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뭐 어때 May 17. 2024

갑자기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받고

인생무상

예상치 않은 시간이나 예상밖의 사람에게서 연락이 온다는 것이 설레었던 적도 있었다. 세상이 그리 무섭지 않았을 때,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이 남의 일이었을 때까지는. 이제는 누구보다 세상은 무서운 곳이고 사람은 배신하는 것이 쉬우며 살아간다는 것이 매일 죽음으로 한 발짝씩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이후로 갑작스러운 연락은 두렵다. 


십 년 넘게 연락 없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이게 누구야? A가 전화를? 잘못 눌렀나?' 잠깐동안 받지 말까를 고민할 정도로 서로 왕래가 없었던 친구의 이름이 휴대폰에서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여보세요" "어. 나 A야. 잘 지내지?"

"어. 어. 그렇지 뭐."

"먹고살기 바쁘다고 연락도 못하고 살았어"

"다 그렇지 뭐" 아주 어색한 대화를 이어가면서 ' 필요한 것이 있나', '혹시 부모님이?' 잠시 잠깐 사이에 이런저런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속물적인 추측의  찰나가  채 끝나기도 전에 A가 다시 말을 이어간다.

"B가 많이 안 좋아. 중환자실에 있어" A는 나에게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아서 전화를 했다고도 덧붙였다.

"어? 누구? 왜?"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정신이 멍해졌다. B고등학생 때부터 20대까지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의 이름이다.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나와 잘 맞아서 학창 시절 좋은 것 나쁜 것 모두 함께 했던 친구다.  단둘이 제주도 여행을 떠났을 만큼 가까웠고 내가 신랑과 연애하던 때 처음으로 소개해주었던 소위말해 절친이었다. 신랑과 결혼을 결심하는데 일등공신이라 할 만큼 신랑을 좋은 사람 같다고 얘기해 주고 우리 관계의 발전을 응원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우리 신혼집에 가장 많이 놀러 왔던 친구이기도 하다.  결혼식 부케를 받아 들고 환하게 웃었던 아이. 지금의 내 핸드폰 번호를 만들어준 친구. 지금도 내가 전화번호를 적으면 '이런 번호도 있어요? 돈 주고 산 건가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좋은 번호를 선물해 줬다. 친구와 나는 휴대폰 뒷자리가 같다. 친구가 자기와 같은 번호로 가운데만 다르게 개통해 줬기 때문이다. 커플처럼 뒷자리가 같은 번호를 쓰면서 서로에게 연락도 없이 지내왔던 것이다. 부잣집 이쁜 딸이었던 B갑자기 아버지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그간 겪어보지 못한 어려움에 처한 듯 보였다. 자존심 강한 B는 어느 날부터 나를 멀리했고 친구들 모임에서도 탈퇴했다. 그 이후 나도 아이 낳고 사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 연락도 없이 서서히 멀어져 각자의 삶을  살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딱 맞는 순간이다. 소식이라고 온 것이 많이 안 좋다는 이야기라니. 믿기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눈물이 쏟아졌지만 우는 것조차 미안했다. 이십 년이나 지난  학창 시절의 추억들과 갓 성인이 되어 함께했던 그 시간들이 점점 선명해지면서 그날 그때 입었던 옷까지 기억나기 시작했다. 기억의 끝에 슬픔과 안타까움 그 이상의 허망함이 몰아쳤다. 뻤던 친구가 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큰 병에 걸려 중환자실에 있다는 것이 화가 났고 무섭고 불안했다. 전화를 끊고 마음은 한없이 무겁고 생각은 많아졌다. 생각이 많은 것에 비해 할 수 있는 게 고작 쾌유를 기원하며 그동안 잊고 지냈던 신께 또 염치 불고하고 기도하는 것뿐이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이렇게 뭐라도 써야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글을 쓴다.


"친구야. 잘 버티고 이겨내서  밥 한번 먹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