자주 나온다는 조선의 왕 이름도 순서대로 잘 못 외웠던 나인데 이건 뭐 한다고 단박에 잘도 외운다. 점점 미쳐가고 있는 지나친 교육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아이의 뒷모습이 안쓰러워 시작한 글이면서도 '김 수한무~'보다 훨씬 재미없는 저 대학교 줄임말을 끝까지 다 읽지 않고 앞쪽에서 골인하기를 바라는 속물 엄마다.


결국 난 공부를 대신해 주는 '공부의 민족'은 만들지 못하고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걸 재차 확인한 채 대한민국 서열화 교육에 또다시 순응해 버렸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저 온 마음으로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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