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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소 Jan 24. 2021

이 시국에 뮤지컬을 합니다.

저는 관객일 뿐입니다. 대한민국 뮤지컬을 너무나 사랑하는.


이 시국에 공연 올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배부른 소리 하고 앉았네.



 얼마 전, 뮤지컬과 영화에서 활약 중인 김지우 배우에게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그녀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남긴 말이 목덜미를 잡혔다. ‘공연계가 숨도 쉬지 못한 채 가라앉고 있습니다.’라는 글에는 코로나 19로 죽어가는 공연계를 살리기 위한 지침을 요구하는 청원 링크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글이 일부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은 것이다.


 얼핏 봐도 배부른 소리 같다. 남들은 먹고살 길이 막힌 이 시국에 뮤지컬이니 연극이니. 먹고살 만하니 팔자 좋은 소리 한다며 수군거릴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1년 동안 대한민국 뮤지컬계는 공연을 이어왔다. 지난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유명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유일하게 공연되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였다. 배우, 스텝은 물론 관객들까지 철저하게 방역 지침을 준수하여 이뤄낸 성과였다. 뉴욕타임스 및 BBC방송 등 세계적 언론에 방역 모범사례로 기획 보도될 정도였다.


 전 세계에 방송될 정도의 훌륭한 방역 모범사례의 성과는 어느 정도일까? 지난해 국내 공연장 내 감염 사례는 0%이다. 심지어 몇 차례 확진자가 다녀갔음에도 추가 감염 사례가 전혀 없다. 극장 내에서는 음식물 섭취가 애초에 금지되어 있었고, 코로나 발발 이후에는 로비 내에서 대화조차 금하는 엄격한 상황이니 눈부신 성과가 충분히 납득이 간다.


 거리두기 2.5단계 상승 이후에는 ‘좌석 내 두 칸 띄어 앉기’ 정부지침을 언제나처럼 철저히 따라 지키고 있다. 두 칸을 띄어놔야 하니 객석의 30%만 판매가 가능한 상황이다. 이 부분이 문제였다. 대형 뮤지컬의 경우 객석 점유율 70%가 손익분기점인데, 현재 두 칸 띄어 앉기로는 손익분기점의 반도 넘기지 못하는 상황이다. 공연을 올릴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되었다.


 1년 간 종사자들의 페이를 삭감하고 수 억 대의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정부지침에 따라 공연을 이어왔던 제작사들도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스러져가고 있다. <몬테 크리스토>, <맨 오브 라만차>, <고스트>, <젠틀맨스 가이드>, <캣츠> 등 대형 뮤지컬들이 속속들이 중단되었다. 이에 비단 김지우 배우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 및 스태프 등 뮤지컬계 종사자들이 두 칸 띄어 앉기에 대해 현실적인 규제 완화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잠깐.
김지우 배우에게 비난을 가하기 전,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가 이 대목에서 간과하고 있는 3가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첫째. “이 시국에 뮤지컬? 남들은 먹고살 길이 막혔는데 아주 팔자 좋네?”


 손님이 끊겨 수입이 없어진 자영업자, 일자리를 잃은 직장인들 입장에서 뮤지컬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야속할 수 있다. 안 봐도 죽지 않는 뮤지컬을 꾸역꾸역 올리겠다고 난리를 치니 꼴 보기 싫은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 시선 속에서 지워지는 사람들이 있다. 스태프, 배우 등 뮤지컬 종사자들이다.


 관객에게 뮤지컬은 취미지만, 종사자들에게는 삶의 현장이다. 가게 장사가 안 되면 사장님과 종업원들의 생계가 위험하듯, 공연이 올라가지 않으면 배우는 물론 스태프, 제작사, 관련 종사자들 모두 당장의 생계가 막막해진다. 예술가이기 이전에 노동자인 것이다.


 뮤지컬에는 무대 위 보이는 배우의 10배가 넘는 스태프들이 존재한다. 적게는 30명에서 많게는 300여 명까지. 공연을 업으로 살아온 이들은 하나의 작품이 엎어지면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는 프리랜서들이다.


 실제 많은 배우 및 종사자들이 현재 파트타임 및 일용직으로 생계를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둘째. “이 시국에 공연 올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거 아냐? 다른 나라는 올리지도 못해.”


 다른 나라는 공연 노동조합 및 조합 연금제도로 뮤지컬 종사자들이 공연을 하지 않아도 생계가 보호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뮤지컬의 메카 브로드웨이의 배우, 스태프 노동조합은 1913년에 형성된 Actor's Equity Assosiation (배우 조합)이 시초이다. 그 외에도 오케스트라 조합, 헤어 메이크업, 연출 안무가 등 뮤지컬을 구성하는 각 파트의 조합이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1960년대 연금, 건강보험 기금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혹시 공연이 폐막해서 약속된 개런티를 못 받을 경우 2주 치 주급을 받게 된다. 노동조합은커녕 공연이 중단될 경우 어떤 페이도 받지 못하고 하릴없이 다른 생계수단을 찾아야 하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꽤나 부러운 대목이다.


