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보니 연애하고 싶어 져서 추억해봤다고 하네요
우리는 같은 길을 여러 번 되돌아갔다. 얇게 쌓인 눈을 밟으며 당연하게 몇 번이고 그 거리를 걸었다. 죽 늘어진 가게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시간을 잊게 했고, 계절학기 종강의 기쁨을 알코올로 풀어버리려는 술 취한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가 거리를 가득 채웠다.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쓰기 위해 겨울방학을 희생하여 신청한 특강이었다. ‘카네기 리더십 코스’ 당시 나는 데일 카네기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지만, 대부분 실습으로 이루어진 카네기 리더십 강의는 즐거웠다. 40여 명의 대학생들은 매주 대화하고 토론하며 함께 부대꼈다. 한 학기 내내 같은 수업을 듣고서도 데면데면한 학우들보다도 급격히 친해졌다.
누구와 누가 사귄다더라, 걔가 쟤를 좋아한다더라. 20대 남녀가 모이는 곳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였다. 특히 여자애들끼리 모이면 그 수다는 꽃을 피웠다. 삼삼오오 모여 누가 마음에 드는지 이야기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 오빠 괜찮지 않아?” 나도 빠질 수 없었다. 나는 2살 위 키 큰 오빠를 지목했고, 친구 서현이가 지목한 남자는 ROTC로 짧은 잔디머리가 어울리는 1살 후배였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 다른 이름을 대며 수줍게 웃었다.
두 살 위 오빠는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큰 충격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콩닥거리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에 짝사랑을 자처했다. 그렇게 웃고 떠들며 4주 간의 짧은 특강은 끝났다.
못내 아쉬운 마음은 다 같았나 보다. 평소에도 나서길 좋아하는 대장 오빠가 학교 앞 술집에서 뒤풀이를 제안하자 선약이 있는 몇몇을 빼고는 다들 냉큼 가게로 달려갔다.
ROTC 후배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알딸딸하게 술기운이 올라올 때쯤 그가 말했다.
“나 이제 기숙사 들어갈 건데, 데려다 줄래요 누나?”
학교 앞 술집에서 기숙사까지는 걸어서 10분이었다. 뭐야 뭐야~ 외치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 그는 다시 나를 가게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고, 가게에 다다를 무렵엔 또다시 기숙사에 데려다 달라 했다. 그 겨울밤 우리는 그 거리를 몇 번이나 왕복하면서도 손 한 번 잡지 못했다.
이후에도 여러 번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졸업을 앞둔 4학년의 취업준비와 바쁜 학교생활은 우리를 멀어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연락이 뜸해지고 뜨끈하던 감정이 사그라든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10년도 더 된 그 기억은 풋풋하고 어설프다. 지금 같으면 손이라도 덥석 잡고 너 나 좋아하냐 묻기라도 했을 텐데. 나란히 걸으면서도 손이라도 닿을까 조심스러웠던, 서투르기에 더 예쁜 시절일 테지.
돌아갈 수 없어 더 아름답고 애틋한 과거를 보듬으며 오늘도 피식 웃어본다.