 우리나라에서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가 시작된 것은 불과 2020년 12월 10일이다. 예술인이 노동자로 인정된 지 불과 한 달 하고도 보름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고용보험조차 이제야 시행된 마당에 영국, 미국, 프랑스 등에서 시행되고 있는 공연계 조합 연금제도는 꿈만 같은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공연을 올릴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 전 세계 뮤지컬계가 셧 다운된 이 상황에서도 철저한 K-방역을 실시했고 전 세계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는 공연이 올라갔다.


 하지만 공연을 올릴수록 적자가 나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두 칸 띄어 앉기로는 손익분기점인 70%의 반도 안 되는 30%만 객석을 채울 수 있다.


 그렇다면 1년 간 어떻게 공연을 올렸다는 말일까?


 지난 1년 간 뮤지컬 종사자들은 페이를 삭감 혹은 받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나 일용직을 전전하며 버텨왔다. 제작사 역시 한 회에 3,000만 원 이상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공연을 지키기 위해 굳건히 달려왔다. ‘SHOW MUST GO ON(무대는 이어진다.)’이라는 직업인, 그리고 공연인으로서의 사명을 묵묵히 끌어안고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섰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업계의 개인과 제작사만의 힘으로는 한계에 부딪혔다. 그래서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셋째. “너네만 힘드냐? 다들 힘들어.”


 그렇다. 모두가 힘들다.


 지속되는 규제로 삶이 막막해진 헬스장 트레이너들이 아령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오고, PC방 점주들이 세종 정부청사 앞에서 피켓을 들었다. 생계가 막힌 자영업자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뮤지컬 종사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 살기 위해 목소리를 낼 뿐, 그 누구도 ‘나만 힘들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함께 살아나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의 산업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중이다.







뮤지컬계가 요구하는 것?
그저 무대를 지속할 최소한의 완화만이라도.



 2021년 1월 출범한 한국 뮤지컬 제작자 협회는 ‘한국 뮤지컬인들의 호소문’을 통해 현재 무조건적인 2칸 띄어 앉기가 아닌 1.5~2.5단계시 <동반자 외 한 칸 거리두기>를 요청했다. 지난 1년 간 현장에서 직접 발 담가온 종사자들의 현실적인 요구였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공연장은 지난 1년 간 붙어 앉기, 한 칸 띄어 앉기, 두 칸 띄어 앉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철저한 방역 수칙 준수로 감염률 0%라는 성과를 내었다. 이는 무조건 적인 좌석 띄어 앉기가 답이 아니며 공연장은 감염경로가 아님을 시사한다.


 2. 공연 관객 대부분은 가족, 연인, 지인과의 관람이다. 공연장에 오는 동안 대중교통을 함께 타고, 식사도 함께 한 후 공연장에서만 거리를 두고 앉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


 3. 뮤지컬 종사자들의 최소 생계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객석이 60%는 차야한다. 이 역시 손해를 보는 수준이지만, 무대를 이어가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공연예술 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2020년 12월 뮤지컬 장르 매출액은 2019년 12월과 비교했을 때 90%가 넘게 감소했다. 파산과 실업의 가속화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뮤지컬은 단순히 노래하고 춤추는 사치재가 아니다. 공연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하나의 문화예술 산업군이다. 한류가 전 세계에 떨치는 파워만 봐도, 문화예술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뮤지컬 역시 전 세계로 발돋움할 수 있는 역량을 크게 지니고 있다. 이대로 코로나에 속절없이 무너질 순 없다.







Show must go on
눈물 속 공연을 올리다



 지난 1월 19일, 뮤지컬 ‘명성황후’가 단 3회 차의 공연을 올렸다. 다른 제작사들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손해를 감당하지 못하고 공연 중단을 결정한 직후였다. 2.5단계 적용으로 두 칸 띄어 앉기를 적용했으니 단 3회 차라도 제작사와 종사자들의 막대한 손해는 뻔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배우가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공연을 올렸다. 공연이 끝난 후 미소 속에 감춰진 눈물 섞인 감정을 객석에서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더 많은 관객을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쓰인 공지 글 속에 담긴 안타까움과 고달픔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



 “공연은 사치다. 먹고살 길이 막막한 이 시대에 뮤지컬 같은 팔자 좋은 소리를 한다.”


 이런 시선이 쏟아질 것을 알기에 뮤지컬계는 생존을 위해 그 어느 것도 요구하지 못했다. 작년 1년 동안 수백 수 천의 손해를 감수하고 종사자들이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리면서도 말이다. 그런 그들이 이제야 겨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질타보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코로나 19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지옥 같은 전염병 속에서 그 어떤 직업군도 그 누구도 소외되는 일 없이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간절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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